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곳이 있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들.
아들의 수월하고 원활한 진학을 위해 귀촌을 선택한 기준의 엄마는, 분양받은 아파트 입주일을 기다리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고 판단해서 급한 대로 잠깐 살 집을 동네에 얻는다.
물론, 여기에 당사자인 기준의 의사는 1g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게 다 널 위해서야.”
괜찮다.
세상 모든 부모에게 면죄부를 주는 가장 강력한 문장이 준비되어 있으니까.
첫 등교를 하기도 전에 신발부터 사라졌다.
아끼는 신발의 증발에 안 그래도 ‘거지 같은’ 학교와 집에서 지내야 할 사실이 잔뜩 불만이었던 기준의 짜증은 극대화된다.
선생님의 마음속에는 이미 유력 용의자가 있었으나 입밖으로 내지는 않는다. CCTV를 수리하면 범인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기준의 엄마는 모르는 척 넘어가기로 한다.
“물건 절대 빌려주지 마라. 안 돌려준다.”
“형은 가까이 안 하는 게 좋다.”
“만나보면 안다.”
반장 석호는 영문 형제에 관해 이야기하며 경고한다.
기준은 ‘고작’ 두 살 차이라는 말에 영문의 존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석호가 한 말의 뜻을 알게 된다.
기준은 영문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발에 신겨진 아디다스 운동화가 자신의 것임을 눈치채지만, 아무 말도 못 한다. 둘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영문이 가진 ‘힘의 권력’이 자연스럽게 서열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형편, 성적, 행실.
어른들은 여러 가지 잣대를 들이대며 급과 경계를 나누지만, 아이들의 세계에선 그렇지 않다.
기준은 그렇게도 아니꼽게 보던 영준과 아주 사소하고 별것 없는 장난으로 친해진다. 예컨대, 영준이 자신의 신발을 훔쳐 간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나, 영준이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다녀야 하는 형편이라는 사실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영문 형제는 아이들에게는 ‘무서워서 불편한 존재’이며, 어른들에게는 ‘불쌍하지만 불편한 존재’이다.
영준은 학교에서 절도를 저지르고 여러 가지 말썽을 피우지만, 아이들은 형 영문이 무서워서 영준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어른들은 부모 없이 사는 두 형제가 안타깝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동생을 먹여 살리는 영문이 대견하다고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들의 일에 엮이고 싶어 하진 않는다.
“쟤가 먼저 때렸는데요.”
“그래도 친구와 싸우면 안 되지.”
“샤프 훔쳐갔는데요.”
영준과 다른 아이 사이에서 다툼이 발생하자, 선생님은 상대 아이에게만 훈계를 한다. 영준이 기준 엄마가 나눠 준 햄버거를 받아 놓고도 받지 않았다고 거짓말했을 때, ‘그런 거짓말이 왜 잘못됐는지’를 알려주기보다는 ‘사실관계’를 따지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선생님에게 있어 영준은 이미 ‘포기한 아이’다. 마을의 다른 어른들에게도 다르진 않을 것이다.
이 마을에서 영문 형제는 밥 한 끼의 미온한 동정을 베풀 수는 있어도 그저 거기까지인 존재다. 더 큰 사고가 터지지 않기만을, 내 아이에게 피해 주지 않기만을 바라는 '골칫덩이'인 것이다.
시설 관계자들은 출석 도장 찍듯 부모 없이 방치된 영문 형제의 집을 찾지만, 완강한 영문의 태도에 ‘별수 없다는 듯’ 순순히 자리를 떠난다. 영문과 비슷한 처지의 ‘다음 아이’가 있었지만, 그저 업무의 일환일 뿐인 그들은 시간이 늦었다는 이유로 다음 집의 방문을 다음으로 미룬다.
“네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기준의 엄마는 기준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온정의 시선을 보내줄 아는 사람이 되길 원하지만, 정작 형제와 친해진 아들을 보고는 꺼림칙함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된다.
기준 엄마에게 영문 형제는 가끔 생각나면 한 푼 적선을 해 주는 불우이웃일 뿐이지, 내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 구성원이 될 수는 없다.
영문은 전형적인 ‘반항아’이자 ‘문제아’이다.
절도를 저지르는 것은 기본에, 다른 아이들의 돈을 뺏거나 ‘서열 정리’의 일환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무면허 오토바이 운전으로 접촉 사고를 내고도 겁을 내기는커녕, 상대 운전자인 어른을 겁박하는 듯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주고는 사과 한마디 없이 쌩하니 가버린다.
“밥 뭇나.”
“한 집만 가면 싫어한다. 골고루 돌아라.”
그럼에도 영문은 15세의 어린 소년이다.
어른들에게서 받는 동정에 자존심 상해하며 어떻게든 자력으로 동생과 살아 보려고 하지만, 어른들이 주는 한 푼의 동정을 거절할 수는 없는 처지다.
혼자 있는 집에 접촉 사고의 피해자가 찾아오자 잔뜩 움츠러든 모습은, 아이들의 사이에선 ‘왕’이지만 어른들의 앞에선 그저 아이일 뿐인 영문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걔 때릴 때 기분이 어땠어?”
기준은 자신을 괴롭힌 아이가 처참하게 피투성이가 되는 장면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본다.
기준은 석호가 맛본 힘의 권력을 궁금해하지만, 자신에게는 그다지 좋은 경험이 아니었던 석호는 대답을 피한다.
석호에게 영문 형제는 어쩔 수 없이 가끔 엮이지만 가까이하고 싶지는 않은 존재다. 아마 영문의 집에 가게 된 것도 그곳에 있는 기준의 게임기를 하고 싶어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기준은 달랐다. 영문이 가진 ‘힘의 권력’에 완벽히 매료된 기준은 영문 형제와 좀 더 가까이, 좀 더 닮은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이미 영문은 기준의 ‘롤모델’이 되어버렸다.
영문은 15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굳이 알지 않아도 될 것들을 안다.
예컨대, 영문은 집에 불쑥 찾아와 적지 않은 돈을 쥐여주고 간 기준의 아버지나 시골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고가의 게임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오는 기준의 모습에서 꺼림칙한 기분을 느낀다.
그러나, 영문도 결국은 아이다.
기준이 돈 많은 집 아이라서,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해 이용해 먹기 좋은 아이라서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기준과 함께 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곁에 두는 것이다.
기준은 ‘선’을 넘는다.
기준은 영문의 지시 없이 자의적인 판단으로 아이들의 돈을 뺏고 자전거를 훔친다. 자신이 영문의 ‘비호’를 받는 존재라는 것을 동네 아이들이 모두 아는 것에 한없는 우월감과 자신감을 얻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배우의 화장법, 패션 같은 사소한 부분부터 생활 양식까지 닮아가고 싶어 하는 전형적인 10대의 모습이다.
동시에 기준은 그동안 엄마에게 불만을 가지면서도 억지로 따라야만 했던 삶에서 탈피하는 짜릿함을 느낀다. 언행은 점점 과격하고 폭력적으로 변하고, 영문이 그러하듯 또래 아이들과의 마찰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가감없어진다. 그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제동 장치는 없다.
마치, 형의 행동을 거름망 없이 그대로 흡수해 버리는 영준처럼.
기준 엄마에게 있어 영문 형제는 한 발 멀리서 보았을 땐 ‘도와야 할 존재’지만, 내 아이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순간 ‘퇴치해야 할 존재’가 된다.
“기준이랑 놀지 말라고요?”
“너, 그런 소리 많이 들어봤구나?”
“내가 불러낸 거 아니거든요. 지가 따라다닌 거거든요.”
영문은 자신이 기준을 억지로 데리고 다니면서 강제로 타락시켰다는 듯 말하는 기준 엄마의 말이 억울하다. 영문은 기준의 엄마에게 ‘기준이 또 찾아오면 두들겨 패서 보내겠다’며 반항적으로 말하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너 그 신발 어디서 났니?”
기준 엄마는 ‘좋은 어른’으로 자신을 포장해 보려 하지만, 당돌하고 맹랑한 영문의 태도에 속내를 드러내고 만다.
기준 엄마는 결국 신발을 훔친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CCTV를 수리한다. 범인은 선생님도, 기준 엄마도 예상했던 사람이다. CCTV에는 ‘누가 신발을 차지할 것인가’를 두고 내기하듯 영준과 가위바위보를 하던 두 명의 아이가 더 찍혀 있었지만, 선생님과 기준 엄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로지 매일 같은 파란색 티셔츠를 입는 영준에게 찍힌 ‘낙인’ 뿐이다.
마치, 가만히 앉아 있던 영문을 절도범 취급하며 내쫓은 오토바이 센터 사장처럼.
영문에게 비행은 ‘생계’이지만, 기준에게 비행은 ‘일탈’이다.
“닌 재밌나?”
“앞으로 내 보면 피해다녀라.”
기준이 영준이 끌려가 맞을 때 아무것도 안 했다는 것과 더불어 자신 몰래 자전거까지 훔쳤다는 사실을 안 영문은 기준을 크게 다그치면서 겁박한다.
영문은 자신의 행동이 ‘재미’로 따라 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계속 비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먹고 살기’ 위해서이다.
영문은 언제든 이 ‘비행’으로부터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기준과 달리 자신은 이 ‘비극’으로부터 헤어 나올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같은 상황을 마주한 두 소년의 태도가 전혀 다름을 인지하고 만다.
영문은 알았지만 기준은 아직 모른다.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지를 말이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서울에 있을 때는 성적도 좋았고’, ‘아쉬울 게 없는’ 기준이 스스로 물건을 훔치고 비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어른들은 믿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라니까?”
“이게 다 엄마 때문이잖아!”
기준의 엄마는 기준이 애들이 무서워서 억지로 끌려다닌 거라고 믿고 싶지만, 기준은 흡사 영문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반항적인 모습을 표출한다.
아들의 진심에 충격받은 엄마는 말을 잇지 못한다.
“니가 저 애들이랑 같은 줄 아나?”
“뭐가 다른데요?”
기준의 호언과 달리, 어두컴컴한 계단 앞에 선 형제는 밝게 불이 비치는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경찰들은 영문 형제에게 2층으로 빨리 올라가라며 윽박지르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기준은 경찰서 밖으로 나가버린다.
부모의 수습 아래 사건을 어찌저찌 무마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준과 달리, 영문 형제에게는 어린아이들을 밤늦도록 경찰서에 가둬두는 것에 관해 항의할 보호자가 없다.
잠금장치가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한 대문을 손쉽게 열고 들어갔던 기준의 아빠나 신발 바람으로 침입해 마구잡이로 짓밟고 갔던 아이들을 막아낼 수단이 없었던 것처럼.
이제, 모두가 자신들을 가르는 ‘선’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플스’는 기준과 영문 형제의 연결 고리를 의미한다.
“(게임기) 진짜 여기 놔두고 가도 되나?”
“어차피 집에서는 별로 못하고….”
“왜?”
“혼자 하는 건 재미없잖아.”
기준이 영문의 집에 플스를 두고 가던 날, 영문의 걱정에 기준은 어른들의 제어에서 벗어나는 일탈에 물들었음을, 동시에 두 형제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었음을 표현한다.
“이제 게임 안 할 거야.”
“이게 어떤 돈으로 산 건데….”
세 아이의 관계가 파탄에 이르렀음을 알려주는 단서는 영준이 기준의 집 거실 창문을 부수는 방법으로 ‘돌려준’ 플스 게임기의 컨트롤러다.
기준은 이제 필요없다고 하면서도 영문이 준 플스를 챙겨 가려 하지만, 기준 엄마는 결국 이삿짐 쓰레기 속에 던져버린다.
이곳에 왔을 때가 그랬던 것처럼, 떠날 때도 당사자인 기준의 의견은 필요 없었다. 모든 일은 어른들의 사정과 수습 속에서 빠르게 진행된다.
“개새끼.”
자신이 준 플스가 포장지째로 버려진 사실을 알게 된 영문은 욕설을 하면서도 플스를 다시 챙겨 간다.
기준에게 플스는 다시 사면 되는 그저 물건이지만, 영문 형제에게는 그렇지 않다. 영문이 훔친 돈으로 산 플스를 기준에게 주기 전에 밤늦게까지 만져보는 장면이 그의 미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비단, 값비싸고 재미있는 게임기를 향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훔친 신발과 망가진 게임기를 새것으로 돌려주려 한 것이 자존심 때문만은 아닌 것처럼.
‘축구’는 영문 형제와 사회의 연결 고리를 의미한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영문이 유일하게 또래 아이들과 하는 ‘평범한’ 활동은 동네 대표로 나가는 축구 대회 연습이었다. 동네 어른들이 인정할 정도로 영문의 축구 실력은 좋았다. 축구를 할 때만큼은 영준은 물론 영문도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애들이) 내 안 좋아하는 것 같다.”
“축구 또 하자고 하면 죽인다.”
그러나 결국 영문과 영준은 축구 대회에 가지 않기로 한다.
형은 이미 몇 년 전에 깨우쳤을, 자신들이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영준도 깨달아버렸다. 영문은 동생에게 으름장을 놓으며 오토바이에 시동을 건다.
그것은 분노나 배신감이 아니라 그저 서운함과 체념일 것이다.
기준은 떠났고, 플스는 버려졌고, 축구 대회는 포기했다.
아이들에게는 남은 것이 없다.
시설에 가게 된 영준의 옷은 깨끗한 새것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여전히 영문의 낡은 씨티백을 타고 동네를 배회한다.
기준은 엄마와 함께 서울로 돌아가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도 영문의 오토바이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과연, 기준의 일탈은 ‘한여름 밤의 악몽’으로 끝날 수 있을까.
여름, 아이들이 만나지 않았더라면 모두의 일상은 여름이 지난 후에도 각자의 방식으로 평온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결국, 여름의 만남에서 가장 크게 상처 입고 망가진 것은 ‘나쁜 아이들에게 물든’ 기준이 아니라, ‘세상과의 단절을 배운’ 영문 형제가 아닐까.
온전한 질문만을 남긴 채, 스크린은 암전된다.
마지막, 기준을 태운 채 떠나는 차를 바라보는 형제의 시선이 마치 관객들에게 “당신은 어떤가요”하고 묻는 것만 같았다.
영문의 억울하면서도 서글픈 눈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영문 역을 맡은 최현진 배우가 여러 드라마에 아역으로 출연해서 좋은 연기를 보여준 라이징 스타라고 하는데,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편이라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조만간 개봉하는 <비밀일 수밖에(2025)>에 주인공의 아역으로 출연하는 등 필모그래피를 다채롭게 채워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의 성장이 정말 기대되는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