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정신없이 북적거리며 출근과 등교 준비를 하던 우리 집 가족들의 한바탕 소동은 현관문을 나가면서 이내 종료된다. 그때부터 아이들의 하교시간까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다. 난 나의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나만의 공간을 만들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집을 떠났지만 그들의 그림자는 아직 이 공간을 떠나지 못한 듯 집안 곳곳에 남아있는 흔적을 찾아내고 지우려 애쓴다. 하나를 찾아 없애고 나면 또 하나가 보이고 그것마저 없애면 또 다른 무언가가 계속해서 나를 붙잡으러 하지만 이렇게 하다간 하루 종일 나를 위한 시간이 존재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적당한 선에서 멈춘다.
그렇게 마주하는 고요한 아침, 내게 허락된 공기와 햇살을 충분히 만끽하며 난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가 드리워진 창가를 바라보며 글 쓰기를 위해 노트북을 연다. 열흘 전부터 난 매일 아침 글을 쓰고 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어떤 프로젝트의 참여도 아니다. 그저 '올해가 가기 전에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다 해보자'라고 선언했던 것이 이렇게 글쓰기로 이어진 것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다 해보자'라고 선언했던 것에는 이유가 있다. 난 현재 시한부 휴직자이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활용하며 이번 한 해를 보내고 있는 나는 해가 바뀌고 나면 다시 업무로 복귀하게 된다. 작년 한 해,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로 초등학생을 자녀를 둔 우리 집은 비상이 걸렸었다. 아이들의 비대면 수업과 건강, 안전, 예방 등의 문제는 맞벌이 근무를 하고 있던 우리 부부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교육은 둘째치고 제대로 된 돌봄이 되지 않았다. 학교와 학원을 보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은 직무유기에 가까웠다. 이대로 지속할 수 없는 문제, 대안으로 떠오른 육아휴직은 불가피한 선택지가 되었고 나름의 묘수이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휴직, 그것은 아이들과 아내에게는 안정감을 주었을지 몰라도 나에겐 어쩌면 새로운 도전이었다.
휴직이 되기 전엔 남은 업무를 정리하느라 휴직 후에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아이들 돌보는 것만 잘하면 되겠지'라는 주문을 스스로에게 했을 뿐이다. 하지만 막상 휴직을 시작하고 나니 새로운 생활 패턴에 적응하는 것부터 아이들 등교 이후에 갑자기 내게 찾아온 여유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되기 일쑤였다.
첫 달은 아이들의 스케줄 매니저 노릇을 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아침에 깨우고 밥을 먹이고 씻기고 옷 입히고 가방과 마스크를 들려 등굣길에 오르게 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출근 준비보다 배는 힘겹고 복잡했다. 어찌어찌 학교를 보내고 난 후에는 오전 시간 내내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치 혜민스님의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마냥 집 안 구석구석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혹은 애써 외면했던) 정리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아이들 방 책장과 서랍, 쌓여있던 장난감 등을 정리하는 일이 꽤나 오래 걸렸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나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늦은 점심을 먹고 나면 하교 이후 학원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아이들이 원하는 (또는 내가 권유했던) 학원에서의 상담과 등록을 몇 차례 끝마치고 스케줄표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알렸다. 처음엔 낯설어하던 일정관리를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두 번째 달부터 아이들은 기상과 함께 등교와 하교, 등원과 하원 시스템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내게 여유시간이 생겼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물론 아이들이 하교 이후 학원을 가기 전 잠시 집에 들렀다 가긴 했지만) 갑자기 생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방학과 연차(휴가)가 아니고 학교생활 12년과 회사생활 12년, 총합 24년 만에 처음 맞이한 공허한 시간이 참으로 생경했다. 그래서 그 시간을 누리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일(또는 해야 할 일)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들 위주로 하나씩 성취하거나 도전해보기로 했다.
#스스로에게 부여한 도전과제가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그 메모에 적힌 내용 중 일부를 공개하자면 [매일 도서관 가기, 매일 운동하기, 못 만났던 친구 만나기, 혼자 여행 가기, 마음껏 책 읽기, 자격증 취득하기, 새로운 것 배워보기, 모르는 사람과 토론해보기, 글쓰기(또는 책 써보기), 청소년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만한 활동에 참여하기, 봉사활동해보기 등]이다.
모든 것을 다 하진 못했지만 대부분의 것들을 직접 해봤거나 도전해봤던 것 같다. 그중 [매일 도서관가기]는 동네 도서관을 1주일에 1~2번씩 다니면서 경험한 것들이 꽤나 많다. 연 평균 서른 권의 책을 읽던 내가 50권을 넘게 책을 읽어 내려간 갔고 도서관에서 펼치는 교육과 체험, 행사에 자주 참여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마을기록 활동가 양성과정에 참여하면서 마을공동체, 아카이브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었고 지역 내 도서선정위원회 위원으로 올해의 책으로 적당한 도서를 추천하는 토론에 함께 할 수도 있었다. 또한 영화와 소설을 연결한 독서토론 모임과 비블리오 배틀이라는 이름의 책 추천 토론대회를 통해서는 책을 읽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과 나눈다는 사고의 확장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책을 읽는 사람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된다는 것
시간을 내어서 읽던 책이 시간만 나면 읽는 책이 되었다. 그렇게 읽고 난 책을 블로그에 남기고 다른 사람의 리뷰를 보기 시작한 것은 '책은 혼자 읽는 것이 아니라 같이 읽는 것이구나'를 일깨워준 소중한 순간이다. 그리고 이렇게 깨우친 것들이 '글쓰기'로 이어지고 있다. 글을 잘 쓰고 못쓰고의 문제가 아니라 꾸준히 내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해나가는 것이 내게 필요했다. 시끌벅적거리는 내 머릿속 생각들을 시간을 내어 정리한다는 것, 그것은 내게 성찰이 되기 시작했고 또 다른 나를 찾는 시간이 되고 있기도 하다.
마구잡이식의 글쓰기에서 난 한 단계 더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곧 '블로그'에서 '브런치'로의 글쓰기 플랫폼 이동을 말하기도 한다. 청소년지도사로서 청소년활동 정보를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책, 영화, 음악, 스포츠 등의 취미생활을 나누는 공간이기도 했던 블로그는 내게 너무 좋은 생각 나눔의 공간이었지만 글쓰기 공간이 되었는 잘 모르겠다. 물론 카테고리를 새롭게 만들어 운영할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새로운 공간에 오로지 글만 담긴 플랫폼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브런치, 바로 지금 이 공간이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파편화되어 있던 내 기억을 끄집어내고 그동안 내가 쓴 글들을 한데 모아보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반대로 사진이나 영상 등은 이 공간에 작동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외시킨다. 온전히 글이 살아 생동하길 원하는 마음 때문이다. 혹여나 사진과 영상이 글을 방해하는 것 같다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렇게 나는'올해가 가기 전에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다 해보고 있다.
브런치 작가를 신청해서 승인받은 이후 열흘 정도가 흘렀다. 그동안 나는 9개의 글을 발행했고 그때마다 평균 10회 정도의 라이킷(좋아요)이 내 글에 반응해주고 있다. 청소년지도사라는 사회적으로 낯선 직업과 초보 글쟁이의 글이 어색하고 불편했을 텐데도 기꺼이 찾아와 읽어주고 공감해주는 분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해 본다. 더불어 '올해가 가기 전에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다 해보자'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글쓰기가 올해가 끝이 아니길 바란다. 하루에 하나의 글을 쓰는 지금처럼 다음 해에도 꾸준하고 묵묵하게 청소년지도사의 삶을 공유하고 생각을 나누길 바래본다. 가끔은 라디오를 들으면서 또 가끔은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아니면 아무 소리 없는 공간 속에서 글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