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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Studio Apr 12. 2016

자살의 전설

데이비드 밴

mii 집에 놀러 갔을 때 빌려온 책이다. 그녀는 '네가 나에게 다자키 쓰크루를 선물해 줬던 것과 같은 의미야. 좀 힘들 수 있는데 읽어볼래?' 하며 이 책을 수줍게 건넸다. 게으름을 이유로 꽤 오래 읽었다. 확실히 내가 좋아하는 문체다. 감정적이지 않고 상황을 묘사하되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정이 유발되게 하는 그것. 


'자살의 전설'을 이루는 여섯 개의 중단편 소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역시 <수콴 섬>이다. 로이와 아버지가 수콴 섬에서 오로지 단 둘이, 1년을 함께 보낸 이야기.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이 중편은 완전한 허구라고 한다. 또한  완전한 사실이기도 하다. 아버지에 대한 로이(데이비드 밴)의 원망,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과 죄의식, 결국 사랑에 대한 '사실'. 나도 언젠가 현실도피 차원에서 '알래스카 같은 데 가서 고래나 잡으며 살았으면 참 좋겠다.' 바랐던 적이 있다. 로이의 아버지는 비극적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시작을 위해 아들과 함께 수콴 섬에 간다. 그러나 낮에는 오로지 서툰 생존, 밤에는 자멸의 울음뿐이다. 어린 로이는 지켜본다. 거의 무너진 아버지를. 완전히 무너지고 싶어 하는 아버지를.


로이의 자살로 1부가 끝이 났다. 멍했다. 로이가 죽다니. 불편하리만치 정확하게 묘사된 로이의 죽음.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고깃덩어리처럼 여기저기 터지고 달라붙은 아들이라니. 실제로 작가가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했을 때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갈기갈기 찢기고 형체를 잃은 어린 데이비드 밴. 

2부는 정말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얼굴 반이 날아가고 썩은 내가 나며 침낭으로 겨우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아들 로이와 비로소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는 아버지의 이야기. 그들은 이제야 겨우 소통하는 듯 보인다. 침낭 속 로이는 천진하고 아버지는 환각(수콴 섬)에서 깨어나 진짜 아버지가 된다. 맨 뒷장에 작가의 말, 역자의 말, 추천서를 읽어보며 내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렸다. 내 나이 열일곱 이었다. 아빠만 없으면 우리 가족은 평안할 거라고, 아빠만 죽으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믿었던 철딱서니. 그런 나를 위해 아빠는 목숨을 버렸다. 아빠가 조금만 더 강한 사람이었더라면 어린 딸의 마음 더 깊이에는 미움과 정확히 비례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 주었을 텐데. 


10년간 이 책을 쓰는 동안, 아버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내게 살아 돌아오셨다. 자살에 따른 사별은 수치와 분노, 죄의식과 부정 따위가 복잡하게 얽힌 기나긴 여정이나, 책을 쓰는 행위는 치유 이상의 치유가 되어주었다. 허구의 세계에서 우리는 가장 추악한 삶조차 감내하고 아름다운 대상으로 치환할 수 있다. 동시에 어떤 점에서는 죽은 자를 되살리기도 한다. (2010년, '더 뉴요커'  인터뷰 중에서)


작가의 말처럼 나도 꽤 오랜 시간 분노, 수치, 죄의식과 부정 따위가 내 삶 도처에 깔려 있었다. 처음엔 아빠의 죽음 이후 '난 괜찮아. 아빠가 죽은 건 아주 잘된 일이야!'를 외치고 다녔다. 그러나 곧, 추락을 느끼며 꿈에서 깨어나고 아빠가 끊임없이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꿈을 꾸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늘 차가운 사람이었고 나는 두려워 떨거나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거나 어딘가 매달리는 사람이었다. 꿈에서 깨어나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나약함과 두려움때문에 아빠를 구하지 못한 것일까, 아님 여전히 내 안에 악마가 숨 쉬고 있는 것일까. 가족에 대해서는 이랬다. 여동생은 언제나 내가 구해야 하지만 결국 구하지 못한 존재로 표현되었고 엄마는 흐릿했다. 꿈속에서 난 늘 부정한 사람이었다. 


작가는 글을 씀으로 치유되었다고 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 치유되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난 이 꿈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결국에는 아빠와 같은 선택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자살에 유전은 없다. 가치관의 답습뿐이다. 아빠의 선택을 배워 나의 선택에 그리하는 것. 영적 아버지를 만나 다른 가치관을 만나게 해주시지 않았다면 난 육적 내 아버지의 선택을 따랐을 것이다. 내 가문은 그렇게 속절없이 무너졌을 것이다. 책 덕분에 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차분히 돌아보게 되었다. 나에게 언제 이런 힘이 생겼을까? 꿈속에서 아빠를 보면 울고 깨어나서 울고 했던 게 불과 5년 전인데. 나는 안다. 내 삶 곳곳 숨죽인 채 똬리를 틀고 있는 여전한 사연의 존재를. 그러나 그것들에 전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일어나 나 같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랬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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