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 씨를 처음 뵀던 건 지난 7월 검경수사권 조정 심포지엄 때였다. 시퍼런 날을 갈아온 경찰의 논리가 탄탄했고, 현장을 누벼온 민변 측의 근거는 생생했다. 지금의 촛불 여론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모든 지표가 검찰에 불리했다. 그래서 당시 검사 김웅 씨의 항변은 곱게 들리지 않았다. 책 썼다는 소식만 들었고, 책은 읽기 전이었다.
책을 읽었다. 의외로 수사권이나 검찰 개혁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말 그대로 생활 검사의 진득한 공부 이야기인데, 자연스레 안 들리던 검찰의 입장이 들린다.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지 모든 챕터에서 흔적이 국물처럼 배어나온다.
검찰 개혁이라니 조국과 촛불을 통과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모르겠긴 하다. 그러나 미약하지만 중요한 게 달라졌다. 진보 정권이 무조건 '맞고', 검찰은 '틀렸고', 탐사보도가 모두 '진실' 같던 때는 지나간 것 같다. 사실과 거짓은 건조한 문장으로 보기 좋게 갈라지지 않더라.
그렇다고 보수가 맞다고 외치는 건 아니다. 과거엔 내 의견 가지기가 무척이나 쉬웠고, 매번 더 정의롭고, 멋있게 보였던 쪽에 붙어있었다는 뜻이다. 사실은 잘 몰랐었다는 고백이다. 언시생 때 대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듯, 나도 그랬다는 뜻이다.
지금도 '내 의견' 가지기는 너무 어렵다. 기자가 되고부터는 지독한 자기 검열까지 덤으로 시달리게 되면서 알수록 또 모르겠다. 읽던 입장에서 쓰는 입장이 되니 정확히 아는 거만 써야 하는데, 1000가지 주장 중에서 틀린 주장은 또 없다. 1000가지 중 10가지를 얽어낼 때 현상과 원인을 구별하는 눈과 구조와 전망에 어두운 채 안다고 할까 봐 무섭다.
기자가 되고, 책 한권을 더 읽었다고 명쾌해진 건 아니다. 그나마 알게 된 게 훨씬 더 어렵다. 그냥 '조국 수호, 윤석열 OUT' 할 때보다 더 머리 아프다. 그래도 당장의 검찰권과 수사기관에 대한 비난, 인물 갈아치우기 보다는 길게 볼 수 있었으면 한다. 통쾌한 한 방의 동화 같은 결말이 가져올 고질적인 부작용이 두렵다. 훨씬 꼼꼼한 분노를 희망한다. 현실은 동화보다 훨씬 복잡하다.
정의 자체도 중요하지만, 정의에 이르는 과정도 중요하다. '조국 임명이냐, 사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범람하는 형사처벌 조항이 외면되는 게 큰일이고, 검찰을 쥐고 흔드는 권력자가 가려지고, 권력을 쥔 자의 욕망만을 대변했던 검찰 개혁으로 되풀이되는 게 걱정된다. 그래도 조국이 중요하다면 그건 감정 때문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다. 자랑스러운 모교 고려대를 보고 확신했다. 또한 조국만이 할 수 있는 개혁이라면 그것 역시 개혁이 아니다.
복잡하긴 해도 지금이 더 나은 것 같다. 김웅 씨의 생각을 더 듣고싶다. 진짜 조금만 더 물어보고 싶은데 그와 무산된 인터뷰가 아쉽다. 곱창전골과 소주만 있으면 우린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김웅 검사가 아니라 김웅 씨라고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 우리 편집장님이랑 친하시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