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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Sep 11. 2020

영국 비자받으려면 엑스레이 찍어야 한다고요?

베트남에서 알게 된 나의 폐 상태

아직 실감이 잘 나지 않지만 우리 부부는 이번 주부터 영국 비자 신청 프로세스에 돌입했다. 베트남 올 때 한 번 난리부르스를 해봐서 이번 것도 만만치 않겠다는 예상은 했었다. 한국에서야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영국 비자 신청한 경험이 있다 보니 일목요연하게 (정말 한국인들은 대단해) 정리된 글이 많았지만 여기는 베트남이니까. 내가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수밖에.


온갖 서류를 떼고 공증받는 건 각오했었지만 우리를 당황하게 한 건 결핵 검사 결과를 첨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거참 별 걸 다 달라고 하네. 이때만 해도 별거 아니겠거니 하고 남편이 먼저 에이전시에서 알려 준 곳에 찾아갔다가 대멘붕에 빠졌다.


남편이 흉부 엑스레이 결과 abnormal (비정상) 판독을 받은 것.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피가 식는 느낌이었다. 출국이고 뭐고 당장 한국 가서 치료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엑스레이 판독해 주는 의사는 정상/비정상 외에는 아무 코멘트도 하지 않았고 추가 검사를 위한 장소만을 알려줬다고 하길래 따로 병원 찾아가서 정밀검진을 받아야 하나, 아니 이 코로나 시국에 설마 그 말로만 듣던 무증상 감염 상태인 건가 온갖 상상을 다 하면서 초록창에 '영국 비자 결핵 검사 비정상'이라고 검색을 해보니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글이 여럿 보였다.


결론적으로는 비정상이 지금 당장 어디가 아파서 그렇다는 건 아니고 결핵 흔적만 남았어도 비정상 판독을 내린다는 거였다. 평생 호흡곤란이나 폐렴 기억도 없는데 비정상 판독받은 사람들 이야기가 많아서 그제야 좀 안심이 됐다. 베트남에서는 이런 설명을 해주지 않아서 우리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지만...


문제는 추가 검사. abnormal 판정을 받으면 지정된 병원에 가서 연속 3일 간 객담 검사를 받아야 하고, 그 결과는 무려 8주 뒤에나 받을 수 있다. 우리는 병원 예약을 할 수 있을 만큼 베트남어를 못하니까 병원 예약도 직접 가서 해야 하고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남편은 다음 주에 무려 새벽 6시 반에 검사를 받으러 가기로 했다.


혹시나, 베트남에서 영국 비자를 신청할 사람을 위해 결핵검사 절차를 차근차근 설명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한국에서는 엑스레이, 객담검사 모두 세브란스 병원에서만 가능하다)


1) IOM 센터 미팅 예약

사실 큰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미리 예약을 잡아두는 것을 추천. 이메일로 예약 잡아달라고 하면 되고, 오늘(2020년 9월 11일) 기준으로 센터 내 엑스레이 검사는 //  3 오후 1시부터 진행한다. 준비물은 여권 하나면 끝.



2) IOM 센터 방문
실내인 것 같지만 지붕만 있는 야외임. 선풍기만 있음...

그래도 비자 신청을 위한 검사 센터인데 삐까뻔쩍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식당 옆에 간이 통로 같은 곳을 지나면 데스크가 하나 있고 신청서 작성 후 여권과 함께 제출하면 된다. 개인 인적사항이랑 비자 종류, 스폰서가 있으면 그 정보도 같이 기입해야 함. 1시부터 시작이지만 조금 일찍 가서 미리 신청서를 내야 대기번호가 밀리지 않는다. (나는 12시 50분쯤 도착했는데 다행히 1번이었고, 남편은 12시 반쯤 갔는데도 2번이었어서... 복불복인 듯)


미국, 캐나다, 호주 신청서도 있는 걸 보니 업무를 같이 보는 듯. 하지만 나와 비슷한 시간에 온 사람은 모두 영국에 가려는 유학생들이었다.


<IOM 센터 정보>

https://goo.gl/maps/ReJFGMtnaVb8VxHt5

주소: 1b Phạm Ngọc Thạch, Bến Nghé, Quận 1, Thành phố Hồ Chí Minh (다이아몬드 플라자 근처)

이메일: hcmc@iom.int


3) 인적 정보 확인, 검사 비용 결제
이 분위기 마치 은행인 줄

나는 접수자 중에 1번이어서 그랬는지 입구 데스크 뒤쪽에 있는 은행 창구처럼 생긴 곳에 앉아 기본 인적사항을 확인받았다. 내가 종이에 쓴 정보를 담당자가 한 땀 한 땀 타이핑하고, 프린트 한 다음 다시 확인받는데 오타가 장난 아니게 많음. 받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건 국적이 베트남으로 되어 있던 것... 그래서 얘기했더니 내가 뒤에 확인하기 전에 거기만 딱 고쳐서 또 프린트해서 보여주고. 뒤에 보니 주소랑 회사 이름 다 틀렸길래 또 이거 수정하느라 한참 걸렸다. 한국이었으면 5분 안에 끝날 절차를.... 또르르.


그다음 자리에 있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여권번호부터 주소, 연락처까지 꼼꼼히 확인한 다음 OK를 하면 종이에 사인 몇 번 하고 바로 옆 결제 창구로 가야 한다.


검사 비용은 무려 105달러. 신용카드 가능하고 돈을 내야 그다음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남편은 여기가 아니라 엑스레이 검사실 2층 사무실에서 이 절차를 진행했다는데 그곳은 여기보다 훨씬 좁고 대기하기 불편하다. 살펴보니 내 뒤에 온 사람들도 거기로 보내던데 이건 1번 접수자의 행운이었던 것인가?


4) 엑스레이 검사
나 이거 영화에서 본 거 같아...

대망의 엑스레이 검사! 접수하는 곳에서 작은 문을 열고 나가면 다른 건물 입구가 있는데 나는 마치 타임머신 타고 50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옛날 영화 보면 이런 느낌이었던 거 같은데... 문이 아니고 비닐 장막을 걷고 들어가면 엑스레이실 있는 복도가 나온다. 에어컨은 설치되어 있지만 나오지 않고 철제 함에 여권이랑 신청서 넣고 기다리면 가운 입은 아저씨가 와서 안내를 해 준다.


들어가면 영어로 이름, 생년월일, 국적이 뭔지 대답하라고 하고 촬영 방을 알려준다. 나는 옷 갈아입으라고 안내받았는데 이건 옷이 아니고 그냥 소매 달린 앞치마(?) 같은 거였음. 남편은 옷 얘기 듣지도 못하고 그냥 상탈한 채로 촬영했다고... 숨 참고 딱 2번 찍고 나면 담당자가 그 자리에서 normal / abnormal 판정 후 종이에 사인해 줌. 나는 이미 남편 이야기를 듣고 여기서 abnormal 나오면 어떻게 될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normal이라는 이야기에 깨춤을 추며 2층으로 올라갔다. (정작 내 흉부 엑스레이 사진은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도 못했다.)


5) 증명서 발급 대기
DNA룸(???)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기

여기서 normal과 abnormal의 운명이 갈린다. normal인 사람들은 정상이라는 내용이 담긴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하고, abnormal인 사람은 후속 절차에 대해 안내받는다. 일단 normal인 경우를 설명하면... 내 이름 부를 때까지 기다린다. 참고로 나는 1번으로 촬영했는데도 여기서 1시간 걸렸다.


앞서 말한 대로 여기 대기 환경이 좋지 않아서 1시간 앉아있자니 좀이 쑤시고 힘들었다. 좁은 복도에 등받침 없는 의자가 지하철처럼 서로 마주 보고 있어서 초면인 사람들하고 무릎 거리두기 못한 채로 앉아있어야 하는 것. 한국에서 검사 받은 사람들은 우편으로 받을 수도 있다는데 여기에선 그런 옵션은 없다... (또르르)  


2시간 만에 받은 정상 증명서

내 이름을 불러서 가보면 마치 상장 같은 재질의 종이에 도장이 찍힌 종이를 준다. 여기에서 마지막으로 인적사항을 또(!) 확인하고 사인하면 (오늘 하루종일 사인 6번인가 했음) 홀로그램 스티커를 붙여주며 주의사항 몇 가지를 안내해 준다. 비자 신청할 때도 원본이 있어야 하고, 영국 입국할 때도 들고 가야 하며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이야기는 만료기한인 6개월 이내에 재발급이 안되니 절대 잃어버리지 말라는 것.


이렇게 2시간 만에 내 폐가 영국 기준으로 정상임을 인증하는 증명서가 내 손안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비정상 판정받은 사람들의 운명은?


한국에서는 강남 또는 신촌 세브란스에서, 베트남 호치민의 경우 쩌러이(Chợ Rẫy) 병원에 가서 3일 연속 객담검사를 받아야 한다. 참고로 쩌러이 병원은 호치민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종합병원으로, 코로나19 환자를 수용하고 치료하는 곳이기도 하다.


호치민 쩌러이병원의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남편은 병원에 객담검사 예약하러 간 순간부터 멘붕이었다고 했다. 일단 병원이 엄청나게 크고, IOM 센터보다 더 옛날로 돌아간 것 같은 분위기에, 사람은 많고... 우리나라 종합병원 하고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인 분위기. (세브란스 병원하고 비교하려니 말잇못....)


와중에 엑스레이 검사 결과받은 1주일 이내에 객담검사를 3일 연속 시행해야 하는데 처음에 병원에서는 검사가 불가능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안되다가 IOM 센터 담당자랑 통화를 하니 정상 슬롯이 아니라 예외적으로 검사를 받을 수 있게 새벽 6시 반에 오라고 하는 종이를 한 장 내어줬다.


이렇게 남편은 다음 주 월화수 새벽 6시 반에 눈 뜨자마자 양치질도 못하고(양치질하지 말라고 함) 쩌러이 병원에 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객담검사 방법 (출처: 오레곤주 공중보건국)

3일 안에 충분한 양으로 채취해야지, 모자라면 목요일, 금요일에 또 부를 수도 있다고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했다는 점... 과연 다음 주 남편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요즘도 결핵에 걸린다고?


사실 살면서 결핵을 크게 무서워해 본 적이 없는데 이쯤 하니 대체 어떤 병이길래 영국 갈 때 엑스레이 결과지까지 내야 하나 궁금해졌다. 내가 생각하는 건 어릴 때 크리스마스씰 샀던 것 말고는 결핵과 연관되는 기억은 없는데...


올해는 펭수 크리스마스씰


결핵(Tuberculosis)은 결핵균에 감염되어 발생하는 것으로 심한 기침이 대표적인 증상이라고 한다. 다만 걸린 사람 모두가 증상이 있는 건 아니고 잠복되어 있을 수도 있고, 대표적인 감염 경로는 결핵환자의 기침을 통한 호흡기 감염. 찾아보니 코로나와는 다르게 음식을 같이 먹거나 물건을 같이 썼다고 옮지는 않는다고 한다.


출처: 질병관리본부(...아 이제 질병관리청!)

질병관리청 결핵의 날 카드 뉴스 


문제는 아직도 우리나라 결핵 발생률과 결핵으로 인한 사망률이 주요 국가에 비해 아주 높은 편이고, 국민의 1/3은 잠복결핵감염 상태일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예방이 중요하다는 점! 옛날처럼 결핵 걸리면 치명적인 것도 아니고, 꾸준히 치료만 잘 받으면 완치될 수 있다고.



어쩌다보니 해외 살면서 또 다른 나라의 비자를 신청해본다. (아, 남편은 출장 때문에 베트남에서 중국 비자 신청한 적 있었는데 그것도 정말 다시는 못할 최악의 경험이었다고...)


영국은 정부 홈페이지(gov.uk)에 정보가 위키피디아처럼 정리돼 있어서 내게 맞는 비자 종류에 맞게 서류를 준비하면 된다. 다행히 우리는 남편 회사에서 붙여 준 에이전시에서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정보 채워서 보내달라고 하는 엑셀 양식에 부모님 출생지까지 적으라는 걸 보고 기겁했다.


엑스레이 검사에 이어 대환장 에피소드를 장식할 서류 준비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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