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이크 크레이지 Like crazy
(영화 내용 포함)
사랑의 환상이 이는 곳,
마음인지 머리인지 말해 줘.
그건 어찌 태어나고 자랄까?
(모두) 대답해 봐, 대답해 봐.
그것은 눈에서 생겨나고
서로 바라보면서 커지다가
요람에서 죽는단다. 우리 모두
그 환상의 조종을 울리자.
나를 따라 종을 딩동 울려라.
(베니스의 상인, 윌리엄 셰익스피어)
제이콥과 애나의 사랑은 시선에서 시작한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애나에게 제이콥의 시선이 닿는다. 별 다를 거 없는 평범한 날이었는데, 자신을 보아준 제이콥때문에 애나는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 페이퍼 모서리에 전화번호를 적어 그의 차 유리문에 끼워두는 일 같은.
좁은 방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꿈에 대해 이야기하게 만든 것은 제이콥의 용기였을까, 애나의 용기였을까. 그들은 그렇게 사랑에 빠진다.
가구를 만드는 청년 제이콥은 글을 쓰는 소녀 애나를 위해 그녀에게 꼭 맞는 의자를 만들어준다.
"나의 의자야!"
기뻐하는 애나의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세상의 중심이 나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닐 수 있다는 것이 점점 실감으로 다가올 때. 나를 또렷이 바라보아준 너 때문에 내가 다시 빛나기 시작한다. 세상에 하나뿐인 의자처럼 나 역시 세상에 하나뿐인 사람이 된 것 같다. 의자 밑에 새겨진 'Like Crazy'가 그들의 청춘에, 젊은 사랑에 각인된다.
사랑에 겨운 장면이 지나가고 그들 앞에 놓인 것은 애나의 만료된 학생 비자다. 이별과 동의어인 그 단어 앞에서 그들은 무모한 선택을 한다. 사랑은 그런 건가 보다. 앞뒤를 헤아릴 수 없고 깊이 생각하는 신중함도 아무 소용 없어지는 건가 보다. 한 번 피한 이별에서 비롯된 수 없는 이별, 사랑의 무모함, 함께 할 수 없음 앞에 그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영국으로 돌아간 애나. 미국에 남은 제이콥. 약 5,570km만큼 멀어진 두 사람. 미친 듯이 사랑했던 순간이 실재에서 환각으로 멀어져 간 거리다. 꿈은 현실이 되어 하루하루를 제정신으로 살아갈 것을 요구한다. 과거 사랑의 흔적으로는 눈 앞의 현실을 살아갈 수 없다. 지금 내 삶에 참여하고 외로움을 나눌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그들은 헤어짐과 그리움, 다시 만남을 반복한다. 허락되지 않는 비자 앞에서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자 같아 보인다. 그런데 마침내 함께 할 수 있게 된 그 순간, 그들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어떤 표정을 하고 어떤 목소리를 내었는가. 서로 사랑하는 자의 그것이었는가.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서로의 육체를 끌어안고 그들은 무엇을 떠올렸는가.
가장 빛나던 순간. 내가 가장 빛나던 그 순간. 나를 가장 빛나게 만들어준 너의 시선, 너의 사랑.
지금 그들 앞에 남은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나 자신을 향한 사랑일까, 너를 향한 사랑일까. 결국에 결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던 그 사랑은 어디로 갔을까? 섬광 같은 사랑의 잔상으로 우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샤워기로부터 쏟아내리는 물아래 두 사람의 지난 젊은 사랑도 함께 씻겨 내려간다. 밝고 빛나고 뜨겁디 뜨거운 사랑이 지나가고, 더 이상 나를 빛나게 만들어 줄 수 없는 그 사람 앞에 서서 진짜 사랑을 시작한다. 그런 이야기. Like Crazy.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