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 만들기

31일마다 5일씩 피 흘리는 악마

2023. 2. 4. SAT.

by 보라체

퀴어인구와 월경분순 인구를 포함하여 인류의 절반쯤이 한 달 중 4일가량을 피를 흘리며 살아가고 있다. 이 무슨 상황일까. 거리를 보면 사람들은 그냥 사람들인 것처럼 보인다. 치마 입은 사람, 바지 입은 사람. 뚜벅뚜벅 어디로든 향하고 있는 그들을 보며 저들 중 월경통 때문에 매달 고생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또 생각해 본다. 그게 바로 오늘의 나니까.


13세에 초경한 이후로 월경 시작하기 일주일 전부터 끝날 때까지 이런 생각을 달고 산다. 월경 중이 아닐 때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는데 딱 그 시기만 되면 지구에 살고 있는 지적생명체 중 월경인구를 생각해 본다. 수학을 못해 정확한 계산을 못했지만 그렇게라도 이 외로운 고통이 인류적 고통이라고 승화하고 싶은 욕구가 피어나는 것이다.


매달 아프다. 13세 이후로 서른몇 살이 된 지금까지 20년이 넘도록 월경불순 없이 꼬박꼬박 아프다. 월경분순을 겪고 있는 사람이 이 글을 보면 짜증이 나시겠지만 사실이다. 왜 나는 월경불순도 없을까 좌절하기도 한다. 한 달 걸러가지도 않는다. 왜 내 월경주기는 31일일까. 짜증 나게 고맙다. 25일인 사람도 있다던데 31일마다 한 번이라니 25일에 비해 다행히 아닌가? 월경주기가 25일인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심지어 이 글을 읽고 있는데 월경 중이면 더 짜증 나실 듯.


이 무의미한 계산들은 매달 나를 찾아오는 고통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고통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월경통이 심한 편이다.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평생 받아왔지만 뭐가 나오진 않는다. 어릴 때는 약 먹으면 안 된다는 잘못된 정보 때문에 정말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참았다. 요즘은 그냥 아프면 바로 약을 먹으니 버티기가 좀 나아지긴 했다.


월경 때마다 아픈 나를 보면서 가족들은 유난 떤다고 하기도 했었다. 아프면 잠을 못 자고 앓는다. 학교도 직장도 가지 못하고 그냥 앓기만 한다. 배가 아파서 다리를 뻗지도 못한다. 하반신에 감각이 없어진다. 다리가 제대로 올라가지 않으니 걷는 것도,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어렵다. 넘어지기도 한다. 허리가 아파서 제대로 앉아 있을 수도 없다. 손발이 급격히 차가워진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화장실을 계속 들락날락해야 해서 일상생활이 안 된다. 이렇게 정말 매달 꼬박꼬박 아프니까 내가 봐도 참 유난이다 싶었다.


중학교 때는 아프면 양호실 가고, 엎드려 있곤 했는데 선생님들이 보시기엔 너무 자주 아픈 것이다. 몸도 건강해 보이는 애가 아프다고 하니까 애들도 안 믿고 선생님도 안 믿고. 학원 선생님들도 안 믿고 나는 점점 더 게으른 사람처럼 보이게 되었다. 점점 더 억울해졌다. 왜 난 월경해야 하는 여자로 태어난 걸까.


대학교에 갔을 때 '생리결석'이던가? 월경하는 사람을 위해 출석을 인정해 주는 제도가 논의되고 적용되는 시기였다. 우리 과는 1학년 80명 중 여자가 13명이었는데 쓰기가 정말 어려운 분위기였다. 남자애들은 불공평하다고 월경 중임을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왜 월경을 주말에 붙은 금요일이나 월요일에 하는 거냐며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월경이 뭐 하루만 하는 건 줄 아는 건지 뭔지. 이젠 기억도 안 난다.


물론 회사에 다닐 때도 '생리휴가' 얘기는 계속 진행됐다. 나는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그 제도. 지금도 나는 월경통이 심한 달에는 그냥 연차를 쓴다. '생리휴가'가 정확히 뭘 말하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도 내 몸을 이해하기 어렵다. 평소엔 운동도 좋아하고 노는 것도 좋아하는데 겨우 월경에 무릎 꿇어야 한다니. 아무리 좋은 일정을 잡아 두어도 그 달의 월경통이 도와주지 않으면 다 취소해야 한다. 월경통이 도와준다는 건 어떤 거냐고?


월경통이
1. 약속/출근시간을 피해서 찾아오면 횡재! 딱 맞춰 찾아오면 젠장!
2. 주말에 찾아오면 횡재! 평일에 찾아오면 젠장!
3. 밤에 찾아오면 횡재! 아침에 찾아오면 젠장!
4. 집으로 찾아오면 횡재! 밖에서 찾아오면 젠장!


약속/출근시간 피해서 밤이나 집으로 찾아오기만 해도 약 먹고 찜질팩 붙이고 애인이 마사지해 주고 그러면 좀 낫다. 약 먹고 누워서 자면서 버티는 게 제일 좋다. 집에 있을 때가 아니면 약 먹고 앉아서 일하며 버티는 건데 그건 좀 많이 힘들다. 어떤 날은 앉아서 버티다가 집에 가는 길에 에너지가 바닥나서 그대로 길가 구석에 주저앉기도 한다. 주말에 와주길 간절히 바란다. 갑자기 휴가 쓰고 결근 하는 것보다는 사적인 약속 취소하는 게 덜 부담스러우니까.


이런 내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너무 약속을 가볍게 여긴다고 생각하기도 할 테고, 너무 나약하다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았다. 책임감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가장 많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그리고 그건 월경 중인 나한테만 들리는 내 목소리이기도 하다. "책임감 없게 이런 식으로 하냐?" "너 이 정도밖에 안 되냐?"


누구나 월경통이 나처럼 힘든 일은 아니라서 생기는 오해일 것이다. 사람들도 나처럼 호되게 월경시기를 보내는 것 같진 않아. 그렇다고 사람들한테 내 월경통에 대해 낱낱이 다 설명할 수도 없는걸.


나: 저기... 저 이번에 참석을 못 할 것 같아요. 죄송해요. 월경통이 심해서요 ㅠㅠ
너: 그래요. 어쩔 수 없죠. 다음에 만나요.
나: 아니, 제가 월경통이 정말 심하거든요. 주저리주저리...
너: 아, 예. 힘드시겠어요.


가장 속상한 건 나다. 누가 내 마음을 알아줄까? 아! 외롭다. 얼마나 외롭냐면 내가 월경통을 겪을 때마다 옆에서 나를 돌봐주는 애인에게 너무 고맙지만, 고마운 마음과는 별개로 '네가 이 월경통을 겪어보고 나를 돌봐줘야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알 텐데'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어쩜 그리 사악한지. 내 성격을 이모양으로 모나게 만든 것도 월경통이라고 생각한다. 비약일까? 모든 게 다 싫고 짜증 나고 밉고 밀어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걸. 내가 왕이다! 다 꿇어라! 이런 느낌. 사실은 다르다. 모두 다 월경통님께 무릎 꿇어라. 나도 이미 꿇었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창피함을 모르는 난 31일마다 5일씩 피를 흘리는 악마이다.


월경통은 몸뿐만 아니라 내 정신까지도 갉아먹는 것 같다. 월경통 전후로 찾아오는 우울이 너무 크다. 이사, 퇴사, 이별 등 내 인생의 모든 큰 결정이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월경이 끝나면 갑자기 등에서 날개가 나아와 쫘악 펼쳐지는 느낌이다. 내 발을 땅에 묶어 두었던 쇠사슬이 툭, 끊어진 느낌.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허리부터 목까지 척추가 곧게 펴지고(월경 기간 중엔 제대로 못 펴니까), 팔도 좌우로 쫙 펼쳐지고(척추가 펴지니까) 눈도 잘 보이고 머리도 잘 돌아가는 느낌(두통도 사라지고 진통제 안 먹어도 되니까). 몸도 가벼워지고(화장실 안 가도 되니까) 그냥 그야말로 날아갈 것 같은 몸 상태가 되는 것이다.


조울증에 원인이 어디 있겠느냐만, 이번에 조울증 진단이 나오면서 난 내 월경통을 원인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20년 넘게 매달 이렇게 기분변화를 겪어 왔다. 이게 조울증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지금도 허리를 동그랗게 말고 피를 흘리며 억울하고 외로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더 많은 여자들이 생명공학과를 입학해야 한다. 다들 의사, 약사, 신약개발원이 되어 월경통을 처리하는 신약을 개발해야 한다. 제발 그런 세상이 하루빨리 와야 한다. 월경통은 유전되기도 한다. 임신 계획도 없지만 진심으로 딸 낳기가 두렵다. 월경통과 이별하고 싶다.


굉장히 좋음, 좋음, 편안함, 아쉬움, 나쁨 다섯 개의 그라데이션 중 하나를 선택해 감정일기와 함께 기록합니다. 어떤 그라데이션이 어떤 감정의 단계인지는 저만 아는 비밀입니다. 근데 아마 앞으로 쌓여갈 감정일기를 보시면 누구나 정답을 맞히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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