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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Sep 17. 2020

영국 비자 준비하느라 이 시국에 베트남 종합병원을 갔다

외국 살면서는 최대한 가지 말아야 할 곳, 병원

어제로 남편의 객담검사가 드디어 끝났다. (왜 객담검사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지난번 글에 자세히 써 두었다.) 3일 내내 고생하느라 안쓰러운 마음 반, 대체 어떤 분위기인지 궁금한 호기심 반에 마지막 날은 나도 병원에 동행했다.


아침 6시 반까지 가야 하는데 하필 마지막 날 살짝 늦잠을 잔 것. 이러다 앞서 이틀간 했던 객담검사마저 무효가 될까 봐(객담검사는 3일 연속받아야 함) 남편은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병원으로 향했고, 나는 따로 차를 타고 그 뒤를 따랐다. 그나마 우리가 호치민에 살고 있고 차로 30분 거리인 곳에 병원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다른 도시에 살았으면 이거 하려고 호치민까지 와서 병원에 출근 도장 찍을 뻔했네.


역시 베트남에 살다 보면 작은 것 하나에도 참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우리는 점점 더 험블 해지는 중.


<호치민 쩌러이(Chợ Rẫy) 병원 위치>


정문에서 보이는 병원 모습, 저 방이 모두 병실인 걸로 보인다


병원에 도착해서 온갖 차와 오토바이로 뒤범벅된 정문을 지나면 빽빽하게 병실이 들어찬 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2년 간 살면서도 베트남에서 종합병원은 처음이라 다른 곳과 비교는 못하겠지만 뭔가 숨이 탁 막히는 느낌, 그게 내 첫인상이었다.



쩌러이 병원 TMI

- 쩌러이 병원은 베트남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

- 1900년 프랑스 식민 지배 시절 처음 지어졌음

- 몇 번 이름이 바뀌었지만 1957년 '쩌러이 병원'으로 변경됨

- 1974년 일본 정부의 원조로 재건축

- 베트남 내의 의대생과 의사 수련 기관이기도 함

- 병상 1,200개, 의사와 약사 500여 명을 포함한 직원 2,270명

- 연간 외래 진료 457,000명, 입원 환자 67,000명



만약 베트남에서 영국 비자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흉부 엑스레이 비정상(abnormal) 판정을 받고 객담검사를 받기 위해 쩌러이 병원에 오는 사람이라면, 객담검사 예약을 꼭 현장에 와서 하기를 권한다. 처음에 병원 도착하면 건물이 많아 어디가 어디인지 전혀 알 수 없고, 친절한 영문 안내판... 은 없어서 길 잃기 십상. IOM 센터에서 추가 검사를 위해 적어주는 소견서 같은 종이가 있으니 그걸 흔들면서 주변 스태프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손가락으로 방향은 알려줄 수 있으나 RPG 게임하는 것처럼 갈림길 나올 때마다 물어봐야 할 것이다.


객담검사 예약하기
쩌러이 병원 내부 지도, 비자 메디컬 센터는 이름도 안 나와 있음 (출처: 쩌러이 병원 홈페이지)


cồng số 1(1번 게이트)이 아까 내가 얘기한 정문이고, 객담검사 예약과 검사는 cồng số 3 (3번 게이트) 근처 주차장과 매점 사이의 작은 샛길로 들어가면 보이는 건물에서 진행된다. (첨부한 이미지의 빨간 박스) 차로 온다면 정문 대신 3번 게이트에 내리는 것도 방법.


객담검사 장소로 향하는 길에 보이는 풍경

한국에서도 종합병원에 가면 건물이 워낙 많아서 헤매기 십상인데 여기는 사람 다니는 길과 차도 구분이 안 되어 있어서 더 혼잡하다. 걷는 사람, 자동차, 오토바이, 앰뷸런스가 한데 뒤섞이는 광경을 볼 수 있음. 걷다 보니 병원 접수대를 지나쳤는데 우리나라처럼 키오스크에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시스템. 안에 사람이 너무 많은지 건물 밖에도 목욕탕 의자를 놓고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역시 병원이란...


같은 방향으로 가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거기다 요즘은 전 세계 어디나 코로나19로 난리고, 내가 방문한 쩌러이 병원은 호치민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이라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기도 하다. 나름 동선을 분리해 둔 것 같긴한데 가는 길목마다 코로나19 검사 팻말이 있어서 찜찜했던 건 사실. 그래서 이 날은 일부러 실내는 들어가지 않고 건물 밖으로만 돌았고, 소중한 KF80 마스크를 쓰고 갔으며 마스크 또한 절대 벗지 않았다. 병원 밖으로 나오자마자 KF80 마스크는 바로 버리고 여분의 덴탈 마스크를 또 썼음.


비자 메디컬 센터 위치를 알려주는 팻말

지도에 안 나와있어도(...) 걷다 보면 작은 팻말에 'Visa Medical Department'라고 쓰여있는 걸 볼 수 있다. 긴가민가할 수 있는데 이 화살표를 따라가면 엄청 오래된 간판이 있는 작은 건물 하나가 나온다. 객담검사 예약은 이 건물의 2층 (* 단, 유럽식 표기로 위층이 1층으로 되어있음) 올라가서 의사를 만나야 하고, 검사는 건물 오른편 방으로 들어가면 된다. 처음 가면 멘붕 와서 엄청 헷갈릴 수 있으니 꼭 현장에서 검사 장소를 확인하는 것을 추천.


객담검사 예약하면 받는 종이. 영어 표기는 이름 빼고 1도 없음.

객담검사는 엑스레이 찍고 1주일 내에 시행되어야 한다고 나와있는데 여기에서 슬롯이 꽉 차서 안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당황하지 말고 IOM 직원과 통화하도록 하면 알아서 잘 조율된다. 원래 객담검사는 7시 반부터 가능하다고 했지만 남편은 6시 반 슬롯을 배정받았다.


객담검사 시작


객담검사를 받기 전에 남편은 유튜브에서 가이드 영상을 보고 연습(!)까지 해서 갔다. 하지만 담배를 피운 적도 없고 호흡기 증상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억지로 가래를 끄집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유튜브에 Sputum Culture 검색하면 다양한(?!) 가이드 영상이 나오니 필요하면 참고를...


객담검사 장소

왼쪽 사진은 객담검사받는 사람들이 대기하는 장소다.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면 뭔가 가이드 영상 같은 걸 먼저 틀어주고 그다음 한 명씩 이름을 불러준다. 마지막 절차는 아주 심플하게도 밖으로 나가 연습한 대로(??) 객담을 채취하면 된다. 한국 보건소나 병원에서는 따로 객담 채취실이 있던데 여기는 밖에 의자 몇 개 놓여있고 벽을 보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뱉어내면 됨.

객담 채취 장면을 자세히 살펴보자

오히려 오픈된 공간이라 나은 건가? 하지만 이 장면만 보면 2020년이 아니라 최소 1970년대 느낌... 첫날부터 셋째 날까지, 정해진 시간에 와서 성실하게 객담을 채취하면 객담검사가 끝나고 조용히 8주를 기다리면 된다.



쩌러이 병원의 야옹이들

외국에 살면서는 최대한 병원 갈 일을 만들면 안 된다. 건강보험이 없어서 비싼 것도 있지만 그건 사보험으로 어떻게 커버된다고 치고, 치료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게 가장 문제다. 게다가 요즘은 코로나19가 또 난리...


2년 간 호치민에 살면서 '쩌러이 병원'하면 무시무시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특히 오토바이 교통사고가 많은 곳이라 갑자기 사고 나면 이 병원에 실려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 어딜 가나 종합병원은 항상 사람이 많고 혼잡하다지만 여기는 정말... (말잇못)


게다가 베트남에서 무시무시한 오진 이야기를 몇 번 들어서인지 나는 여기에서 병원 가는 건 정말 신중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에 살 때는 그렇게 열심히 몸을 챙기지 않았는데 베트남 나오고 나서는 아프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노력 중이다. 조금만 감기 기운 있으면 바로 감기약 먹고 칩거하며 몸을 추스르고 가끔 배탈이 나면 입맛이 자동으로 뚝 떨어지면서 하루 이틀은 굶는다. 꾸준히 먹지 않아 유통기한 지나서 버리던 영양제들, 이제는 매일 꼬박꼬박 잘 챙겨 먹고 건강한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을 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 중. 게다가 요즘 코로나19로 건강염려증이 심해지고 한국 가서 정기 검진받는 것도 미뤄지다 보니 내 몸은 알아서 잘 지키는 수밖에. 


마지막 객담검사 끝내고 쌀국수 한그릇, 아침 8시에 집에 도착 후 긴장 풀려서 꿀잠잤음


여하튼, 객담검사 결과가 잘 나와야 다음 비자 프로세스를 진행할 수 있다.

8주 뒤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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