- 좌충우돌 마녀가 전하는 제주 신화 이야기 1 -
그대에게 제주는 어떤 곳인가요?
아름다운 풍광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관광지. 볼 것도 많고, 들을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은, 놀기 좋고, 쉬기 좋고, 머물렀다 떠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그런 곳이던가요? 저에게 제주는 교실입니다. 모르는 것이 하 많아서 온통 배울 것만 있는 곳입니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처럼 무엇부터 배워야 할지, 어떤 순서로 익혀야 할지 몰라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선생님을 기다리는 중이지요.
저에게 제주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누구일까 생각해봤습니다. 곰곰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마음으로 꼽아보니 누구누구 이름을 대면 알만한 저명한 이도 아니요, 저보다 좀 더 먼저 발을 디뎠다 하여 좀 더 아는 이도 아니요, 수많은 연구로 학자적인 지식을 쌓아둔 이도 아닙니다. 첫째는 매일 마주하는 제주의 자연, 둘째는 어찌 이리 친근할까 속으로 의문스러운 제주의 사람, 셋째는 물과 바람과 불과 흙의 지세를 모두 담고 있는 제주의 기운. 제게는 제주의 모든 것이 틈날 때 마다 곁에 앉아 조곤조곤 가르치는 다정하면서도 엄격한 선생님이구나 싶어서 슬며시 웃음이 납니다.
2015년, 새해가 시작되고 입춘을 지나 제주에 영등바람이 불기 시작한 즈음에 제가 만나진 행사의 기록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되었습니다. 사진사인 저는 영등의 길을, 제주에 들어 온 영등할망의 길을, 바람의 길을 따라 이어진 짧지만 깊이가 있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는 중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사진 한 장을 찍게 됩니다. 마을길을 돌며 이어지는 한 무리의 행렬 중간에 어느 집 돌담 곁에서 깃발을 들고 동무를 부르는 한 아이의 모습입니다. 미처 길로 나서지 못한 동무가 현관에 서서 왜? 냐고 물으니 ‘영등할망이 오셨대’라고 답하더군요. 아, 그 순간 저는 울컥 감동을 느꼈습니다. 좋은 일이라 여겨 참여하고 무엇이든 주어진 일에 열심인 습관으로 이어지던 며칠 동안의 행동에 목적이 무엇이냐 물으면 사실 딱히 꼬집어 답하기 어려운 애매함이 있었는데 찰나의 깨달음이 찾아온 듯 머릿속이 명료해졌지요. 우리가 무엇 때문에 전통을 배우고 익혀 후대에 전하는지, 오래 된 이야기와 노래들을 찾아내 그 원형을 복원하려고 애쓰는지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장면이었어요.
제주에는 육지에 살다 온 이들이 알지 못하는 방대하고 위대한 한민족의 창세신화가 살아 보전되고 있습니다. 일제시대를 지내면서 찢겨지고 윤색되다 못해 무참하게 파괴되어 실체를 보일 수 없게 된 단군신화의 운명을 피해 간 오롯한 신화의 원형입니다. 마녀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필경에는 한민족이 일구어낸 문화, 문명의 우수성을 깨닫게 하고 자긍심을 일깨워줄, 길고 현란한 신들의 서사시가 그리스로마 신화보다 더 재미있게 여러분 앞에 펼쳐질 거예요.
우연히 제주에 와서, 제주를 알아가고 있는 마녀에게 제주신화는 보물창고입니다.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깝고 안타까운 이 보물들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저 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우리에게 이처럼 아름답고, 이처럼 크고, 이처럼 가까운 신들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셨으면 좋겠어요. 서툴지만 진지하게 함께 공부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신들의 세계는 인간의 세계와 맞닿아 있지만 모든 것을 허락치는 않으니까요. 할 수 있는 한, 될 수 있는 한,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자 합니다.
온 땅과 하늘에 이르는 수많은 사물과 사건들이 신들이 움직이는 운명의 수레바퀴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화의 시대, 신들의 일상은 인간의 일상과 많이 다르기도 하고 많이 닮아 있기도 합니다. 신화가 곧 인간의 삶을 투영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과 인간의 상상력이 만나서 만들어진 익숙하지만 신비롭기도 한 신들의 이야기. 제주에서 시작되었지만 한민족 정서의 중심을 꿰뚫고 있는 제주신화의 세계로 오세요.
혼저 옵서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