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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Feb 16. 2023

12살 작은 사람들에게 띄우는 성교육 메시지

2023. 2. 13. MON.

예정시간보다 20분이나 일찍 아이들이 들어온다. 소곤소곤 재잘재잘 조그맣게 소란스럽다. 12살. 예비 5학년은 어린이일까 청소년일까? 의젓하게 허리를 꼿꼿이 세운 작은 사람들이 상담소 문으로 쏙쏙 들어온다. 정수리 위에 똥머리를 한 사람 한 명, 핑크색안경 쓴 사람 한 명, 긴 생머리를 허리까지 내린 사람 한 명, 총 세 명의 작은 사람들.


이번 또래성교육은 총 3회기로 진행되고, 오늘 이 아이들은 벌써 2회 차이다. 여자아이 5명인데 오늘은 2명이 결석했다. 목소리가 작고 말 수도 적고 눈 맞춤도 잘 되지 않는 아이들과 2회 차를 맞이하는 오늘 아침은 마음이 좀 복잡하다. 작은 사람들이 오늘은 내게 마음을 열어 줄까?


아이들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방탄소년단 노래의 피아노 버전을 잔잔하게 틀어준다. 온도를 체크하고, 향초를 끄고 인사를 나눠본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너희들의 관심사는 뭐니? 내가 너희들이 궁금증을 시원하게 긁어주고 싶어.


이번 주 초에는 12살 남자사람 5명이 왔었다. 그 사람들의 관심사는 몸이었다. 내 몸에 생기는 변화는 뭔지, 이유는 뭔지, 왜 엄마와 아빠의 몸은 다른지,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지 차분히 질문하고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마치 무슨 중요한 원탁회의에 참석한 것 마냥 진중하여 나까지도 웃음기를 빼고 진지하게 대화에 임해야 했다.


감정카드를 둘러놓고 어제오늘 느낀 감정을 하나씩 뽑아본다. 카드를 들고 근황토크를 나누는 척, 감정에 대해 얘기를 나눠본다. 작은 사람들과 근황토크를 할 때마다 얼마나 진지하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엄마의 잔소리에 대처하는 방법, 동생과의 관계 맺기 방법, 학교에서 재밌게 노는 방법... 치열한 삶의 고민이 곳곳에 묻어난다.


몸 그림을 보며 이름을 붙여본다. 우리 몸을 부르는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이름들은 왜 생겼을까 같이 생각해 본다.


생식기를 아직 붙이지 않은 이 몸은 과연 여자일까, 남자일까? 아직도 많은 부모들이 성교육에서 성소수자는 다루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하시기에 이렇게 질문할 수밖에 없는 점이 아쉽다.


사춘기란 무엇인가, 사춘기란 왜 오는 것인가, 우리 중 사춘기인 것 같은 사람은 누구인가, 사춘기와 갱년기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사춘기를 겪고 있는 주변사람 이야기까지 질문도 많고 말도 많다. 앞으로 각자에게 언제 사춘기가 닥쳐오더라도 잘 헤쳐나가 보겠다는 각오를 다져본다.


사춘기에 일어나는 여성의 몸 변화에 대해 얘길 나눠본다. 가슴이 커질 것이고, 매달 월경이라는 이름으로 3-5일씩 피를 흘리게 될 것이고 등등 여기까지 얘기했을 땐 조용하고 진지하게 듣던 아이들에게 더 얘기해본다. 털이 굵어지고, 음부와 겨드랑이에 털이 날 거고... 아이들이 소리를 지른다. 으악 싫어요. 어떤 아이가 선생님께 들었다며, 수염이 까매지더라도 절대 밀면 안 된다고 말해준다. 한 번 밀기 시작한 털은 평생 밀어가며 살아야 된다는 여성들의 천기를 그 선생님께서 작은 사람들에게 누설하신듯하다.


이어서 몸에 생식기를 붙여본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생길 내 몸의 변화 그림을 몸 그림에 붙인다. 여성과 남성의 음부가 섞여 있는 상황에서 여성의 음부를 골라 붙이고, 음모가 자란 음부를 붙이고, 삼각팬티나 사각트렁크 중 골라서 속옷을 입힌다.


가슴을 붙여본다. 여성이라고 해서 사춘기를 지나면 모두 가슴이 커지는 건 아니라고 알려준다. 가슴 사이즈가 커지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으며, 중요한 건 유선이 발달된다는 점이다. 가슴 부분의 촉각이 예민해지고 아플 수 있다는 점. 그래서 브래지어라는 속옷을 추가로 입게 되는 슬픔.... 까지는 말하지 않지만 브래지어를 입게 된다는 걸 알려준다.


겨드랑이에 털을 붙여 보자고 말했으나 아이들은 격하게 거부한다. 겨드랑이 털이 징그럽고 싫단다. 아빠 몸에선 봤지만 여성들에겐 없다고, 내 겨에 털이 날 지언정 나자마자 다 밀어버릴 테니 여기 붙일 필요가 없단다.


겨드랑이 털 제모가 번거롭다는 사실을 눈치챈 걸까? 한 아이가 묻는다. 선생님, 민소매를 안 입을 거면 안 밀어도 되나요? 경험상 반팔티 입어도 보이더라 까지 답변을 해준다. 나중에 애인 생기고, 성관계하게 되면 알몸을 보여주게 된다는 말은 지금 해줄 필요가 없지, 암암.


어떤 털을 제모하는 것은 각 나라의 문화적 현상이라는 설명을 덧붙여 본다. 우리나라는 대게 밀고 있지만 남미는 밀지 않더라. 그러거나 말거나 시큰둥한 작은 사람들이 짐짓 신기한 척 반응해 주는 것은 내 느낌일 뿐인가.


학교에서 초등학생 25명을 한꺼번에 보며 진행하는 수업과는 완전 다른 경험이었다. 더 많은 어린이를 만나 소규모로 교육을 해주고 싶지만 상담소에 일이 많아 그럴 수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여러분, 다음 주에 또 만나요. 다음 주는 연애 얘기 해볼게요라고 했더니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래서 다음 주는 월경수다로 마무리해보려 한다. 두근두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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