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 만들기

몰입의 시간을 앞두고

과거 회상

by 보라체

몰입하는 내가 좋았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목표만을 향해 달리는 내가 좋았던 걸까. '안 될 거야', '무모하다' 같은 부모, 친구, 선생님들의 말이 나한테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는 게 기뻤던 것 같기도 하다. 무엇하나 성실하게 해내는 게 없는 내가 베짱이로 살아갈까 봐 걱정하시던 부모님께 아니라고, 나도 개미처럼 성실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어서 좋긴 했다.


나도 두려웠다. 내가 목표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창피해서 어쩌지? 방법이 너무 무모해서 결론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면 어쩌지? 그래서 매일 주변 사람들의 불안한 시선과 폭력적인 말들을 견뎌냈다. 될 때까지 하면 된다는 의연한 마음은 매일 흔들렸지만 부러지지 않았다. 이 시간들은 고됐지만 성과를 남겼기에 멋진 기억으로 남은 게 아닐까.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에서 자주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신 것 같은데 그때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면 어떠실 것 같냐는 질문이다. 백이면 백,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답하더라. 그 힘든 시간을 다시 겪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성공했다면 도전 따위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 인생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고 나는 성공하고 싶으니 도전을 할 수밖에 없다. 도전이 도박이 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하고 싶다. 풍덩 뛰어들어 몰입하고 싶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겠지만 결국엔 좋은 결과를 손에 쥐고 싶다.


지금 보니 지나간 몰입의 시간에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첫째는 달성해야 할 목표와 기간이 결정되어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그 기간이 짧았다는 점이다. 셋째는 돈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번 도전도 공통점을 갖는다. 기간과 목표가 결정되어 있고 기간은 6개월, 짧다. 그리고 나에겐 돈이 없다.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목표는 정해졌다. 시간과 에너지를 분배해서 몰입할 시간이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긴 몰입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몰입을 위하여, 나와 주변사람들을 잃지 않는 몰입을 위하여 칼을 가는 심정으로 지난 시간을 복기한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겨우 몇 번 몰입의 시간을 가졌었다. 이젠 너무 오래된 일이지만 오늘부터 시작될 새로운 몰입의 시간을 앞두고 과거를 꺼내 맛보려 한다. 과거를 곱씹는 행위 자체가 사치라는 생각이 몰려오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곱씹을 테다. 돌아보면 뭐 하나 건져낼 교훈이 숨어 있을지도 몰라.


annie-spratt-O1TNdLNvJLM-unsplash.jpg

나는 책을 좋아하는 멋진 어린이라구! 후훗.

첫 번째 몰입의 경험은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 아주 어린 시절이다. 부모님이 사진 책 전집을 15권 정도 머리맡에 놓고 잠을 청했다. 15권을 다 읽어야 불을 끄고 마음 편히 잘 수 있었다. 머리맡의 책을 다 읽지 못하면 불을 못 끄게 소리소리를 질러서 많이 혼났다. 몰입이 아니라 강박이었나. 책 좋아하는 어린이라는 부모님의 자랑거리가 되고 싶었고,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었다.


일부러 성적 떨어뜨리기

두 번째는 중학교 시절이다. 가고 싶은 고등학교가 있었는데 내 성적으로는 갈 수가 없었다. 우리 학교에 성적향상상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성적향상상은 중간고사에 비해 기말고사에서 성적이 몇 점 이상 오른 과목마다 1장씩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심지어 상장점수는 내신 200점 만점 중 1장 당 0.5점을 받을 수 있으니 너무 큰 점수였다.


선생님과 부모님께 죄송하지만 중간고사를 망쳤다. 평균 80이 넘던 아이가 평균 50을 받았으니 망쳤다는 표현도 괜찮아 보인다. 이후 기말고사는 껌 씹듯 준비했다. 원래대로만 공부해도 평균 30점씩은 오를 테니 공부하기가 얼마나 신이 나던지! 결과는 좋았다! 1학기뿐만 아니라 평소보다도 높은 평균성적이 나왔다. 그렇게 10개 넘는 과목에서 성적향상상을 받아 내신을 올려서 원하는 고등학교에 갈 수 있었다. 꼼수일까? 상관없다. 인생에 정도가 어디에 있나? 지금 보니 이 경험은 내 인생에서 내가 내린, 주체적인 결정 중 하나였다.


feliphe-schiarolli-hes6nUC1MVc-unsplash.jpg


방학 내내 한 과목만 공부하기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는 시기라 중요한 시기라고 봤다. 이렇게 공부해서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마침 재밌는 영어 참고서를 한 권 손에 넣게 되면서 이 책에 나를 불태우기로 한다.


장소는 집 근처 독서실이었다. 방학이니까 천천히 아침 10시에 들어가 밤 10시에 나왔다. 식사는 1층 김밥집에서 점심 때는 김밥 한 줄과 단무지, 저녁 때는 만두 한 판과 단무지로 끝냈다. 매일 같은 걸 먹어도 전혀 질리지 않았다. 어떤 날에는 공부 끝내고 밖에 나오니 갑자기 눈이 한 뼘이나 쌓여 하얀 세상이 되어 있기도 했다. 이렇게 눈이 쌓이는 동안 공부하다니, 장하다!


참고서에는 답체크도, 필기도 하지 않았다. 틀린 문제는 노트에 그대로 옮겨 적는 벌칙을 줬다. 같은 책으로 두 번, 세 번을 풀어도 여전히 모르는 단어가 나오고 답은 틀리더라. 세 번까지 풀고 네 번째 횟수를 시작하면서 방학이 끝났는데 곧이어 치른 모의고사에서는 영어가 1등급이 나오더라. '완벽하게 알지 못해도 성적은 오르는구나', '100점 받지 못했는데도 성적이 오르니 기쁨과 뿌듯함이 있구나' 싶어서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토익점수 270점 올릴 수 있는 시간, 50일

대학원 입학을 준비할 때였다. 연세대 입학을 앞두고 있었는데 영어성적 때문에 미끄러졌다. 나중에서야 찾아보니 설카포 스카이 서성한, 어디도 토익 550으로는 갈 수 없었다. 급하게 토익학원 단과를 신청했다.


멀리 서울 강남까지 학원을 다녀야 하니 매일은 못 가겠고 토요일 하루로 오전은 LC, 오후는 RC를 끊었다. 평일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점심은 집에 있는 반찬으로 도시락을 싸갔고, 저녁은 도서관 매점에서 컵라면으로 때웠다. 한 달 만에 다시 본 토익은 700이었고, 그다음 2주 뒤 토익시험에서 820을 받았다. 이후 토익점수 때문에 고생하는 대학교 후배들을 보면 나처럼만 하면 된다고 알려줬는데 어쩐지 야유를 들었다.


unseen-studio-s9CC2SKySJM-unsplash.jpg


매일 비빔밥 한 그릇

마지막 기억은 학위논문을 쓸 때다. 아침 11시 반에 일어나 학교식당에서 비빔밥을 시켜 먹었다. 늘 똑같은 메뉴.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 앉아 작업을 한다. 그러다가 다섯 시 반이 되면 저녁으로 학식을 먹는다. 메뉴는 뭔지 모른다. 그냥 가서 주는 대로 받아먹는다. 그리고 학교 주변을 걷는다. 한두 시간 정도. 7시 반부터 다시 앉아서 새벽 다섯 시 반까지 그냥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 논문을 쓴다. 그럼 6시간 자고 일어나 또다시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논문을 완성하고 무사히 졸업했다. 우수논문상 같은 건 받지 못했지만 지식탐구의 아주 작은 어떤 단면을 경험한 느낌이 들었는데 뭔가 벅차오르고 뭉클한 감정을 느꼈다. 논문을 썼다기보다는 낳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아. 지금 보면 너무 부족하지만 그때 나는 내 논문이 제일 좋았다.


과거로부터 배울 점이 있나?

칼을 가는 심정으로 꽤 엄숙하게 시작한 과거회상이었는데 별로 배울 게 있진 않아 보인다. 아무도 모르게 풍선에서 바람이 새는 것처럼 새어 버린 허무한 결론이라 스스로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세 가지 정도 두루뭉술한 조언은 내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1. 지속가능한 방식을 찾을 것
2. 걷는 시간을 확보할 것
3. 가까운 사람들을 잘 챙길 것


짧게는 6개월, 길게는 몇 년이 될지 모르는 이 시간을 정면으로 맞이하고 돌파하고 싶다. 무모한 방법일까? 그동안은 내가 해오던 것들이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는 점이 다르다. 괜찮을까? 내 성취만 목표로 하느라 가까운 사람을 잃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소중한 사람들과 멀어지지 않고 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무섭고 또 무섭다. 두려움에 치를 떤다. 그래도 풍덩 이제는 몰입의 시간으로 다이빙할 타이밍이다. 앞으로도 브런치에 계속 글을 쓰며 나를 붙잡으려 한다. 앞으로 나의 도전기를 읽어줄 사람, 혹시 누군가 있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구직활동? 때려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