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13. MON.
예정시간보다 20분이나 일찍 아이들이 들어온다. 소곤소곤 재잘재잘 조그맣게 소란스럽다. 12살. 예비 5학년은 어린이일까 청소년일까? 의젓하게 허리를 꼿꼿이 세운 작은 사람들이 상담소 문으로 쏙쏙 들어온다. 정수리 위에 똥머리를 한 사람 한 명, 핑크색안경 쓴 사람 한 명, 긴 생머리를 허리까지 내린 사람 한 명, 총 세 명의 작은 사람들.
이번 또래성교육은 총 3회기로 진행되고, 오늘 이 아이들은 벌써 2회 차이다. 여자아이 5명인데 오늘은 2명이 결석했다. 목소리가 작고 말 수도 적고 눈 맞춤도 잘 되지 않는 아이들과 2회 차를 맞이하는 오늘 아침은 마음이 좀 복잡하다. 작은 사람들이 오늘은 내게 마음을 열어 줄까?
아이들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방탄소년단 노래의 피아노 버전을 잔잔하게 틀어준다. 온도를 체크하고, 향초를 끄고 인사를 나눠본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너희들의 관심사는 뭐니? 내가 너희들이 궁금증을 시원하게 긁어주고 싶어.
이번 주 초에는 12살 남자사람 5명이 왔었다. 그 사람들의 관심사는 몸이었다. 내 몸에 생기는 변화는 뭔지, 이유는 뭔지, 왜 엄마와 아빠의 몸은 다른지,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지 차분히 질문하고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마치 무슨 중요한 원탁회의에 참석한 것 마냥 진중하여 나까지도 웃음기를 빼고 진지하게 대화에 임해야 했다.
감정카드를 둘러놓고 어제오늘 느낀 감정을 하나씩 뽑아본다. 카드를 들고 근황토크를 나누는 척, 감정에 대해 얘기를 나눠본다. 작은 사람들과 근황토크를 할 때마다 얼마나 진지하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엄마의 잔소리에 대처하는 방법, 동생과의 관계 맺기 방법, 학교에서 재밌게 노는 방법... 치열한 삶의 고민이 곳곳에 묻어난다.
몸 그림을 보며 이름을 붙여본다. 우리 몸을 부르는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이름들은 왜 생겼을까 같이 생각해 본다.
생식기를 아직 붙이지 않은 이 몸은 과연 여자일까, 남자일까? 아직도 많은 부모들이 성교육에서 성소수자는 다루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하시기에 이렇게 질문할 수밖에 없는 점이 아쉽다.
사춘기란 무엇인가, 사춘기란 왜 오는 것인가, 우리 중 사춘기인 것 같은 사람은 누구인가, 사춘기와 갱년기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사춘기를 겪고 있는 주변사람 이야기까지 질문도 많고 말도 많다. 앞으로 각자에게 언제 사춘기가 닥쳐오더라도 잘 헤쳐나가 보겠다는 각오를 다져본다.
사춘기에 일어나는 여성의 몸 변화에 대해 얘길 나눠본다. 가슴이 커질 것이고, 매달 월경이라는 이름으로 3-5일씩 피를 흘리게 될 것이고 등등 여기까지 얘기했을 땐 조용하고 진지하게 듣던 아이들에게 더 얘기해본다. 털이 굵어지고, 음부와 겨드랑이에 털이 날 거고... 아이들이 소리를 지른다. 으악 싫어요. 어떤 아이가 선생님께 들었다며, 수염이 까매지더라도 절대 밀면 안 된다고 말해준다. 한 번 밀기 시작한 털은 평생 밀어가며 살아야 된다는 여성들의 천기를 그 선생님께서 작은 사람들에게 누설하신듯하다.
이어서 몸에 생식기를 붙여본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생길 내 몸의 변화 그림을 몸 그림에 붙인다. 여성과 남성의 음부가 섞여 있는 상황에서 여성의 음부를 골라 붙이고, 음모가 자란 음부를 붙이고, 삼각팬티나 사각트렁크 중 골라서 속옷을 입힌다.
가슴을 붙여본다. 여성이라고 해서 사춘기를 지나면 모두 가슴이 커지는 건 아니라고 알려준다. 가슴 사이즈가 커지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으며, 중요한 건 유선이 발달된다는 점이다. 가슴 부분의 촉각이 예민해지고 아플 수 있다는 점. 그래서 브래지어라는 속옷을 추가로 입게 되는 슬픔.... 까지는 말하지 않지만 브래지어를 입게 된다는 걸 알려준다.
겨드랑이에 털을 붙여 보자고 말했으나 아이들은 격하게 거부한다. 겨드랑이 털이 징그럽고 싫단다. 아빠 몸에선 봤지만 여성들에겐 없다고, 내 겨에 털이 날 지언정 나자마자 다 밀어버릴 테니 여기 붙일 필요가 없단다.
겨드랑이 털 제모가 번거롭다는 사실을 눈치챈 걸까? 한 아이가 묻는다. 선생님, 민소매를 안 입을 거면 안 밀어도 되나요? 경험상 반팔티 입어도 보이더라 까지 답변을 해준다. 나중에 애인 생기고, 성관계하게 되면 알몸을 보여주게 된다는 말은 지금 해줄 필요가 없지, 암암.
어떤 털을 제모하는 것은 각 나라의 문화적 현상이라는 설명을 덧붙여 본다. 우리나라는 대게 밀고 있지만 남미는 밀지 않더라. 그러거나 말거나 시큰둥한 작은 사람들이 짐짓 신기한 척 반응해 주는 것은 내 느낌일 뿐인가.
학교에서 초등학생 25명을 한꺼번에 보며 진행하는 수업과는 완전 다른 경험이었다. 더 많은 어린이를 만나 소규모로 교육을 해주고 싶지만 상담소에 일이 많아 그럴 수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여러분, 다음 주에 또 만나요. 다음 주는 연애 얘기 해볼게요라고 했더니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래서 다음 주는 월경수다로 마무리해보려 한다. 두근두근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