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 만들기

구직활동? 때려칠래!

by 보라체

구직활동을 때려치울까 싶다.


지난 글에서 어디에 지원하고 있는지 잠깐 소개를 했었다. 경과보고를 하자면, 대기업은 인성검사에서 광탈했고 지자체 재단 소속 일자리는 면접에서 탈락했다. 대학원 학위와 관련 경력을 사용하는 직장은 여러 곳에 지원했으나 서류발표가 난 곳이 한 곳도 없다. 서류발표 다 기다리려면 9월 초까지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문제는 대학원 학위 관련된 직장은 합격한다고 해도 걱정이라는 것이다. 기쁘게 출근하기는커녕 그냥 아침마다 물에 젖은 솜뭉치 같은 무거운 몸과 혼을 부여잡고 죽상으로 출근할 텐데, 그게 벌써 예상이 되는데 그 길로 가는 게 맞나? 예상이 아니라 걱정일 뿐일까. 내 죽상을 매일 봐야 할 동료들은 무슨 죄일까.


면접에서 광탈한 어제, 죽상이 되어 퍼즐 한 판을 맞추고 그림을 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길은 여기가 맞다. 최근 7년 간 해왔던 활동과 경력이 훨씬 좋다. 열심히 했다.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앤의 저 꿈꾸는듯한 눈빛이 부럽다.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눈동자가 조금 멍해 보이는데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이 분야의 단점은 월급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분야에서 직장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같은 영역에서 일하더라도 나는 영리 활동을 하겠다는 굳은 결심.


갑자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게 된 현실 때문에 모든 걸 뒤로하고 급하게 취직준비를 해봤던 건데, 하면 할수록 괴롭고 싫고 오히려 앞날이 더 걱정되는 요상한 상황이 되더라. 계속 패닉에 빠져서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조언을 구하고 힘들고 혼란스럽다고 징징거리고 눈 뜨고 못 봐줄 지경이랄까. 이런 나를 받아주는 친구들 정말 대단하고 멋지고 고맙고 존경해.


끙끙 앓으며 전전긍긍하는 나를 옆에서 보다 못한 애인이 말을 얹는다. 취직 안 해도 우리 둘이 먹고사는데 아무 이상 없으니까 급하게 취직 안 해도 된다고.


사실 나는 아직도 빚을 갖고 있다. 예전에 창업하느라 받은 생활비대출이 아직도 빚으로 쌓여있는데 그 돈 수백만 원을 다음 달에 상환해야 한다. 돈이 없는데 어쩌지. 은행에 연락해 봐야겠다. 또 열심히 일해서 갚을 테니 기한을 어떻게 좀 조정해 줄 수 있는지 물어봐야지. 상환 걱정을 하자면 따라오는 생각 중 하나가 '이러다가 나 신용불량자 되는 거 아니야?'인데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들께서 말을 얹어 주셨다. "보라님, 신용불량자가 그렇게 쉽게 잘 안 됩니다."


취직을 안 하면 뭘 할 거냐고? 원래 실업급여 나오면 받으면서 유튜브를 좀 체계적으로 해보려고 했다. 실업급여는 못 받게 됐지만 그래도 해볼 수 있지 않겠나? 어떤 유튜브냐면 이슈 퍼 나르는 유튜브를 하고 싶었다. 이런 걸 '사이버 렉카'라고 부른다고 들은 적 있어서 검색을 해봤다. 그랬더니 아니 글쎄 사이버렉카는 혐오를 부추겨서 돈을 버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라고 하더라. 혐오를 부추기지 않는 사이버렉카도 존재할 수 있는 건가? 혐오로 장사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을까? 내가 그 정도로 논리적이고 매력적인 원고를 쓸 수 있으려나.


하지만 이런 고민은 짧았다. 3초 정도? 정말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이다. 곧이어 드는 생각은 걱정이다. 혐오의 반대쪽에 서있다는 이유로 어쩌면 내가 혐오세력의 표적이 될 수도 있겠구나. 내가 누군지, 어디서 뭘 하던 사람인지 신상 털리는 건 기본이고 나랑 연결된 사람들과 기관까지 표적이 되어 상처와 손해를 입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비난과 협박을 받으면서 눈을 뜰 수 있을까? 협박에서 그치지 않고 누군가 정말 칼 들고 쫓아오면 어쩌지?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이 일을 할 수 있나?


유튜브에 혐오선동콘텐츠가 넘쳐나는 모습을 보며 나 같은 반혐오세력(사실 이런 건 실체가 없음)의 유튜브 콘텐츠는 왜 없는 걸까 생각했었는데 너무 당연한 일이었나. 목숨 걸고 이런 일을 할 필요까진 없잖아. 그 누구도.


인터넷기사, 예능, 시사프로그램, OTT를 포괄하는 페미니즘 리터러시도 좋고, 성별영향평가로 사용되는 정책 관련 예시를 설명해 주는 콘텐츠도 좋다고 생각한다. 성폭력예방이나 성교육도 좋고. 콘텐츠 만든다는 핑계로 관련 분야를 계속 공부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직장 내 성희롱예방교육 강사 자격증이 있으니 이걸 홍보하고 강의를 나갈 수도 있겠지. 이런 유튜브를 해서 돈을 버는 경제인이라면 성별권력이 뒤집힌, 혹은 성평등한 세상을 상상하며 드라마 대본을 쓰는 취미를 갖고 죄책감 없이 즐길 수 있을 테지.


아마 내가 옛날 전공을 살려 우연히 취직한다고 해도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여기로 오게 되지 않을까. 이 일을 하는 게 좋으니까. 이 일에 대해 고민하는 게 좋으니까. 이런 생각을 하니 지금 당장은 가난하더라도 조금 도전해 보면 어떨까 싶은 용기를 내보게 된다. 용기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하던데 지금이 바로 그때가 아닐까. 용기인지 패기인지 구분할 필요 없이 그냥 나한테 남은 선택지는 이제 이것밖에 없다는 간절함으로 뭐라도 해보겠다면 그건 당연히 이게 되어야지 싶다.


누군가 내게 책임감 없다고 비난할까 봐 두렵다. 애인에게 기생하는 김치녀라고 할까 봐 무섭다. 애인에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무섭다고 했더니 애인이 말해준다. 다른 사람들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고. 자기한테는 내가 더 중요하다고. 나 이런 말 다 처음 들어. 자기 월급도 나눠줄 수 있다고 하고, 하고 싶은 일 해보라고 하고. 이게 무슨 호사니. 내가 몸과 혼을 바쳐 일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우리가 되는 게 맞겠다. 너랑 나.


취업준비 한다고 보름 정도 썼나? 내 인생을 이렇게 방치하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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