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꼭 결혼해야 해?
나는 아기를 낳고 싶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기를 낳고 싶어 했다.
그 소망이 어찌나 열렬했던지 대학생이 되면 졸업 전에 결혼해서 아기를 낳겠다고 결심했을 정도였다. 소망을 성취하기 위해 꽤나 열정적으로 연애했다. 서른한 살까지 공백이 없었으니 '노력했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와 합심하여 아기 낳고 백 년 평생 해로할 사람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2020년, 서른넷이 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아기를 낳겠다는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요즘의 나에겐 평생을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늘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바라만 봐도 마음이 풍성해지고 입꼬리가 귀에 걸린다. 당연히 생각한다. 이 사람과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글쎄. 나의 이런 생각을 읽고 있는 누군가는 좀 놀랄 수도 있겠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나 혼자 김칫국 마시는 것 같은 성급함 아닐까? 나 혼자만, 내 생각으로만 '아기를 낳는다'에 방점을 찍는다는 것, 어쩌면 조금 징그럽고 소름 끼칠 수도 있다.
그냥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백 년을 함께 사는 것.
그 사람과 꼭 닮은 사람을 낳아
갓 나은 아이를 한 명의 사람으로 키우는 것.
내 꿈에는 사회적으로 빠진 고리가 있다. 바로 결혼.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고, 그 사람과 아기를 낳고 싶고, 그 사람과 함께 키우고 싶은 것뿐이지 결혼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을 하려면 대한민국에서는 결혼을 해야 한다더라. 그래서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나는 일찍 결혼하는 게 꿈이야."
독일에서 인턴생활을 할 때 연구소 내에 아이가 셋 있는 커플이 있었다. 그 독일인 커플은 놀랍게도 결혼하지 않은 관계였다. 나중에 다른 분께 들었는데 독일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사이에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지장이 없다고 하더라.
우리나라는 결혼을 해야만 출산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그 고리에서 벗어난 혼외출산은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 물론 그동안 미혼모라는 단어가 비혼모로 바뀔 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고 이제 여성 혼자 낳은 아이의 출생신고도 할 수 있고 제도적 지원도 예전보다 많이 생겼다고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비혼부의 아이, 동거만으로 구성된 가족의 아이는 출생을 등록할 수 없다고 하더라.
사회적 인식은 어떨까? 비혼모의 아이는 사회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며 살아갈까? 없는 아버지를 '결핍'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건 결핍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결핍이 맞다며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해야 할까. 삶이란 투쟁에서 나까지 아이에게 짐 하나를 더 얹어주는 건 아닐까.
그런 이유로 나도 결혼을 고민해본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둘이서만 행복하려면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다면? 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내 아이, 내 아이의 아빠, 혹은 내가 차별받는 상황을 피하려면 유일한 방법은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방법과 가정은 내가 이성애자라서 가능한 부분이라는 것도 우리 사회의 현실이겠지.
왜 우리나라의 모든 가족제도는 결혼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걸까. 이번에 재난지원급 지급에서도 세대주에게 지급하는 방식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누구나 예상했던 결과였다. 시급성은 인정하고 이번에는 넘어간다고 해도 다음에 또 이럴 순 없다. 차별금지법 발의가 다시 한번 피어나고 있다. 가족은 혼인관계, 혈연관계로만 맺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이 명백한 사실을 제도적으로 인정해주면 좋겠다.
결혼하지 않아도,
피가 섞이지 않았어도
오직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가족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럴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