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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Studio Apr 20. 2018

적의는 어디서 태어나고 어디로 가는가

영화, 몬태나 HOSTILES

(브런치 무비패스로 관람. 영화 내용 가득 들어있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

미국인 로잘리 퀘이드는 빼앗긴 것을 다시 빼앗기 위해 괴성을 지르며 쫓아오는 인디언에게서 도망친다. 남편의 머리 살가죽이 벗겨지고 두 딸은 자비 없이 박힌 총알에 쓰러지고, 품에 안은 어린 아기는 인생을 스치듯 마감했다. 바위 아래 죽은 듯 숨어있던 로잘리 퀘이드, 역사의 비극이 자신의 비극이 된 여인, 그녀는 언제 밖으로 나올 수 있었을까? 잔인한 인디언 무리가 떠나고, 해가 질 때까지 두려움에 떨다가 어둠이 찾아오자 겨우 빠져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생명을 잃어 차갑게 얼어붙은 아이를 안고, 내달려온 산길을 느릿느릿 굴러내려 가, 땅바닥에 비참하게 굳어있는 두 딸을 지나쳐, 머리 가죽이 벗겨진 남편 앞에 서게 되었을 때, 로잘리 퀘이드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죽은 가족이 잠든 가족이 되기까지 그녀의 영혼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그녀의 영혼 앞에 선 조셉 J. 블로커 대위. 그는 어떤 사람인가? 미국의 역사로 살아가는 사람. 피로도 높은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 그의 눌린 머리칼과 견고한 육체, "Kidder!" 외치는 강하고 또렷한 음성은 그가 살아온 지난 인생의 결과이다. 그가 원래 그런 사람이어서, 들끓는 적의로 미국을 지킨 것이 아니다. 조국을 지키려다 보니 증오가 필요했다. 온몸에 튄 뜨거운 피와, 벗겨진 살가죽과 쏘아 죽인 어린아이들과 여자들, 살육이 정의가 되기 위해서 증오가 필요했던 것이다. '쉿, 아이들이 자고 있다.'는 태초부터 차가운 인간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조셉 J. 블로커는 스스로에게 얼마나 상처 주고 덮는 인생을 살았을까? 죽여 땅 속에 묻은 그 시체들의 수만큼 일까. 그는 차가운 인간이 되기 위해 읊조린다. 무엇을? 죽임 당한 동료들의 이름을. 나라의 역사 아래 개죽음당한 개인의 역사를.


그의 적의는 명료했다. 분명하고 정확하게 옐로우 후크 추장으로 대변되는 인디언에게 향했다. 자신과 조국을 위협하는 존재. 동료들을 잔인하게 살육한 살인마. 블로커 대위가 인디언의 머리 가죽을 벗겨낼때, 옐로우 후크 선장은 미국인들의 머리 가죽을 벗겨내었다. 정의를 위해서였나? 생존을 위해서였다. 영화 속에서 인디언은 상반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짐승 같이 괴성을 질러대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죽이는 미개인. 그리고 옐로우 후크 추장, 블랙 호크와 같은 현명하고 지혜로운, 용맹하고 따뜻한 현인. 블로커 대위와 로잘리 퀘이드는 '알 수 있는' 존재로 표현되지만 그들은 '알 수 없는' 존재로 표현된다. 스콧 쿠퍼 감독이 미국인이기 때문도 있겠고, 아직 역사가 인디언의 진짜 목소리와 이야기를 알지 못하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조셉 J. 블로커는 이제는 암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는 대적, 옐로우 후크 추장과 그 일가족을 그들의 본향 '몬태나'까지 데려다주는 임무를 맡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을 '사사로운 감정'으로 죽이지 않고 운반하는 임무이다. 블로커의 인디언을 향한 적의는, 그들에게 가족을 빼앗긴 여인 로잘리를 만났을 때 더해졌어야 했다. 그 안에 적의가 정말 있었다면 그래야 했다. 그랬는가? 아니었다. 블로커는 로잘리 안에 있는 슬픔과 고통을 먼저 보았다. 감당할 수 없어 차갑게 굳혀 놓은 그 슬픔과 고통을. 짐승처럼 표호하고 날뛸 것이 두려워 차라리 잠재운 그 감정을. 왜 인가? 블로커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적의가 아니다. 슬픔과 고통이다. '내 가족은 내가 묻어요.' 로잘리는 딱딱하게 얼어붙은 땅을 애처롭게 파낸다. 그녀의 얼어붙은 슬픔을 파내 주고, 따뜻한 대지 안에 가족을 묻을 수 있게 도와준 건, 다름 아닌 블로커다. 살아있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그녀 옆에 나란히 머물러 있어 주는 사람 역시, 블로커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대지 안에 묻고, 묻고 또 묻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런 그가 로잘리를 위로한다. 그의 삶이 그녀의 삶을 위로해준다.


여정 중, 첫 장면에 등장한 인디언 무리가 다시 등장한다. 총성이 오가고 쓰러지고 쓰러트리는 일이 순식간에 벌어진다. 격전이 끝난 후, 로잘리 퀘이드는 총을 빼어 들고 쓰러진 원수 앞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결연하다. 탕! 첫 총성이 울린다. 이 장면. 그녀의 눈빛과 몸짓. 원수를 다시 만나면 내 반드시 총으로 쏴 죽이리, 밤마다 새겼을 장면이 실재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탕, 탕, 탕-. 그녀를 괴롭힌 복수심이 공중으로 흩어진다. 살아있는 원수에게 달려들어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것은 드라마틱하기는 하나 현실적이지는 않다. 밀양의 신애도 자신의 아들을 납치, 살해한 가해자 앞에서 몸을 움츠렸다. 존재의 연약함이 여기에 있다. 두려움에 짓눌린 존재의 연약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원수를 갚기 위해 시체 앞으로 걸어가 총구를 드는 로잘리 퀘이드는 강하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말이 있다. 멀리서 보면 너와 나는 적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너와 나는 근본적으로 같은 감정을 공유한 존재다. 몬태나로 향하는 여정을 함께하면서 분명했던 그들의 적의는 방향을 잃는다. 적의는 어디에서 태어나고 어디로 가는가. 내 안에서 태어나고 내 안에서 죽는 것이 맞는가. 누구를 향한 적의인가. 결국 블로커 대위의 숨통을 조인 것은 스스로를 향한 적의다. 죄의식이라 불리는 그것.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대니 아처는 자신의 영혼을 알아본 매디 보웬에게 고백한다. "하나님이 절 용서해 주실까요? 내가 한 짓을, 과연 용서해 주실까요?" 하나님이 이 땅을 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한 짓이 용서받지 못할 짓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인간은 가장 고통스럽다.



옐로우 후크 추장의 말이 맞다. 내 영혼이 너의 안에 있고, 너의 영혼이 내 안에 있다. 그들은 집요한 행진을 이어간다. 무참할 정도로 광활한 대지를 가로질러 위태롭고 집요하게 행진. 행진. 또 행진한다. 엄마의 자궁, 내가 태어난 곳, 사랑이 있는 그곳 몬태나를 향해. 블로커가 몬태나 땅 위에서 죽음을 맞이한 추장을 위해 총을 들고 같은 백인을 쏘아 죽인 것은, 그의 영혼 안에 옐로우 후크의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옐로우 후크의 영혼 안에 자신의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것이 아닌 조국의 적의로 인디언을 죽였던 블로커는, 치졸한 모습으로 죽음을 피해 엉금엉금 기어가는 백인을 향해 정확하게 걸어가 그의 머리가죽을 벗겨낸다. 1,000마일의 여정을 함께한 그들이 죽어가는 이 장면은 긴박하지도 웅장하지도 않다. 비참할 틈도 악랄할 틈도 없이 황량한 대지에 탕, 탕, 탕 소리만 울린다. 개인의 역사가 마른 총성과 함께 종료되는 순간이다.


살아남은 블로커, 로잘리, 어린 인디언 소년은 기차역에 있다. 가족을 모두 잃은 로잘리 퀘이드는 종료된 세대를 대변할 새로운 세대인 인디언 소년의 어깨를 잡고 서 있다. 블로커는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마음이 아팠다. 서로의 고통을 알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와의 이별이라니. 로잘리는 '우리와 함께 가요.'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조국의 역사가 아니라, 당신의 역사를 살아요.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와 함께 살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로잘리와 인디언 소년은 결국 기차에 오르고, 블로커는 작별한다. 여기서 영화가 끝났더라면 끔찍했을 것이다. 현실이 그러하니까. 현실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담아 떠나보낸 기차가 수도 없고, 뒤돌아 도망친 내가 수도 없으니까. 나처럼 너도 그렇구나. 그래서 끔찍했을 것이다. 그러나 블로커는, 그 안에 사랑하는 이의 영혼이 깃든 블로커는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떠나는 기차에 오르는 순간, 개인적이고 사적인 역사가 비로소 시작된다.


내가 올라야 하는 기차는 무엇인가? 용기를 내고, 함께 역사를 써가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 내 안에 있는 것이 증오고 적의가 맞는가. 슬픔과 고통은 아닌가. 내게 필요한 건 총칼이 아니라 따뜻한 사랑이 아닌가. 개인적이고 사적인 슬픔이 죽은 사람과 함께 묻히고 베어 벗겨진 살가죽처럼 던져지는 이야기 <몬태나>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남겼다.     



이상, 영화 <몬태나 HOSTI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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