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이랑 한 침대를 쓴 지 어언 4년 차.
우리 집 침대에서는 매일 밤마다 "니모를 찾아서"가 아니라 "보다를 찾아서"가 연출되고 있다. 얼마나 치열한지 매일 혼자 보기가 참 아깝다.
0.
애인은 머리만 닿으면 10초 안에 잠드는 복을 타고났다.
1.
애인의 잠버릇은 내가 있는 쪽으로 계속 계속 다가오는 것.
2.
보다 씨~ 부르면서 다가 온 애인은 본인의 양팔로 나를 껴안고 다리로 나를 감싼다. 나는 마치 대왕오징어에게 잡힌 해적선처럼 꼼짝 못 하는 상태가 된다.
3.
이대로 내가 잠이 들면 해피엔딩인데 보통은 그렇지가 않다. ADHD인 나는 좀처럼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걸? 좀 답답해지면 내 몸에 감긴 애인의 팔을 하나씩 떼어놓고 애인의 품을 벗어난다. 그다음엔 애인 위로 올라갔다가 애인의 반대쪽에 펼쳐진 광야를 향해 굴러서 내려온다.
4.
해방이다! 여긴 넓어! 하는 생각도 잠깐일 뿐. 내 위치를 알리는 센서라도 장착되어 있는 것인가? 금방 내 위치는 발각되고 만다. 애인은 뒤를 돌아서 광야에서 자유를 만끽하던 나한테 돌진한다. "보다 씨~~~~" 그리고 나는 또 잡혀 버리고 마는 것이다.
5.
애인의 등장으로 이미 사라진 광야. 내게 남은 공간은 겨우 옆으로 누울 정도의 침대 끄트머리 공간뿐이다. 애인에게 꽁꽁 잡힌 채로 눈을 질끈 감고 잠을 청해 보지만 이번에는 너무 뜨끈뜨끈한 애인 체온이 문제다. 겨울엔 따뜻한데 여름엔 너무 뜨겁다. 땀이 삐질삐질 여름 피부를 뚫고 나온다.
6.
나는 다시 한번 광야와 자유를 꿈꾸며 이번에는 방법을 바꿔보기로 한다. 자고 있는 애인에게 말을 붙인다.
"꿀단지씨~~ 옆으로 조금만 갈까여?"
"아이쿠! 미안해여!"
7.
곤히 자다가도 내 목소리에는 언제나 대답을 참 잘한다. 난 긴 긴 밤 중에서 이 부분이 제일 재밌다. 거의 4년째 매일 밤마다 반복되는 대화에도 불구하고 매번 아이쿠를 붙인다는 점이 귀엽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는 듯, 자기가 이렇게까지 보다 씨를 불편하게 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듯 매번 진짜 놀라면서 대답한다. 매일 한결같아서 당황스러운 애인의 "아이쿠!"를 들을 때면 그의 매력에 또 속수무책으로 반해버린다. 이런 사람이 내 옆에 있다니 흐흐흐. 흐뭇한 표정이 내 얼굴에 피어난다.
8.
"아이쿠! 미안해여!" 라는 대답과 함께 반대쪽 침대귀퉁이로 쭉- 거의 아스라이 멀어진 애인. 이제 나는 자유를 되찾았을까?
아니다. 문제는 바로 생겼다. 방금 내 말에 대답하느라 잠에서 깬 애인이 다시 잠들어야 한다는 게 문제다. 하필 애인의 잠버릇은 나한테 돌진하기.
아까보다 한결 더 뜨끈뜨끈해진 애인이 다시 나한테로 와서 또, 나, 를, 껴안는다. 아니~ 방금 내 자리 빼앗아서 미안하다고 말했던 그 사람이 맞냐고요. 기억 안 나냐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9.
나는 또 애인 품에서 벗어나 애인 반대편으로 피신한다.
10.
이런 걸 반복하다 운 좋게 잠들면 1시. 보통 11시에는 침대에 들어가니까 2시간 정도가 흘렀다.
11.
여기서도 잠에 못 들어가면 한 시간 정도 더 추격전을 벌인다. 2시 즈음이 되면 아이디어가 별똥별처럼 머릿속을 스치는데, 바로 뜨거운 애인의 몸에 손을 살포시 얹는 것이다. 내 눈에 보이는 애인 몸 아무 곳에나 손을 얹는다. 등이 보이면 등에, 배가 보이면 배에, 손이 잡히면 손에. 그러면 나는 금방 잠든다.
침대에 처음 누웠을 때 애인 몸에 손을 얹으면 더 빨리 잘 수 있지 않냐고요? 안타깝게도 그때는 이 방법이 생각이 안 나요.
11.
혹시 몸에 손 얹고 나서도 못 자거나, 자다가 깬 경우에는 거실 소파로 탈출한다. 거실소파라는 선택지는 새집에 이사 와서 처음 생겼다. 원룸에선 짤 없었다. 그냥 침대에서 버티거나 아예 불 켜고 의자에 앉아서 딴짓을 해야 했다.
12.
내가 거실로 떠나버리면 애인은 금방 바스락바스락 맨 발바닥을 스치며 거실로 따라 나온다. "보다 씨~~ 여기서 자고 있어여?" 난 소파에 누워 있고, 거실 바닥엔 아무것도 안 깔려 있는 맨바닥인데 애인은 괘념치 않는다. 소파 옆 맨바닥에 등을 시원하게 깔고 누워 눈을 감고 더듬더듬 내 손을 찾아서 잡는다. "나도 여기서 잘래애~"
13.
그럼 나는 "아니야아~ 여기 딱딱해서 안 돼요~ 내가 미안해애~ 들어가서 자자~" 말하면서 애인 손을 붙잡고 사이좋게 침대로 걸어간다. 이렇게 다시 침대로 돌아가면 나는 대게 깨지 않고 쭉 잔다. 그렇게 밤의 추격전은 진짜_진짜_최종_최종_버전으로 끝난다.
거실로 나온 나를 쫓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새 집으로 이사 와서 알게 됐다. 자다가도 나를 찾아오는 애인이라니. 너무 든든하잖아?
요즘은 침대를 사이즈로 더 큰 걸로 바꿀까 고민하고 있다. 광야가 넓어지면 추격전 싸이클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연애한 지 1400일이 넘었는데 매일 봐도 너무 귀엽다. 불면으로 잠 못 드는 사람이랑 엄청나게 잘 자는 사람의 한 침대생활. 읽으시기 어땠는지 궁금하다.
나는 여전히 매일 애인이 부럽다. 머리만 닿으면 10초 안에 맛들어지게 새근새근 잠드는 것도, 한 번 잠들면 쭉 자는 것도, 그러다가 나를 찾아 헤매는 것도 모두 예쁘다.
아주 가끔 내가 먼저 잠드는 날도 있다. 다음 날 잠에서 깨면 애인에게 열심히 자랑한다. 그러면 애인은 기특하다고 칭찬해 주는데 그게 또 그렇게 뿌듯하다. 겨우 잘 잔 것뿐인데도 칭찬을 받다니? 너무 따뜻해! 역시 사람은 잘 먹고 잘 자는 게 최고다.
우리 애인은 잠을 잘 자서 성격도 순한 건가? 성격이 순해서 잠을 잘 자는 건가? 답을 알 수 없을 질문이 계속 떠오른다. 나는 오늘도 자고 있는 애인 옆, 침대 한 귀퉁이에서 잠 못 자고 광야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