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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ae Jan 05. 2024

어떤 나무는 아래로 더 깊이 자란다

나무도 그러하듯이

새해가 되기 전 12월, 우연히 본 다큐에서 어떤 나무의 모습을 말해주는 장면에서 눈이 멈췄다. 그 나무는 지상으로 2미터가 자라면 뿌리는 6미터로 자라난다고 한다. 나무도 그리 자라는데 나도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더디어도 내면으로는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한 때는 내가 자라고 있는지, 멈추어 있는지, 죽어가고 있는지 몰라서 스스로 내민 물음표에 뒷걸음질 치는 날이 많았다.


새해에 더 이상 다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계획적인 내가 계획하지 않기로 한 것도 계획일지 모르겠지만, 새해가 되면 떠올리는 말이 있다.


오래전에 읽었던 김창완이 사연자에게 보낸 말인데 그 말을 좋아한다.


안녕하세요? 김창완입니다. 뼈가 드러나게 살이 빠지셨다니 제가 다 안쓰러운 기분이 듭니다. 근데 너무 예민하셔서 그런 것 같아요. 완벽주의 거나 세상살이라는 게 그렇게 자로 샌 듯 떨어지지 않습니다 좀 여유롭게 생각하세요. 제가 지금부터 동그라미를 여백이 되는대로 그려보겠습니다 OO..


마흔일곱 개를 그렸군요. 이 가운데  표시한 두 개의 동그라미만 그럴듯합니다. 회사생활이란 것도 47일 근무 중에 이틀이 동그라면 동그란 것입니다. 너무 매일매일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위에 그린 동그라미를 네모라고 하겠습니까 세모라고 하겠습니까? 그저 다 찌그러진 동그라미들입니다. 우리의 일상도.


완벽한 동그라미보다는 찌그러진 것들이 모여 나의 뿌리가 되고, 가지가 되고 무언가를 가득 안은 봉우리가 된다. 피어나게 해야 한다는 압박이 표면적으로 자라나게 하는 것을 막아낸다. 그래서 그냥 살기로 했다. 어떤 나무는 심연으로 자라나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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