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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Mar 11. 2024

일주일 내내 한 곡만 듣는 ADHD

대성당들의 시대가 무너지네

원래 ADHD는 하나에 꽂히면 이런가? 난 가끔 한곡에 빠지면 한 달 넘게 그 곡만 듣는다.


지난주에 뮤지컬 '사서'를 보고 와서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여러 뮤지컬 노래를 들었다. 뮤지컬 노래는'넘버'라고 부르던가? 그렇게 헤매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대성당들의 시대'라는 넘버에 정착했다.


마이클 리 버전, 이지훈 버전도 있지만 나는 노윤버전에 빠져버렸다.

이렇게 예쁘게 뮤지컬 홍보를 위해 별도로 촬영한 영상도 있지만 아침에 라디오에 나와서 때려버리는 라이브에 꽂혀버렸다. 박하선 님이 진행하시는 라디오인데 앉아서 그냥 불러버린다.

유튜브 댓글이 흥미진진하다.


"목소리 정말 고급지네"

"캐릭터랑 목소리 넘나 찰떡이네"

"대성당들의 시대는 이제 노윤씨꺼"

"성문 앞을 할 때 긁는 거 너무 좋아요"

"노래 노 씨! 노트르담 노 씨! 노윤 씨! "


나는 왜 이 영상에 꽂혀 버렸을까? 노윤 배우님은 알지도 못했고 노트르담 드 파리는 본 적도 없는 뮤지컬인데.


노윤 배우님의 목소리는 저음부터 고음까지 아주 다양한 음역대를 가지고 있는데 그 목소리가 뭐랄까 완전 정돈되어 있고 무게감도 너무 과하게 무겁거나 가볍지 않게 딱 적절해서 딱 좋은 것 같아. 저음이 아주 안정적인 동굴이고 고음은 폭발적이다. 너무 평범한 표현이라 식상하지만 실제로 그러해.


'대성당들의 시대'라는 노래는 비슷한 멜로디가 반복되면서 섬세하게 고조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노윤배우님이 굉장히 섬세하게 잘 고조시키시더라. 그 섬세한 차이에 치였다. 너무 과하게 점프하지 않고 정확히 0.1, 0.3씩 적절하게 고조되는 느낌이 좋아.


뮤지컬홍보영상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지만 라이브에서는 한쪽 입꼬리가 유난히 올라간 모습이 보이는데 내 눈에는 그게 그렇게 예뻐 보이네...?  이건 이미 콩깍지 끼고 편파적으로 보게 되어서 그런 듯하다.


노래 부르면서 눈을 감고 있다가 눈을 뜨며 앞을 보는데 뭔가 자신감 있어 보이기도 하고, 앞사람의 반응을 궁금해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해서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하다. 두 마음 모두 들긴 했겠지? 그 모습조차 뭔가 매력 있어... 영상편집이 저렇게 되어있다 보니 박하선 님의 반응을 궁금해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어떤 각도였는지 궁금하다. 반응을 궁금해한다기보다는 "이래도 안 반해?" 정도의 자신감에서 나오는 확인절차에 가까운 것 같긴 해.


이 라이브를 보니 노윤 배우의 뮤지컬 공연을 실제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단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노트르담 드 파리 넘버를 순서대로 다 들어봤다. 들어보면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어떤 스토리인지, 어떤 무대인지 상상을 해봤다.


노래가 좀 올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들어볼 수 없는 스타일이 노래들이랄까? 역사가 있는 뮤지컬이라 그런 건가?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원래 그런 건가? 보헤미안, 집시가 나오는 뮤지컬이라 그런 건가?


완전히 똑같은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노트르담 드 파리는 우리 세대에는 '노트르담의 꼽추'로 유명했던 이야기이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노트르담의 꼽추를 찾아서 봤다. 보고 나니 이런 이야기였구나 줄거리도 알게 됐고 배경과 시대 탓인지 종교색이 강해서 애니메이션으로 리메이크되기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노래에 빠지게 된 이유에는 가사도 한몫한다.

대성당들의 시대가 찾아왔어
이제 세상은 새로운 천년을 맞지
하늘 끝에 닿고 싶은 인간은
유리와 돌 위에 그들의 역사를 쓰지

돌 위엔 돌들이 쌓이고
하루, 또 백 년이 흐르고
사랑으로 세운 탑들은
더 높아져만 가는데

시인들도 노래했지
수많은 사랑의 노래를
인류에게 더 나은 날을
약속하는 노래를 시대가 찾아왔어...

대성당들의 시대가 무너지네
성문 앞을 메운 이교도들의 무리
그들을 성안으로 들게 하라
세상의 끝은 이미 예정되어 있지
그건 이천 년이라고


우리를 지칭하는 단어는 많다. 시민, 사람, 인간, 인류... 이 노래에서는 인간과 인류를 택했는데 그게 묘하게도 지금의 나한테 위로가 된다.


인생이 좀 버겁다. 잘 살아낼 수 없을 것 같아서 무섭다. 이럴 때는 삶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서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도움이 된다. '나', '우리'는 진짜 너무 가깝고 '시민'은 너무 책임이 커서 무겁다. '사람'은 도리를 다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 부담스럽다.


'인간'이라면 그냥 좀 부족해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인간이라면 부족해도 서로 보듬고 수용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걸 인류애라고 불러도 될 것 같기도 하고. 우리는 우주를 떠도는 수많은 미물 중 한 종류일 뿐이다. 돈, 명예, 성공 같은 건 인간이 만들어 낸 어떤 것에 불과하다. '인간'이라는 단어는 이렇게 나와 내 삶 사이의 거리를 상기시켜 주고 삶의 무게를 덜어 준다.


인간은 모두 부족하지만 안주하지 않았다. 뭐라도 하고 싶었고 뭐라도 되고 싶어 했다. 유리와 돌 위에 그들의 역사를 남겼다는 부분을 듣고 있으면 그게 그냥 내 이야기 같아. 사부작사부작 이렇게 브런치에 내 역사를 남기고 있는 내 이야기.


돌 위에 돌들이 쌓이고, 하루 또 백 년이 흘렀다는 부분을 들을 때는 '이런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구나' 싶어서 안심이 된다. 나만 돌을 쌓는 게 아니구나. 돌 위에 또 다른 돌이 쌓이는구나. 그런 하루들이 모여 백 년이 되는구나. 멋진 일이다. 대단한 일이다. 이런 생각.


나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세상에 충분히 많이 관여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생각도 들거든. 조금 더 많이 주고 많이 받으며 살고 싶다는 욕심은 늘 갖고 있다. 막상 그런 상황을 상상하면 두렵긴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결국 성문 앞을 메운 이교도들의 무리에게 성문을 열어 그들을 성 안으로 들게 하라고 노래한다. 세상의 끝은 예정되어 있고 그게 어차피 곧 닥쳐 올 일이라고.


대성당들, 이교도들이 뭘 의미하는 건지는 뮤지컬을 봐야 의미를 알 수 있겠지만 뮤지컬을 보지 않고 지금까지처럼 내 맘대로 노래를 해석하기로는 결국 어떤 믿음의 종말, 새로운 것-다양성에 대한 개방인 것 같다.


이런 건 나는 항상 환영이다. 세상의 끝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지만 세상에 끝이 있을 리 없다. 그 끝엔 새로운 세상이 열릴 테니까.


새로운 세상? 늘 원한다. 그런 세상을 상상하느라 시간을 많이 쓴다. 그래서 이 노래가 좋은 것 같아. 새로운 세상을 계속 상상하게 만드니까.


이 뮤지컬은 3월 24일까지 한단다. 보고 싶다. 노윤 배우님 공연을 실제로 보고 싶다. 그거 아세요? 제가 일주일 동안 대성당들의 시대만 수백 번 넘게 들었답니다. 하하하하.


아마 이번에는 공연 못 보겠지만 막공까지 무탈히 잘 달리시기를, 저는 못 가지만 다들 노래 노 씨 노윤 씨 공연 많이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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