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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Mar 21. 2024

매우 산만한 사람들을 위한 집중력 연습

ADHD도 광고콘텐츠 마감 할 수 있다!

사실 2024년 초에 이 책을 받았다. 출판사 부키의 홍보팀이라고 하시면서 [매우 산만한 사람들을 위한 집중력 연습]의 리뷰를 요청해 주셨다. 이런 요청은 처음이라 마음이 너무 떨렸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과 별개로 나는 ADHD. 마감기한이 있어도 늦기 일쑤인 내게 마감기한이 없는 리뷰요청은 정말 잘 포장된 선물박스 같은 것이었다. 너무 예쁜데 속에 뭐가 들었는지 몰라서 열어보기가 조금 무섭다. 열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지? 형광주황색의 책표지라 눈에 잘 보이는 이 책을 거실 정중앙에 두고 매일 하루에 열 번도 넘게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언제 읽지? 언제 쓸까? 어디서 읽을까?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3월도 이제는 열흘 밖에 남지 않았다. 겨울에 받은 책을 봄까지 가져가면서 나를 괴롭히는 건 정말 아니지 않나?


그래! 이 상황에서 나를 구해줄 사람은 나뿐이야! 이 상황을 시작한 사람은 나다. 자신 없었으면 애초에 제안을 거절했으면 됐을 거 아니야? 제안을 수락한 건 나잖아. 그럼 내가 책임을 져야지!


그리고 출판사 관계자님은 무슨 죄야? 출판사 내부 상황은 잘 모르지만 내 글을 좋게 보셨으니 내게 리뷰를 맡겨주신 거 아니겠어? 그럼 써야지. 지금까지 글이 안 나올 거라고 생각이나 하셨을까? 이렇게 살다가 어느덧 시간이 흘러 2025년이 되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아니야, 출판사 관계자님께서는 어쩌면 이미 생각하고 계셨을지도 몰라. 내가 ADHD인 거 알고 계셨잖아. 어? 알고 계셨나?


출판사 관계자님과 주고받은 메일을 다시 살펴보니 알고 계시다는 흔적은 없다. 아차차. 또 내 마음대로 넘겨짚었다. 이것도 ADHD 특성이라던데. 정말 주의가 필요하다.


아무튼 혹시나 내가 너무 글을 늦게 쓰면 ADHD 인구 전체에 대해 'ADHD는 역시 시간약속 못 지켜!' 라던지, 'ADHD랑은 같이 일하면 안 돼'라는 선입견을 강화하는데 일조하게 될 수도 있잖아? 그럴 순 없지! 그래서는 안 되지!


나도 공저로 참여한 책이 두 권 있는 상황에서 내 책의 리뷰를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건 너무 중요하고 소중한 일이라는 건 너무 공감되는 일이거든. 그 소중한 일을 맡겨주셨으니 최선을 다해야지. 물론 아무도 내 리뷰를 애타게 기다리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건 약속이다. 또다시 약속을 저버릴 수는 없지. 암암. 그리고 정말로 누군가 내 내 리뷰를 읽고 책을 구매할 수도 있잖아?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드디어 마감기한을 정했다. 3월 31일!

이 글은 [매우 산만한 사람들을 위한 집중력 연습]의 출판사 [부키]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라는 문구를 나도 띄우는 거지. 하하하하하.


예상되는 어려움이 있다면 이 책의 첫인상이 나한테는 부정적인 이미지였다는 점이다. 띠지에 적혀있는 문구 때문이다.

 

솔직히, 이 책이 약보다 더 유용했다.

나는 약을 복용하면서 천지가 개벽했기 때문에 약보다 더 나은 효과가 있다는 말에 선뜻 믿음을 줄 수가 없다. 그러면 내 세상은 또다시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변화를 경험해야 할 텐데 그건 너무나도 벅찰 것 같거든. 아직도 첫 번째 천지개벽 이후로 적응을 마치지 못했는걸. 약보다 더 유용한 건 아직 두려워.


반면에 이 책이 엄청나게 궁금하기도 하다. 요즘은 약을 더 늘리기보다 ADHD 인지치료 관련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때가 왔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비-ADHD 사람들처럼 살아가려면 여러 스킬을 익힐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최근에는 내가 기대했던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과정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는 슬픔을 겪었는데, 이 과정에서 ADHD 증상이 극심해지는 걸 경험했다. 일상이 모두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진행되던 모든 일이 올-스탑 되었다. 마음도 너무 힘들었다.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올라왔다. 그 힘든 시간에서 회복하기 시작한 지 사흘이나 됐나. 그래서 오늘도 카페 귀퉁이에 앉아서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다시는 힘들다는 이유로 일상이 모두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아.


최근에는 ADHD 자조모임 카톡방을 찾아서 들어갔는데 좋다. 애인도, 친구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나의 부분을 얘기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그건 당연하고, ADHD와 잘 살아가보려는 마음만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좀 든든하달까 그렇게 서로의 믿는 구석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대부분 ADHD 카톡방이 카톡만 겁나게 왔다 갔다 하는데 나는 그런 건 원하지 않았다. 실제로 만날 수 있으면 가장 좋겠고, 그게 어렵다면 줌으로라도 만나서 대화를 하고 싶었다. 가장 중요한 건 대화라고 생각한다. 입으로 대화하는 사람은 입으로, 손으로 대화하는 사람은 손으로 꺼내야 한다. 그렇게 3년, 5년, 10년, 수십 년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다. (혹시 관심 있으시면 제 프로필 통해서 메일 주세요.)


이 글을 올리면서도 두근두근하다. 나는 과연 3월 31일까지 이 책의 리뷰를 마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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