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돈 없고, 아빠 없고, 술 마시는 엄마와 어린 동생만 있는 삶을 살았던 희주.
그녀에게는 재능이 많았지만 꿈을 꿀 여유나 시간은 없었다.
희주는 생계를 위해 간호조무사로 일하던 병원에서 병원장의 아들 현성을 만나 결혼한다.
해원의 말대로, 그건 사랑이 아니라 필요였다.
부족한 것 없는 삶을 알고 나자 불현듯, 희주에게 공허감이 찾아왔다.
자신을 부족함 없이 사랑해 주지만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남편, 며느리로서의 인정은커녕 인간으로서의 존중조차 받지 못하는 시댁. 유일한 낙이었던 딸 리사마저 조기유학을 떠나고 나자, 희주는 자신이 존재하는 의미를 찾기 시작한다.
사실 희주가 원하는 ‘존재의 의미’는 그렇게 거창하고 철학적인 사유가 아닐 것이다.
쓸쓸함을 토로하는 희주에게 남편 현성은 ‘뭐든 당신이 할 만한 것’을 찾아보자고 하고, 그렇게 희주가 선택한 것 중에는 독일어 공부가 있었다. 사유는 “시댁 식구들이 독일어는 모를 것 같아서”였다.
그녀는 스스로가 아닌, 타인의 인정으로하여금 존재 가치를 지니는 인물이다.
독일어 교실에서 만난 해원은 희주가 ‘닮고 싶은 사람’이다.
해원은 희주의 지난 날처럼 가난하지만, 그것 빼고는 모든 것이 달랐다. 해원에게는 어떻게든 그녀의 꿈과 장래를 응원하고 지원하려고 노력하는 화목한 가족이 있었고, 덕분에 세상의 때가 덜 묻은 해원의 순수하고 청량한 면모는 희주를 단숨에 매료시켰다.
가난조차 장식품처럼 보일 정도로 빛나는 사람. 그런 해원을 타락시킨 장본인이 그토록 그녀를 선망하던 희주라는 것이야말로 아이러니다.
해원을 선망하던 희주는, 그녀에게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해원의 ‘친한 선배’ 우재를 만나게 된다. 우재를 향한 희주의 첫인상은 어디까지나 ‘무례하고 예측 불가능한 어린애’였겠지만, 우재에게는 그렇지가 않았다.
우재는 해원에게서 희주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 어쩌면 그때부터, 그러니까 처음부터 우재는 희주에게 자신만의 환상을 덧씌워 놨을지도 모른다.
희주는 우재 앞에서는 다른 것은 다 필요 없이, 속이거나 포장할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로 있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한다.
그림 같은 아일랜드에서의 도피 생활은 그래서 더욱 아름다웠을 것이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겉치레를 해야 할 대상도 없는 고즈넉하고 한적한 아일랜드 시골에서 너와 나에게만 충실할 수 있었고, 그래서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가난했던 우재와 달리 이미 ‘부유한 자의 삶’을 알아버린 희주는 절대 남편과 시댁을 놓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무작정 따라 온 우재와 달리, 아무것도 버리지 않고 몰래 떠나온 희주는 처음부터 이 시간에 기한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희주는 현실적이고 실리적이지만, 충동적인 사람이다. 해원에게 그림을 배우기로 할 때조차 깊은 고민은 없었다. 물론, 미술 과외를 받는 것 정도로 깊은 고민을 해야 할 현실에 있지도 않았지만.
다만, 그녀의 충동에는 브레이크가 존재했다.
자신이 애까지 있는 유부녀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도 브레이크 없이 들이박는 우재에게 넘어갔을 때도, 아일랜드로 도피성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우재와 함께 살 때도, 현실을 깨닫고 정신을 차릴 정도는 되었다. 자신의 가슴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우재를 향한 열정을 견뎌낼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정지’가 선을 넘지 않은 건 아니다.
“나는 너의 무모함이 싫었다. 그리고, 너의 무모함이 좋았다.”
우재의 무모함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희주가 유부녀임을 알면서 사랑에 빠질 때도, 희주를 따라 아일랜드로 떠날 때도, 우재는 계획이나 생각이라는 걸 한 적이 없다. 심지어, 기억을 잃은 채 돌아왔을 때도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만난 희주에게 반강제적으로 키스했을 때조차도.
다음. 다음이라는 단어는 우재의 머릿속에 없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희주가 우재에게 빠져들게 만든 지점이었을 지도 모른다.
동시에 우재는 무책임한 사람이다.
우재는 돈 때문에 남편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희주의 말에 “내가 어떻게든 하겠다”고 말하면서도 끝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희주를 사랑하고, 아이를 사랑하고, 아일랜드를 사랑하고, 아일랜드에서 보내는 시간을 사랑하는 것. 그것만이 우재가 한 일의 전부다.
희주는 그의 무모함을 사랑했지만, 그의 대책없음에 질렸다.
물론, 그가 어떻게든 돈을 벌었어도 결국 희주는 떠났겠지만.
심지어 우재는 무도하기까지 하다.
그에게 사회의 통념이나 법적인 문제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희주가 유부녀라는 사실이나, 한국에 어느 날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진 자신을 애타게 찾는 아내가 있다는 사실이나, 호수가 자신의 아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 같은 것은 그에게 고려 대상이 아니다.
우재는 자신의 행동과 희주를 향한 감정이 무책임하다는 걸 알지만, 그로 인해 발생할 타인의 상처는 헤아릴 줄 몰라서 그게 왜 나쁜지를 모르는 부도덕한 인간이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당신 아무도 가질 수 없어. 그래야 공평해.”
우재에게 희주는 떠난 사람이 아니라 뺏긴 사람이다.
“내가 빼앗긴 것들을 모두 되찾아 올 거야”라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 우재는 현성에게 내가 사랑하는 여자와 내 아이, 내 시간과 내 미래를 빼앗겼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우재의 광기 어린 집착은 결국, 희주를 향한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 현성을 향한 질투와 복수가 섞여 있었던 게 아닐까.
여권까지 들고 도망간 여자를 대책 없이 미련하게 기다리다가 끝내 버티지 못하고 (대사관의 도움을 받든지 해서) 결국 홀로 귀국했다면, 우재는 희주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성의 등장으로 인해 우재는 희주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존재’임을 깨달을 기회를 놓치게 된다. 우재가 현성에게 빼앗긴 것은 ‘사랑’이 아니라 ‘기회’였던 셈이다.
희주도, 우재도, 현성마저도. 모두가 해원에게 무례했다.
희주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남편이나 몰래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우재에게 형식적이나마 감사함과 미안함을 느낄 줄 아는 인물이지만, 해원에게는 끝까지 무례했다.
물론, 우재는 해원만이 아닌 모두에게 무례했지만.
해원이 원했던 것은 당사자들에게 ‘지난날의 진실’을 듣고 ‘진심 어린 사과’를 받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떠나버린 우재를 굳이 다시 데리고 와 제 곁에 두는 것도, 기억을 잃은 우재와 행복하게 새출발하고 싶어 하면서도 굳이 그의 기억을 찾아주려고 한 것도, 그런 우재를 또 굳이 희주와 만나게 한 것도.
희주가 해원을 보자마자 불쾌감부터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우재가 기억을 찾고서도 사과는커녕 설명조차 하지 않은 채 거부하는 것에만 몰두하지 않았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해원도 우재도 알고 있었다. 희주는 언제든 우재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재는 끝없이 희주에게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했다. 희주가 가족에게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 했던 것처럼.
당신이 하지 말라고 하면 이 결혼 안 할 거예요.
당신이 남편 만나는 자리에 나도 나갈 거예요.
우재는 희주가 ‘해원이와 헤어지고 내게 오라’고, ‘남편과 헤어지고 네게 가겠다’고 해주길 기다렸다. 물론, 희주로서는 입이 찢어져도 할 수 없는 말이었겠지만.
우재가 현성에게 던진 “그런 여자가 평생 당신만 보고 살 것 같아?”라는 말은 결국 자신을 향한 것이다. 우재는 알고 있었다. 희주가 언제든 저를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지킬 것이 너무나도 많았던 희주와 달리 우재에게는 오직 희주뿐이었다. 우재의 세상에선 희주만이 ‘진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다음’이 없는 것 같은 무모함은 거기에서 출발한다. 희주의 남편, 본인의 아내, 누구에게든 두 사람의 관계를 말하는 것쯤이야 우재에게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우재는 끝까지 해원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희주를 잃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우재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에, 그래서 우재는 해원을 자신의 ‘보험’으로 남겨두고 싶었던 것일까. 그에게도 돌아갈 곳은 필요했을 테니까. 희주처럼 말이다.
“사람은 진짜 같지 않아서 안 그린대요.”
해원은 희주에게 우재를 처음 소개할 때도, 희주가 여러 이유를 대며 둘의 결혼을 말렸을 때도, 당당하게 “그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렇다. 해원은 우재가 타인에게 특별한 애착을 느끼지 못하는 부류의 인간임을, 그에게 자신은 그저 ‘친한 후배’에 불과함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해원은 그와 함께하길 원했다.
어쩌면, “이게 내 방식”이라던 그녀의 말처럼 더 노력하고 더 헌신하면 언젠가는 제 사랑과 희생이 빛을 발할 거라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만 해도 찬란하게 빛나던 그녀의 삶은 대체적으로 그런 방향성을 보여주었을 테니까.
희주와 우재의 배신과 거짓말은, 그랬던 해원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엎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네가 자초한 거다.”
그 시절 해원의 인과는, 믿음을 뒤집으면 배반이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불행을 전시하고 싶었다.”
마뜩잖아하는 우재에게 주장을 밀여붙여 결혼식까지 올렸지만, 해원은 자신이 불행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쩌면 해원의 복수 대상에는 우재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기억을 잃은 우재를 굳이 다시 희주와 만나게 하고, 우재가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길 바라면서도 기억을 되찾길 바라고, 둘 중 하나가 죽기 전엔 그를 놓아주지 않겠다는 해원의 모습은 마치 우재에게 “봐. 넌 죽어도 그 여자 못 가져”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헤어지고 싶어? 그럼 빨리 죽어. 아님 날 죽이던가.”
오직 희주뿐인 남자를 자신의 곁에 묶어두고 죽어서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복수가 아니었을까.
모두의 예상대로 우재는 결국 또다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희주에게서 버려진다.
그녀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인지, 그녀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마지막에나마 그녀의 곁에 있었다는 위안을 얻고 싶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우재는 살지 않는 길을 택한다.
아일랜드에서도 한국에서도 우재를 버렸던 희주는, 마지막에는 그를 호수에 버린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또한 가장 찬란했던 시간을 함께한 바로 그 호수에.
희주는 호수가 보이는 요양병원에서 일하며, 폐쇄된 낚시터에서 시간을 보낸다. 어쨌든 그녀는 우재의 곁에 머물렀다. 아니, 우재가 그녀의 곁에 남았다. 어쩌면, 이것은 희주의 속죄이다.
그녀가 종소리를 들은 직후 우재를 향해 몸을 던졌는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해원의 복수가 반쪽짜리가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원은 이미 말했다. ‘둘 중 하나가 죽으면 놓아주겠다’고.
우재는 죽었고, 해원은 약속을 지켰을 뿐이다. 희주의 마지막 비밀을 지켜줬던 것처럼.
더 이상 해원의 가슴에 그가 남지 않았으므로, 어쩌면 우재는 용서받았는지도 모른다.
희주가 들은 순수의 종소리가 어쩌면 우재의 용서였을지도 모르는 것처럼.
캐릭터 포스터를 보면 인물마다 칠해져 있는 색이 다르다.
공식적인 인터뷰 발언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녹색은 ‘용서한 사람’, 붉은색은 ‘용서받은 사람’을 뜻한다고 생각했다.
희주와 우재를 용서한 해원
해원에게 용서받고 희주를 용서한 우재
우재와 해원에게 용서받은 희주
용서하지도, 용서받지도 못한 현성
현성은 희주가 우재와 함께 도망갔다고 생각한다.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을 버리고 떠난 희주와 자신의 아내를 빼앗아 간 우재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하니, 자신이 우재를 죽이려고 했던 것이 ‘용서받아야 할 죄’라는 것 역시 영영 인식하지 못할 것이고.
진정한 복수는 용서하지 않는 것
이 드라마의 캐치프레이즈다.
버림받고 상처 입은 자들이 용서함으로써, 이 슬픈 복수극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흔적 언저리에, 현성만이 홀로 남았을 뿐이다.
완벽한 복수에 성공한 사람은 어쩌면 우재가 아닐까.
사실 나는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편인데, 특히 사랑, 치정이 주요 소재인 드라마는 일부러 안 보려고 하는 경향이 좀 있다. 영화도 로맨스 장르는 흥미 없어 하는 취향인 탓이 크다. 개인적으로 극의 전개에 러브라인이 끼어들어 흐름을 깨는 것이야말로 ‘극’불호다.
그래서 사실 <너를 닮은 사람>은 방영 당시엔 아예 흥미조차 가지지 않았던 작품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런 드라마가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신작 드라마 정보를 검색해 볼 사람도 아니고, 로맨스도 안 보는데 심지어 불륜이 주요 소재였으며, 딱히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보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너를 닮은 사람>은 단순한 치정극이 아니라 꽤 괜찮은 심리 스릴러다.
원작 소설이 더 치밀하게 잘 짜여 있다고 해서 읽어 볼 생각이다.
OST가 너무 좋아서 앨범을 구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