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성폭력
성폭력 상담원 100시간 교육 - 서울동북여성민우회
조직 내 성폭력 사건 지원자 교육 - 한국성폭력상담소
발달장애인 성교육 -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인권강사 양성교육 - 안양여성의전화
성교육활동가 양성교육 - 서울동북여성민우회 성교육활동가모임 성장통
청소년지도사/사회복지사 관련 학점: 청소년문제와보호, 청소년문화, 청소년복지론, 청소년심리및상담, 청소년육성제도론, 청소년지도방법론, 청소년프로그램개발및평가, 청소년활동론, 가족복지론, 사회복지실천기술론, 사회복지실천론, 사회복지정책론, 사회복지학개론, 아동복지론
지난 3개월 동안 내가 듣고 있는 강의목록이다. 나름대로 세 번째 인생으로 폭력 예방 강사를 준비하고 있다.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공부는 즐겁다. 머리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공부다. 이론도 채워야 하지만 그 이론을 몸에 습으로 스며들게끔 소화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계속 내 인생을 반추하며 강의를 듣게 되고, 그러다 보니 과거 인생의 몇몇 장면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내 마음속에 급부상하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다. 4, 5, 6학년 즈음? 친척집에서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고 낮잠을 자면 슬며시 와서 내 옷 속에 손을 넣고 나를 만지는 친척이 있었다. 20년은 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생생한 장면.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면서 아직도 그 친척과는 웃으면서 인사하는 사이로 지내고 있다. 물론 내가 다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말로 꺼내보지도 못했다. 이제는 꺼내야 할 것 같아. 타인이 성폭력 당했을 때 돕는 게 내 역할이 될 것인데, 과거의 나를 아직도 돕지 못하고 있다는 건 역설이다. 과거의 경험이지만 현재의 기억이다. 그 일은 내겐 마주하고 풀어내야 할 현실이다.
중학교 때였다. 소위 말해 학교에 일진이 있었다. 키와 골격이 매우 발달한 여성이었다. 다른 반 학생이었던 그는 어느 쉬는 시간에 우리 반 문은 벌컥 열어젖혔다. "야!"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 우리 반 모두가 뒷문을 쳐다봤다. 그는 갑자기 내 친구에게로 갔다. 키 150 내외의 작은 내 친구, 멋 부리는 것, 노래하고 춤추는 것, 연애하는 것을 좋아하던 내 친구에게로 다가가 뺨을 후려쳤다. 내 친구는 교실 나무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이들이 모두 얼었다. 그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내 친구의 뺨을 후려치고 내 친구는 넘어지고 일어났다. 그러면 또 뺨을 때렸다. "네가 먼저 꼬리 쳤지?" 계속 빰을 때리며 내뱉는 말 몇 조각으로 상상해야 했다. 왜 내 친구는 마른하늘의 날벼락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가. 교실 맨 뒤부터 시작된 폭력은 내 친구가 교실 맨 앞 구석으로 몰릴 때까지 수십대가 계속됐다.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일진도 무섭고 폭력도 무서웠다. 내 친구가 뭔가 맞을 짓을 했나? 아니 세상에 맞을 짓이란 게 있나? 이건 분명 잘못된 일이야.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선생님에게 말하는 선택지는 아예 머릿속에 있지도 않았다. 당시 나는 선생님을 믿지 않았다. 수업이 시작되고 아이들은 아무 말 없이 수업을 들었다. 아마 나처럼 수업을 듣는 것처럼 하지만 속으론 각자 별 생각을 다 하고 있었겠지. 그 수업이 끝나고 내 친구는 나에게 왔다. 평소처럼 웃으면서 나에게 와서 어제 있었던 재밌는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풀어내었다. 나는 그런 친구를 보며 평소처럼 또 웃어주었다. 못 본 척해달라는 것만 같았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 친구는 지금 아기의 엄마가 되어있다. 나와 그 친구, 그 친구의 폭력 현장을 목격했던 또 다른 친구들 그 누구도 그 일에 대해서 지금까지 이야깃거리로 삼은 적 없다. 그냥 이렇게 묻어두고 가면 되는 걸까.
난 사실 그 친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말 많은 사람을 불편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주 '만나자'는 얘기를 꺼내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만나는 건 좀처럼 하지 않는 나란 인간. 그런 내가 아직도 그 친구와의 연락을 끊지 못했던 것은 그때 그 일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번에 교육을 들으며 하게 됐다. 그때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그때 내가 잘못된 것을 보고도 못 본 척했던 것이 어떤 감정으로 그 친구와의 관계에 내려앉은 것이다. 죄책감, 미안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나에게 와 일상을 털어놓던 그 친구의 사랑스러움.
그때로 돌아간다면 난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가해자의 손목을 잡으며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덩치로는 꿀리지 않았으니 당하진 않았겠지만 그 이후에 후폭풍은 좀 있었을 거다. 값나가는 소지품이 없어진다거나, 열심히 필기한 노트가 찢어져 있다거나, 사물함 자물쇠가 파손된다거나 하는 그 일. 내 친구에게 일어났던 그 일들이 어쩌면 나에게 일어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땐 그런 게 무서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거겠지.
남초 직장에서 성희롱은 공기였다. 대전에서 직장 생활하던 시절 야유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전 직원 15명이 한 테이블에서 밥을 먹는 자리였다. 연봉 3억은 받는다던 센터장님이 우리 팀 다른 여자 박사님을 향해 큰 목소리로 물었다. (중저음) "000 박사는 질염이 있다며?" 우리는 모두 놀라 센터장을 쳐다봤다. 눈치가 없는 건지 모르는 채 하는 건지 센터장의 입은 말인지 똥인지 모를 것을 계속 뱉어댔다.
"빨리 애인 만들어. 애인 없으니까 거미줄 생기잖아. 껄껄 껄껄"
질염을 보고 거미줄이라 칭한 것이다. 모두가 있는 공적인 자리에서 한 여성의 사생활을 아주 짧은 문장으로 모두 폭로한 것이다.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2015년 정부출연연구소 센터장의 발언이다. 부하직원의 건강검진 결과를 모두 살펴본 것이었고 모든 직원이 있는 곳에서 당당히 말한 것이다. 이 세상 텐션이 아니다.
난 이때에도 아무 말하지 못했다. 물론 회사 막내인 내가 뭘 할 수 있겠느냐 생각해버리고 끝낼 수 있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난 입사 4개월 만에 병이 나서 퇴사했고, 퇴사하면서도 아무 말 못 했기 때문이다.
슬픈 지점은 성희롱 발언을 들었던 여자 박사님이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센터장님이 건강검진 결과를 본 건 잘못이지만 볼 수도 있는 것이라 받아들였다. 뭘 어떻게 하겠느냐, 이게 다 였다. 그저 농담이었다고 받아들였다. 거미줄이 왜 잘못됐는지 같은 건 정말 모르는 걸까?
요즘 생각나는 것만 해도 이 정도다. 과거의 일부다. 다들 이 정도는 겪은 채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나만 유난스럽게 과거를 놓지 못하는 걸까? 남들에겐 겨우 이 정도 과거인 걸까? 이 정도 과거는 정돈하지 않고 지나쳐도 괜찮은 걸까?
혼자 있을 때면 나는 자꾸만 그때 그 자리에 선다. 과거의 고민은 아직도 현재의 고민으로 살아있다. 그때의 나는 어떻게 하면 좋았을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제 숙제를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은 후회하지 않으면 좋겠다. 폭력의 순간을 붙잡고 사는 건 하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 선택의 순간이 닥쳤을 때 뭘 해야 할지 이미 알고 있으면 좋겠다. 당신들은 평생 마음속에 숙제를 갖고 살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 그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내가 이제라도 방법을 찾고자 한다. 나라도 괜찮다면 내가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 공부 열심히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