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 때 재난현장에 대해 제대로 지휘하지 못했던 박근혜가 출소했습니다. 심지어 어 책도 쓰고, 언론에도 계속 얼굴을 비추면서 총선을 앞두고 보수수구세력을 결집시키고 있지요.
오늘 아침 뉴스 보도에 따르면 KBS에서 제작 중이었던 세월호 10주기 기념 다큐는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사실상 불방 결정이 났다고 합니다. 총선은 4월 10일이고, 세월호 다큐는 총선 8일 뒤인 4월 18일에 방영 예정이었는데 말이지요. 세월호 참사 10년이 지났는데 또다시 이렇게 세월호를 지우려 하다니요.
지금 대한민국의 인권은 위기 상황입니다. 사람들은 지쳤어요. 희망을 노래하기 어렵습니다. 독재 정권 같은 혹독함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80년 대생인 제가 느끼기에 지금은 전래 없는 암흑의 시대입니다.
2023년 4월 16일이 되면 세월호 침몰 10주기가 됩니다. 믿을 수가 없는 시간이지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과연 그럴까요? 세월호 가족의 시간은 저마다 다르게 흘렀습니다. 누군가의 시간은 그날 멈춰버리기도 했고, 누군가의 시간은 그날부터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벌써 10년이냐고 되묻습니다. 믿을 수가 없다고요.
어떤 사람은 돈 받았으니까 조용히 하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자식 잃은 사람들 당신들 말고도 많으니까 유난 떨지 말라고 했습니다. 놀러 가다 죽은 게 뭐 별일이냐는 댓글도 기억이 나네요. 모든 말들이 상처였습니다.
세월호에 탑승했던 모든 희생자가 청소년인건 아니었습니다. 비청소년 희생자들도 있었지요. 모든 희생자가 사망자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세월호에 탑승했던 생존자들도 세월호 사건에서 입은 상처를 얼기설기 동여매고 생을 살아가고 있지요.
어떤 유가족들은 정부를 향해 진상 규명을 요구하기도 했고 어떤 유가족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안산을 떠났습니다.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그 어떤 선택도 손가락질할 수 없었어요.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모두 다를 테니까요.
안산에 남아있는 유가족들의 진상 규명 투쟁을 지켜보며 응원했습니다. 생업을 내려놓고 안산에서 진도 팽목항으로, 목포로 왕복하며 투쟁하는 유가족들의 까맣던 머리카락은 하얗게 금세 희었고 어금니는 숭덩숭덩 빠져나갔습니다. 누가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매일 모여서 각자 할 일을 찾아 해 내는 가족들을 보고 있자면 저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구석에 앉아서 노란 리본이라도 만들어야 그나마 한숨이라도 조그맣게 쉬어지지요.
정부에서 잠수부를 보내 찍어온 세월호의 내부 영상을 하나하나 다시 돌려보며 실종자를 수색하던 어머님들의 뒷모습을 기억합니다. 저렇게 열심히 잠수부들의 영상을 보고 계시지만 사실은 당신들께서는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세월호일 텐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 떨어지는 실례를 저지릅니다. 혹시나 이 영상에서 정말 실종자들의 모습이 발견되면 또 몇 달을, 몇 년을 잠도 못 주무시게 될 텐데 어쩌자고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결국 못 참고 몇 마디 조심스럽게 여쭤봅니다. "혹시 어머님들은 이런 거 안 하시면 안 되나요? 저희 자원봉사자들도 있잖아요." 어머님은 거꾸로 얘기하십니다. "우리가 봐야지. 우리가 찾을 거야. 우리가 할 일이야. 괜찮아.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아,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구나. 다시 깨닫습니다.
제가 멀리서 지켜본 가족들은 모래사장에 몰아치는 거친 파도 같았습니다. 가장 앞장선 파도가 아무런 무기도 없이 맨몸을 모래사장에 내던지면서 부서지면 그다음 유가족들이 다음 파도가 되어 또다시 맨몸으로 모래사장에 몸을 내던져 부서지고 또 다음 유가족들이 부서지고, 또다시 부서지고...
아무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아무리 부서져도 상관없이 우리는 앞으로 가고야 말겠다는 듯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그저 가기만 하면 된다는 듯이.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그냥 맨몸으로 부딪히는 가족들을 가까이에서 봤다면 '대단하다', '무섭다' 이런 한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뭐라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빗자루라도 들어서 청소라도 한 번 하거나, 신문 만드셨다고 하면 가까운 사람들에게 신문이라도 한 번 돌리거나. 유튜브 채널 만드셨다고 하면 구독 버튼을 누르게 되는 거고요.
잘 모르지만 유가족분들이라고 해서 내부적으로 힘든 일이 없진 않으셨겠지요.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하시는 동안 희생자들 외에 다른 형제자매도 계속 키워내셔야 했고, 생업도 있으셨을 테고요. 직장에서도 의견이 안 맞는 일이 많은데 이렇게 중요한 일에선 오죽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또 그만큼 잘 이해하는 사람이기도 할 거예요. 그래서 서로 몸 건강, 마음건강도 열심히 챙겨주시고, 앞사람이 힘들어 보이면 좀 쉬라는 의미로 대신 앞장을 서 주기도 하시고요.
그런 유가족들의 곁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키는 사람들이 안산 사람들 아닐까 싶어요. 유가족분들의 이웃과 시민사회 분들이지요. 세월호 침몰된 그날 그 시간부터 사람들이 다 함께 공원에 모여서 촛불을 켜고 아이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던 모습이 안산에서 세월호 촛불집회의 시작이었다고 들었어요. 뉴스가 나오고 희생자들의 부모님들이 팽목으로 달려가면서 희생자들의 친구들과 형제자매들, 이웃들이 모였었다고 해요. 지금은 4.16안산시민 연대라는 이름으로 묶여있고요. 매년 모여서 세월호 추모행사를 준비해요. 저도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회의가 정말 많이 열려요. 어떤 콘셉트로 추모를 진행할지, 누가 어떤 추모행사를 개최할 건지 각자 계획을 발표하지요.
올해에도 안산에서 다양한 추모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해요. 특히 합창의 경우에는 목소리로만 참여가 가능한 게 아니라 수어 영상, 악기 연주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도 참여 가능하다고 하니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사실 희생자분들은 아직 여러 봉안시설에 나눠져 있는 상황이거든요. 정부와 지자체는 화랑유원지에 세월호 추모공원을 만들고 지하에 봉안시설을 마련하려고 했는데 지금 어디까지 진행된 상황인지 정확히 제가 알지는 못해요. 몇 년 전에는 화랑유원지 인근 시민들이 봉안시설에 반대하는 님비가 있어서 이슈가 됐거든요. 갈등이라고까지 할 수 있었는지, 갈등이었다면 봉합이 됐는지 잘 모르겠어요.
미국에서 9.11테러가 있었던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거든요. 거기가 미국에서도 경제 중심지인데 불구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짓지 않고 비우고 추모공간으로 마련했잖아요. 우리나라도 그렇게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들이면 좋겠어요. 상품 백화점 붕괴사고 관련돼서 추모비가 세워진 모습을 봤는데 너무 슬펐거든요. 세월호는 그렇게 지워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안산에 4.16안산시민 연대라는 지역연대체가 있다면 전국적으로는 4.16연대라는 커다란 연대체가 있어요. 전국 단위의 집회도 지원할 수 있는 거대 조직입니다. 10주기를 맞이해서 전국시민행진, 기억 전시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 진행되고 있다고 해요.
연대, 연대체가 무엇인지 생소하신 분들도 계실 것 같아서 잠깐 설명을 드려 볼게요. 연대체란, 각자 본래의 단체가 있고 그 단체들이 4.16을 위해 TFT(Task Force Team)을 구성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축구 선수들이 각자 팀에서 경기를 뛰다가 월드컵을 앞두고 잠깐 한국에 모여서 국가대표로 뛰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겠어요.
4.16 재단도 있습니다!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십시일반 돈과 힘을 모아서 만들었지요. 세월호와 관련된 사업을 상시적으로 하고 있어요. 4.16재단도 10주기를 앞두고 다양한 공모사업을 한다고 해요. 특히 세월호 관련 거점에 방문하는 사업도 있으니 교통비가 부담되셨거나, 혼자서 방문하기 애매하셨다면 이번 기회에 함께 방문하시면 좋겠어요.
언론에서도 세월호 10주기 관련해서 다양한 기획보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네요. 일단 제가 발견한 건 오마이뉴스, 시사인입니다. 오마이뉴스에서는 "세월호 참사 10년의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고요. 시사인에서는 "그날까지 세월호 사람들 100명을 만납니다"라고 소개가 되어 있네요. 많은 관심을 부탁드려요!
10년 전 오늘로 시계를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는 아무도 세월호가 침몰할 줄 몰랐지요. 이렇게 많은 것이 변화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누군가는 세월호 이후로 바뀐 게 뭐가 있냐고 말하지만 제 경우에는 세월호 이후로 모든 것이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제 인생 전부가 바뀌었지요. 지정된 경로를 따라 열심히 공부하고 직장에서 상명하복 하명 일하던 저는 세월호 희생자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들어야 했던 "가만히 있어라"라는 안내방송에 분노했습니다. 나를 거대한 기계의 대체 가능한 부품 중 하나로 여기던 사회를 뒤로하고 정말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찾아서 변화하기 시작했지요.
저 같은 사람이 저뿐만은 아닐 거라고 확신합니다. 당시에 세월호 세대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뉴스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청소년과 청년들을 일컫는 말이었지요. 이들은 그 뉴스를 통해 뭘 보고 뭘 느꼈을까요? 그들이 느낀 감정과 생각은 앞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나한테만 힘든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있어야지요. 그게 재난피해자의 권리겠지요. 그래서일까요? 4.16재단은 2024년부터 부설기관으로 "재난피해자 권리센터"를 설립해서 운영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누군가 힘든 일을 겪고 있을 때 힘이 되어주라는 건 유치원 때부터 배우는 기본적인 도덕이고 상식입니다. 왜 일부 어른들은 이런 기본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세월호 사건 때 재난현장에 대해 제대로 지휘하지 못했던 박근혜가 출소했습니다. 심지어 어 책도 쓰고, 언론에도 계속 얼굴을 비추면서 총선을 앞두고 보수수구세력을 결집시키고 있지요.
오늘 아침 뉴스 보도에 따르면 KBS에서 제작 중이었던 세월호 10주기 기념 다큐는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사실상 불방 결정이 났다고 합니다. 총선은 4월 10일이고, 세월호 다큐는 총선 8일 뒤인 4월 18일에 방영 예정이었는데 말이지요. 세월호 참사 10년이 지났는데 또다시 이렇게 세월호를 지우려 하다니요.
지금 대한민국의 인권은 위기 상황입니다. 사람들은 지쳤어요. 희망을 노래하기 어렵습니다. 독재 정권 같은 혹독함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80년 대생인 제가 느끼기에 지금은 전래 없는 암흑의 시대입니다.
세월호 침몰 이후 열 번째 봄이라니 믿기지가 않습니다. 지금도 저의 페이스북에는 희생된 아이들의 생일마다 생일 알림과 축하글이 올라옵니다. 세 번째 봄, 네 번째 봄 때는 이렇게 계속 잔인하게 봄을 맞이하게 된다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엉엉 울기도 하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도보행진을 하기도 했었는데요. 이제는 모르겠습니다. 지난했던 재판도 뭐하나 시원한 결말이 없었어요. 시작은 있었는데 끝이 없는 느낌입니다. 결말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요?
아무래도 세월호 4160인 합창단에 참여 신청을 해야겠어요. 다 같이 노래를 부르면 조금은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을까 조금 기대를 품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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