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타이즈본 A Star Is Born
(영화 결말 포함)
"언니, 스타이즈본이 엘리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잭슨 이야기인 거 같아.
마지막에 형이 사방에서 잭슨 노래를 튼다고 그랬잖아."
얼마 전 누군가 이 영화를 추천해 주어 OST 몇 곡을 여러 날 듣고 갔다. <I'll Never love again> 곡 초입 부분에 레이디 가가의 떨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무슨 상황에서 불러지는 노래일까 궁금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음악영화'라는 것만 알고 보았다. 영화 다 보고 나면 '우와, 영화 진짜 좋더라.' 히히덕 거리면서 나갈 줄 알았는데 엔딩 스크롤이 올라가는 내내 말을 잃었다.
같이 본 동생과 영화에 대해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 지하철에 올랐다. 곧 동생에게 카톡이 왔다. 이건 잭의 이야기인 것 같다고. OST 전 곡을 다시 들으며 생각했다.
잭은 왜 일평생 술을 마셨을까? 왜 결국, 그런 선택을 했을까? 염세적인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인생이 괴롭고 귀찮고 비관적인 것이어서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우연히 들어간 드랙바에서 앨리의 <La Vie En Rose>를 들으며 눈물 흘리지 못했을 것이다. 12개의 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앨리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넘치는 재능을 가지고도 스타디움을 가득 채우는 청중을 가지고도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 'Jack!'을 외쳐대고 그와의 만남을 기념비 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가지고도, 잭은 술을 마셨을까? 내가 보기에 '이제는'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은 잭이 '여전히' 술을 마시는 이유는, 두려웠기 때문인 것 같다. 잭은 일평생 무엇을 두려워한 것 같다. 무엇을 두려워했을까?
그는 앨리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넘어 매니저에게 발탁이 되고 앨범을 내고 머리를 붉게 염색하고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SNL에 출연하는, 그러니까 '스타'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왜 인지 슬퍼한다. 불안해한다. 곧 떠날 사람을 보는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서 떠나가는 앨리를 지켜보는 잭. 누군가에 의해 매니지 되는 앨리, 어쩌면 잭은 지금의 앨리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그렇게 술을 마셨는지도 모른다. 잭은 귀가 영영 들리지 않을지언정 자신의 귀로 직접 음악을 듣고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다. 잭은, 세상에 의해 자기 자신을 잃게 될까 두려웠던 것 같다.
처음부터 유명한 락스타는 아니었다. 애리조나에서. 아무것도 없는 그 애리조나에서 늙은 아버지가 18살의 젊은 처녀에게서 낳은 아이, 잭슨 메인. 그는 아무것도 없는 애리조나에서 기타를 가장 잘 치는 아이 었다. 그리고 말한다.
"형, 음악은 12개의 음뿐이야. 오직 12개의 음으로,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거야."
잭에게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다. 아버지 무덤이 있는 땅이 풍력 발전소가 된 모습을 보고 나서 형에게 주먹질을 하며 외친다. "형의 꿈을 내가 빼앗아 갔다고? 형은 그저 할 이야기가 없었을 뿐이야!" 잭은 아버지가 아닌 형을 닮고 싶었는데도 이런 말로 비수를 꽂는다.
성인이 된 형이 떠나고 애리조나에 아버지와 단 둘이 살게 된 잭. 천장에 붙은 선풍기에 아버지의 벨트를 매단 13살의 잭은, 사랑받고 싶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보아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술에 취했고 바닥에 떨어진 선풍기는 6개월 동안이나 방치되었다.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 그 자리에 그대로인 선풍기를 보며 13살의 잭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세상에 오직 엄마, 아빠, 형뿐인데. 엄마는 죽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에 형은 고향을 떠났다. 형은 아버지를 증오하는데, 성인이 되어 성공한 잭은 가장 먼저 아버지의 무덤이 있는 땅을 사 형에게 선물한다. 도대체, 13살의 잭에게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후에, 음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을 때 잭은 비로소 사랑을 배우고 느꼈을 것이다. 잭은 그 첫사랑을 잊을 수 없다. 사랑받았던 그때의 잭을 잃을 수없다. 자신의 이야기를 12개의 음으로 하지 않는 잭은, 버림받을지도 모른다. 잭은 언제나 버림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술에 취하고 마약에 취한 잭으로. 나를 떠난, 내가 사랑한 그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언제나 '잭슨 메인, 내가 문제야'. 자신의 사람들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잭슨 메인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잭슨에게 사랑이 너무 많아, 마음이 아팠다.
앨리는 자신을 '앨리 메인'으로 소개하며 남편의 추모곡을 부른다. 생전 앨리가 없는 집에서 앨리를 생각하며 지은 앨리를 향한 사랑의 노래 <I'll Never love again>. '이거 당신이 지은 거야?'라는 그녀의 물음에 잭이 어떻게 답했더라. '당신이 다시 예전의 앨리로 돌아오면, 발견할지 모른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울었다.
앨리의 떨리는 숨. 사랑 넘쳤던 잭슨 메인을 떠올리면 떨리는 숨.
잭은 왜 앨리에 대한 사랑 노래 제목을 'I'll never love again'으로 지었을까? 결국 자신이 떠났으면서, 앨리가 떠날 것을 두려워하며 그 사랑을 노래하며, 왜 다신 사랑하지 않을 거라 노래했을까. 잭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였을까? 자신을 낳다가 죽은 18살의 엄마, 평생을 알코올 중독자로 살며 자신이 목을 매달 동안에도 술에 취해 있던 아버지, 닮고 싶었지만 결국 고향을 떠난 이복형. 잭에게 사랑은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떠난 그들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앨리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녀가 언제 자신을 떠날까 두려웠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자신을 사랑했지만 자기 자신이 그런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날까 봐 두려웠다. 내 이야기를 하고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것이 어린 잭이 원하는 전부였는데. 이제 전부를 얻은 잭은 두렵다.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될까 봐 두렵고, 지금 이 순간이 언제 사라질지 두렵고, 다음에 나를 떠날 사람은 누구인지, 두렵다. 잭은 술을 마신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던 모습이 된 앨리를, 결국 나를 떠날지도 모르는 앨리를 보며 사랑의 노래를 짓는다. '다신 사랑하지 않을 거야.'
"잭이에요. 전 알코올 중독자이고, 마약중독자입니다."
다시는 사랑하지 않을 거라 노래하던 잭은 사랑을 위해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이런 잭을 진심으로 사랑한 앨리. 자신 안에 빛나는 점을 발견해 준 한 사람, 잭. 잭슨 메인, 앨리 메인. 자신의 이야기와 그의 이야기를 듣는 청중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 암전 후, 'Directed by Bradley Cooper'를 보며 생각했다. 과연, 브래들리 쿠퍼가 생각한 IS BORN 된 A STAR는 누구일까? 앨리일까, 잭일까?
동생의 카톡이 다시 생각났다. 그래, 잭의 이야기일지 몰라. 앨리는 스타가 되길 원했다. 그러나, 종국에 사람들에게 영원히 기억이 될 스타로 (다시, 어쩌면 태초부터) 태어난 것은 잭 인 것이다. 잭은 스타가 되길 원하지 않았다. 우리가 태어나길 원했든 그러지 않았든 태어나 지금 존재하는 것처럼. 잭 역시 원했든 그러지 않았든, 'A star is born'의 'The star'가 된 것이다. 영원히 기억되고 회자될 그 한 사람. 이상하게도, 죽음 이후에 더욱 확실하게. 그의 술취함. 그래미에서 상을 받은 스타 아내 옆에서 오줌을 지렸던 그 모습까지. 기억되고 회자될 것이다.
'역시, 전설적인 락스타였어. 인생도, 죽음도 남달랐지. 예술가란 자고로 그런 거야.'
'Directed by Bradley Cooper' 자막이 지나가고 동생이 물었다. "언니, 레이디 가가 본명이 뭐지?" 글세, 하는 찰나에 'Lady gaga'라는 자막이 떠올랐다. 유명한 가수였다가 배우로 데뷔한 많은 사람들이 본명을 쓰는 것을 보았기에 그녀 역시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 모습 또한, 레이디 가가, 스타가 된 레이디 가가의 일면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그 한 사람을 기다리던 남자, 잭슨 메인의 이야기. 그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준 앨리 메인의 이야기. 잭에게 치우친 <A Star is Born>에 대한 짧은 글,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