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까지 잊게 될까 봐 두려워.
ADHD는 대상 영속성이 낮다.
[대상 영속성]
존재하는 물체가 어떤 것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이 사라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능력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현혹되기 급급하다.
눈앞에 안 보이면 존재를 까먹는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쫒느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죄다 잊는 걸까? 눈앞에 없는 건 없다고 착각하니 있는 것만 쫒는 걸까? 둘 중 어떤 게 원인이고 어떤 게 현상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빨래 정리하다가 열게 된 서랍이 지저분하면 꺼내서 정리한다. 서랍에서 나온 양말이 해졌으면 양말을 새로 사겠노라 인터넷 쇼핑을 결심한다. 인터넷 쇼핑을 하겠다며 휴대폰을 열다가 브런치 어플을 발견한다. 인터넷 쇼핑이고 양말이고 서랍정리고 뭐고 다 까맣게 잊고 그대로 주저앉아 브런치에 들어와 이런 글을 씨부린다. 이게 내 일상의 흐름이다.
냉장고에 음식을 넣어둘 때에도 무조건 냉장고 문을 열자마자 바로 보이는 곳에 음식을 두어야 상하지 않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조금이라도 음식이 가려지면 그 음식의 존재는 곧 잊힌다. 곰팡이가 생긴 뒤에야 발견되지. 그러면 나는 그 음식을 다시 제자리에 둔다. 그렇게 함으로 인해서 나는 그 음식을 다시 잊을 수 있게 된다. 나중에 애인이 깜짝 놀라면서 발견하곤 버려주는, 애인한테 미안하고 고맙지만 나름대로 체계적인 냉장고 관리 시스템이 우리 집에서 가동되고 있다.
사람. 사람은 버리지 않는데 버려진다. 내 눈앞에 계속 존재하는 사람만 기억할 수 있다. 자주 만나고 연락하는 사람, 페이스북과 인스타에 계속 소식을 업데이트하는 사람들만 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
소식 업데이트가 없는 사람은 진짜 죄송하지만 기억하기 어렵다. 카카오톡이나 휴대폰 주소록에 저장되어 있는 사람 수백 명도 마찬가지이다. 어느새 '누구시길래 내 폰에 저장되어 있는 거지?' 수준까지 도달해 버린다. 언젠가는 나와 반갑게 얘기를 나누셨을 텐데 진짜 죄송하다. 어디서 만난 누구실까 모르겠고, 또 연락 올 수도 있기 때문에 연락처를 지울 수도, 먼저 인사를 건넬 수도 없어서 연락처 '관리'라는 걸 도통할 수가 없다.
세상은 매 순간 새로운 우주가 된다. 눈에 보이는 것만 인식할 수 있고 알겠다. ADHD마다 갖고 있는 뇌의 특성이 다를 것이다. 나는 개념화, 도형화 같은 게 머릿속에서 그나마 잘 돌아가는 편이라고 하니 이런저런 개념들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는 거였다고 한다. 축복이고 천만다행이지.
하지만 쌓이는 건 아무것도 없는 느낌이다. 인생이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는 느낌, 뭉쳐지지도 모아지지도 않아서 어떤 의미도 뜻도 이뤄낼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살아 보지 않은 사람에게 이런 느낌을 설명할 수 있을까? 설명을 하고 싶기도 하지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이해받고 싶기도 하지만 이해받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겠지.
기어코 뭐라도 기억해 보겠다며 포스트잇에 써서 책상 주변에 붙여 보지만 이 방법에도 한계가 있다. 당시엔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정보와 메시지 었다고 해도 단지 며칠만 지나면 이게 나한테 무슨 의미였는지, 왜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지 알 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의미와 맥락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도 포스트잇에 함께 적어 두었더라면 좀 달랐을까? 의미 없는 글자가 나열된 포스트잇들. 덕지덕지 붙어있는 포스트잇들이 오래되면 끝부분이 돌돌 말리기도 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마지막 잎새 같아 보일 때도 있다. 저 말라버린 마지막 잎새가 떨어질 때 내가 놓아버릴 희망은 무엇일까? 사실은 그 희망이라는 것도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벌써 잊어버렸다.
갑자기 하게 된 3주라는 장거리 연애가 복병이다. 4년 넘는 연애기간 동안 우리가 길게 떨어져 지낸 건 끽해봤자 5일 정도가 최대였다. 이번엔 3주? 아침저녁으로 보던 애인을 보지 못하고 3주나 살아야 하다니 너무 가혹하다.
그동안 5일이라는 시간은 어떻게 버텼었나 돌아보면서 깨달았다. 아침, 저녁으로 내 안부를 챙기고 사랑한다는 말을 해 주는 너의 루틴 덕분에 너를 잊고도 잊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거였어! 늘 고마운 존재.
맞다. 사실은 일상에서 잠깐씩 애인의 존재를 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내가 애인 덕분에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참 안정된 마음으로 잘 사고 있구나.
지금은 7시간이라는 시차까지 있다 보니 애인의 아침, 저녁루틴 자체가 깨져버렸다. 이동에만 24시간이 꼬박 걸렸으니 말 다했지.
이렇게 되고 나니 불현듯 불안감이 몰려온다. 나 이러다가 애인까지 잊게 되는 건 아닐까? 애인이라는 존재 자체를 잊게 될 수도 있는 걸까? 애인의 사랑을 잊게 될까? 애인과 함께했던 나를 잊게 될까? 어쩐지 갑자기 너무 외롭더라! 어쩌지? 벌써 조금 흐려진 건가? 일단 임시방편으로 둘이 찍은 사진이라도 몇 장 인쇄해서 집에 붙여야겠다고 결심해 본다.
외롭다. 병식을 갖고 있는 성인 ADHD 여성 당사자랑 얘기하고 싶다.
ADHD 진단을 받아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밝히면 내 소중한 사람들은 내 ADHD에 수식어를 붙여 준다.
귀여운 ADHD,
똑똑한 ADHD,
솔직하고 매력 있는 ADHD,
네가 ADHD라면 우리는 모두 ADHD,
ADHD는 스펙트럼일 뿐.
나를 위로해 주려는 따뜻한 마음이 참 감사하지만 그래도 한결같은 외로움이 옅어지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 짙은 외로움은 나 같은 사람을 만나야 옅어지지 않을까? 자신의 ADHD를 이해하려는 집요한 사람, ADHD와 관계 맺으려는 사람, 혹은 이미 관계 맺은 사람.
내게는 정기적으로 ADHD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조모임이 필요하다. 모두 어디에 계신가요.
어렸을 때부터 지각하던 여성.
물건을 잃어버리던 여성.
말할 때 손짓 발짓을 동원하는 여성.
벼락치기가 일상인 여성.
정리정돈이 어려운 여성.
우선순위가 정해지지 않는 여성.
ADHD라고 속 시원히 말했는데
아직도 속이 시원해지지 않았거나
아직 세상을 향해서
속 시원히 "나 ADHD야!"라고
밝히지 못한 여성.
대상 영속성. 신생아 시기 4~8개월에 획득해야 하는 기능인데 아직도 획득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실화인가? 이렇게 수 십 년을 ADHD인 줄도 모르고 그저 스스로를 인성 쓰레기로 오해하며 살아왔다는 게?
그래도 생각을 고쳐본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이제라도 약이 나왔고, 시장이 열렸고, 진단을 받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대로 의학이 계속 발전한다면, 어쩌면 약을 먹지 않고도 편안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몰라!
성인 ADHD 약물복용에 대해서 약물이 안경 같은 것이라고 비유하곤 하는데 요즘 들어 그 비유기 찰떡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경처럼 편하고 만능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이 목에 걸고 사용하시는 돋보기 정도? 그 정도이다. 주의력이 필요한 곳에 돋보기를 가져다 대고 봐야 한다. 다른 곳으로 주의력을 쏟으려면 돋보기를 옮기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좀 써야 한다.
하지만 약물을 복용하지 않으면 글자도, 다른 사람의 얼굴 표정도, 표지판도, 버스 번호도, 풍경도 볼 수 없다.
만약 미성년 자녀가 ADHD진단을 받았다면 꼭 약물치료를 권하고 싶다. 아이들에게 약물 치료하기가 거북해서 치료를 미루는 양육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했다.
아이들에겐 언어가 없으니까 아직은 방방 뛰거나 정신없어 보이는 정도의 타인이 관찰 가능한 수준의 증상만 표현될 것이다.
당사자가 되면 다르다. 타인은 절대로 알 수 없는 내밀한 증상이 훨씬 깊숙하게 박혀서 영향을 미친다. 이 내밀한 증상을 '나'라는 사람이 알아내기엔 병도 알아야 하고, 나도 알아야 하기에 너무 어렵다. 소모적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지 않을까 싶다. 치료 가능한 병은 치료받는 게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