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떠난 무이네 여행기
호치민 여행 오는 사람들에게는 유명한 무이네. 정작 우리 부부는 여기 산 지 일 년이 넘어가도록 무이네에 가보지 못했다. 언제든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계속 미뤄온 게 사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갑자기 무이네가 생각나서 그곳으로 향했다. 호치민에 사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출발 하루 전, 우리는 잘로(Zalo) 메신저로 여행사에 급히 왕복 차량과 프라이빗 지프 투어를 예약했다. 내가 이제까지 베트남에서 경험한 커뮤니케이션 중 가장 빠르고 정확했으며 디테일이 남달랐다. (감동) 사실 슬리핑 버스가 자주 있어서 따로 차를 예약하지 않아도 쉽게 무이네에 갈 수 있다. 우리는 가장 편한 방법을 떠올렸을 뿐!
우리 집은 시내보다 무이네에 아주 조금 가까워서 평일 오전 기준 차로 4시간 정도 달려 무이네 숙소에 도착했다. 베트남에도 이렇게 한가로운 도로가 있다니, 호치민만 벗어나면 이런 분위기구나.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서 잠깐 쉬기도 하고, 7인승 차에 우리 부부와 운전기사 아저씨 한 분만 계셔서 아주 편안하게 무이네로 갈 수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체크인하고 짐 풀었더니 어느새 점심 먹을 시간. 9월 호치민은 우기지만 이 날 무이네의 하늘은 유독 파랗고 공기가 좋았다. 무이네의 바다는 푸꾸옥이나 냐짱에 비해 깨끗하지 않다지만 이 날은 무슨 일이었는지 바다도 새파랗게 보였다.
이번 무이네 여행에서 우리는 오토바이를 빌려서 탔다. 지프 투어 말고는 아무 준비도 해 오지 않았기 때문에 구글 맵에 오토바이 렌탈 샵을 검색하고 잘로 메시지로 요청했더니 리조트 앞으로 갖다 줬다. (와우!) 이틀에 30만 동. 당연히(!) 오토바이 상태는 좋지 않고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였음) 내 신분증 확인도 안 했지만 (....) 호치민 산다고 했더니 안심하는 듯한 눈빛(?!)으로 오토바이 키와 헬멧을 내어줬다.
첫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원 없이 푸른 바다와 하늘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 정말 무이네에 오길 잘했어!
하지만 둘째 날은 전날 밤에 비가 내렸는지 날씨가 흐려서 푸른 하늘을 볼 수 없었다. 푸른 하늘과 햇빛을 마음껏 즐길 수는 없지만 흐린 날씨 덕에 프라이팬 마냥 뜨겁게 달궈진 사막을 걷지 않아도 된다는 게 다행이었다.
우리가 탈 지프는 리조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캡틴 아메리카 같은 디자인이지만 창문 없고 승차감은... (먼산) 우리와 함께 하는 드라이버 아저씨는 아주 과묵한 분이었는데 이 동네에 지프 투어 처음 할 때부터 계셨을 거 같은 포스가 있었다.
요정의 샘
무이네 여행 간 사람들의 사진을 봤을 때 요정의 샘은 왜 유명한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사진으로 보면 저 물이 그냥 흙탕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맨발을 처음 내딛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물이 흙탕물처럼 보이는 건 바닥의 모래가 붉은빛이기 때문인 거고, 모래 바닥 위로 흐르는 담수를 맨발로 밟는 경험은 아주 신선했다. 게다가 옆에 병풍처럼 늘어선 붉은 절벽이 마치 매우 작은 그랜드캐년 같았다. (그랜드캐년 가 본 적 없음)
자본이 많이 들지 않는 판타지 영화를 찍는다면 여기서 찍어도 되겠다, 생각을 하면서 걷다 보면 이 물이 어디서 나오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 호기심에 끝까지 가보려고 했지만 꽤 멀기도 하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그냥 중간에 돌아 나왔다.
화이트 샌듄
무이네 여행의 핵심은 여기, 화이트 샌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라이즈 투어를 신청한 사람들은 이 곳에서 일출을 감상할 수 있지만 우리는 해가 쨍하지 않은 흐린 날의 화이트 샌듄을 만났다.
이 곳의 첫인상은 '과연 관광명소구나' 싶었다. 지프 드라이버 아저씨가 우리를 내려주고 입구에 가면 ATV 업체 직원들이 영수증처럼 생긴 종이(안에 아무것도 안 쓰여있고 양식만 있는 빈 종이임)를 들고 영업을 한다. 가격은 베트남 물가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60만 동. (차 한 대 기준) 그렇다고 이 광활한 사막을 걸어갈 수는 없고 관광지에 왔으니 관광을 마음껏 즐기자는 마음에 ATV를 탔다.
ATV를 타면 엄청난 속도로 질주를 해서 포토 포인트에 세워준다. 빠른 것도 그렇지만 가파른 경사의 사구를 일부러 오르거나 내려가면서 스릴을 즐기는 것. 영상 찍으려고 손에 핸드폰 쥐고 있으면 담으라고 경고하는데 한 번 타고나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한참 사진을 찍은 다음 또 다른 차를 잡아타고 다른 포토 포인트로 이동하는 것. 우리는 이 와중에 그 종이를 잃어버려서 망연자실했지만 모래 더미에서 다른 누군가 잃어버린 종이를 주워서 그곳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부니 소지품 관리를 잘합시다...
이색적인 풍경이라 우리를 포함한 모두 사진 찍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대로 우리 부부는 흰 옷을 맞춰 입었고 스카프 하나를 사서 소품으로 활용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늘하늘한 원피스, 라탄 모자 또는 리넨 재질의 옷을 입고 왔는데 사막의 풍경과 정말 잘 어울렸다. 부드러운 모래 위에 누워보기도 하고 평소 시도해 보지 못한 과감한 포즈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호수와 붙어있는 사막이라는 점도 신기했다. 보통 사막하면 드넓은 모래사장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여기는 큰 호수와 그 뒤에 푸른 목초지까지 있었다. 이 조합은 무엇...?
사진으로 보면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구 위에서는 엄청난 모래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사구에서 내려오고 나니 온 몸에서 모래가...
레드 샌듄
그다음 찾은 곳은 레드 샌듄. 화이트 샌듄보다 규모는 작지만 ATV가 없는 덕분에 모래 언덕 위에는 바람이 새겨 놓은 선명한 물결무늬와 사람들 발자국만 있었다. 화이트 샌듄이 차가운 느낌이었다면 여기는 애니메이션 <알라딘>을 떠올리게 하는 강렬한 색감이었다. 멀리서 보면 붉지만 가까이서 보면 중간중간 검은 모래가 섞여있는 것도 독특했다.
낑낑대며 모래 언덕 위를 오르면 이 곳에 앉아 선셋을 감상할 수 있... 겠지만 우리는 구름 뒤에 가려진 노을에 만족해야 했다.
레드 샌듄 위에서 보는 노을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투어 일정은 마무리!
이번 무이네 여행에서 인상 깊었던 건 쭉 뻗은 도로였다. 차가 많지 않고 한적해서 우리도 자신 있게 오토바이를 타 보자고 마음먹게 되는 풍경! 매일 오토바이로 꽉 막힌 길만 보다가 뻥 뚫린 길을 보니 내 마음이 다 시원!
지프 투어를 하던 날 카우보이 모자를 쓴 드라이버가 운전하는 지프차로 이 길을 달리고 있자니 마치 서부 개척시대로 넘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분명 길은 매끈한데 우리가 탄 차의 승차감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여서 더욱 그랬다. 지프차 안에서 본 풍경과 무이네의 색감까지, 여기 정말 베트남 맞나?
비록 요즘 뜨는 푸꾸옥이나 냐짱, 다낭처럼 최고급 럭셔리 리조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사막과 바다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인 여행지였다. 해안가를 따라 늘어선 작은 가게 안에 앉아 맥주 한 잔 하는 것도, 탈탈거리는 오토바이를 타는 것도 모두 즐거웠다.
호치민 사는 우리에게 딱 맞는 주말 여행지가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