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이면 만날 수 있는 색다른 풍경
호치민 사는 사람들에게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붕따우는 만만한(?) 근교 여행지 중 하나다.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고 해산물이 저렴하기 때문. 우리도 1년 가까이 한국을 포함해 아무 데도 나갈 수 없으니 답답한 건 어쩔 수 없는 일. 어느 주말, 지인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매우 즉흥적으로 붕따우 여행을 떠났다.
예전에 무이네 갈 때 연락했던 여행사가 있어서 어렵지 않게 붕따우 가는 차를 예약했다. 7인승 차라서 셋이 타기에 딱 적당한 정도. 무이네 갈 때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길이 좁아서 차들이 자꾸 추월하는 게 불안했는데 붕따우 가는 길은 그에 비하면 진짜 괜찮은 편이다. 도로 상태도 괜찮고 2시간이면 도착하니까 간식 먹으며 수다 떨면 금방 도착. 아쉬운 건 가는 길에 비가 내려서 차 안에서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는 것과 김밥이라도 살 걸 하는 후회. 다음에 또 붕따우 여행 간다면 아침 김밥을 잊지 말아야지!
인테리어 취향 저격이었던 붕따우 호텔
큰 고민 없이 선택했던 붕따우의 호텔. 베트남에서 유명한 호텔 체인이기도 하고, 시내에 있고, 바다 가깝고. 즉흥 여행에 이만한 곳이 없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건 인테리어가 딱 내 취향이었다는 점. 깔끔하고 모던하면서 포인트 컬러를 세련되게 잘 썼다. 너무 심플하면 차가운 느낌이 들 수 있는데 나무 소재를 적당히 잘 써서 편안한 분위기였다.
우리는 아침 8시에 출발해서 10시쯤 도착했는데 체크인하기에는 이른 시간. 일단 하루의 시작은 카페인으로 해야 하니 호텔 로비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하루의 계획을 세웠다. 날씨가 영 시원찮아서 야외 활동은 못하지 않을까요, 하면서 호록 호록. 1시간 정도 노닥거렸더니 리셉션에서 방 준비됐다고 얘기해줬고 우리는 짐을 놓고 이른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숙소 정보>
Fusion Suites Vung Tau
붕따우 하면 역시 반콧(Bánh khọt)이지!
우리의 점심 메뉴는 이견 없이 반콧으로 결정! 호텔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붕따우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인 '꼬바 붕따우 (BÁNH KHỌT CÔ BA VŨNG TÀU)'가 있었다. 나도 반콧은 처음 먹어보는 거라 기대 만발!
반콧 (제일 왼쪽 사진)은 작은 반죽 위에 새우나 고기 등을 얹어 주는 음식이다. 별 맛 아니겠지 했는데 먹자마자 두 눈이 번쩍! 일반적인 한국의 부침개나 전보다는 바삭한 반죽에 새우가 통째로 올라가 있어서 쫄깃쫄깃한 맛. 결국 한 접시 순삭 하고 또 주문했다. 반콧에 1인 1 메뉴는 기본...! 각자 취향껏 베트남 음식을 시키고 엄청나게 큰 반쎄오도 주문했다. 한 상 가득 시키고 배부르게 먹었는데도 다해서 42만 동! (약 2만 천 원) 베트남에 살고 있지만 호치민보다도 물가가 더 저렴한 곳이라는 게 실감 났다.
생각해보니 베트남 살면서 정작 베트남 음식점은 거의 손에 꼽을 만큼 가는 듯. 코로나 전에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많이 놀러 와서 그때마다 베트남 음식점 가곤 했는데 이제는 그냥 집에서 한식만 차려먹으니 여기가 베트남인지 한국인지 실감이 안 난다.
태풍 속 인피니티 풀
점심을 먹고 우리는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날씨가 괜찮으면 어디 좀 가볼까, 하던 차에 이 호텔은 탑층에 있는 인피니티 풀이 멋지다고 해서 휴양 온 분위기 좀 낼 겸 위로 올라갔다. 처음에는 흐리지만 바다가 보여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하늘이 어두워지고 바람이 거세지더니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호치민에서도 급 스콜이 찾아오는 거야 익숙했지만 느긋하게 선베드에 누워 칵테일 한 잔 하면서 여행 분위기를 즐기려던 우리의 계획은 비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한층 밑 레스토랑에서 이야기 나누면서 힐링하기로. 지금 밖이었으면 (특히 예수상 본다고 올라갔으면) 큰일 났겠다는 말을 하면서.
여수 밤바다 못 가니까 붕따우 밤바다
비는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야 그쳤다. 점심 먹고 하루 종일 호텔에서 빈둥거린 것 밖에 없지만 그래도 집 떠나오니 그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붕따우는 바닷가에 접한 도시라 해산물 식당들이 유명한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규모가 큰 식당을 가보기로 했다.
호텔과 가까운 곳에 2호점이 있었지만 괜스레 원조(?!)를 가고 싶어서 굳이 차를 타고 1호점을 갔는데 풀방. 주말이니 로컬 사람들도 전부 여기 왔나 보다. 우리는 그 길로 차를 돌려서 결국 호텔 앞 2호점으로 갔다. 다행히 멀지 않은 거리였고 우리의 빠른 판단력 덕분에 힘들지 않게 2호점에 올 수 있었다. 짧게나마 드라이브한 걸로 하지 뭐.
오후에 비가 잔뜩 내렸지만 저녁 시간에는 비가 그쳐서 바닷바람이 선선했다. 오래간만에 파도소리도 듣고, 맥주 한 잔 하고 있자니 정말 여행 온 기분! 이 해산물 식당은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한데 그만큼 직원도 엄청나게 많다. 하지만 우리 주문은 자꾸 빠뜨려서 기분이 상하려던 찰나... 마지막에 나온 문어 요리가 정말 역대급으로 맛있어서 대만족. 얼음 녹아가는 밍밍한 맥주와 싱싱한 해산물의 조합은 정말 환상이다. 그리고 또 상다리가 부러져라 신나게 먹었는데도 100만 동 (약 5만 원) 안 나옴. 2시간 걸려서 당일치기로 저녁 먹으러 와도 되겠다 말하면서 야무지게 저녁 시간을 보냈다.
호텔 위치가 좋은 덕분에 걸어서 바닷바람을 좀 더 느낄 수 있었다. 걷다 보니 어렸을 때 제주 시내 바닷가 식당에 저녁 먹으러 갔던 기억이 오버랩되더라. 의외로 보도블록이 깨끗하고 길이 꽉 막혀있지 않아서 살살 걷기 좋았던 붕따우의 밤바다.
그리고 호텔 방에 돌아와서 우리는 밀린 예능도 보고 고스톱으로 새벽까지 달렸다. (....) 역시 어른들의 여행!
잠시라도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어 다행이야
토요일은 하루 종일 흐리고 비가 와서 아쉬웠지만 일요일은 아침부터 해가 쨍쨍했다. 조식 레스토랑은 전면 통창이라 뷰도 좋아서 더욱 멋졌음. 딱 1.5일 여행이지만 잠깐이라도 맑은 하늘을 보니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천천히 아침을 먹고 바로 앞 바닷가로 산책을 나섰다.
호텔 바로 앞에는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의 카페가 하나 있었다. 당연히 한국인들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며 손에 아아 한 잔씩 들고 바닷가로 슬렁슬렁. (물론 우리가 원했던 아메리카노 맛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몰디브... 도 아니고 제주도처럼 맑은 바다에 백사장은 아니지만 멀리서 보면 괜찮다. 물론 가는 길에 큰 쥐(...)가 호록 호록 돌아다니는 것만 빼면. 호치민에서도 잎이 넓은 식물이나 키 큰 나무들이 아열대 기후에 산다는 걸 깨닫게 해 주지만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은 느끼기가 힘들다. 다음에도 답답하면 이렇게 바람을 쐬러 와야지.
쨍한 햇살이 살짝 더워진다 느껴질 때쯤 우리는 다시 호텔로 복귀해 호치민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다행히 기사님이 영어를 잘하셔서 드라이브 잠깐 하고 싶다는 우리의 요청을 흔쾌히 들어주셨고, 그 덕분에 (올라가 보지는 못했지만) 붕따우의 랜드마크라고 하는 예수상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가까우니까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가 볼 수 있지 않을까! 아, 그런데 내게는 '다음'이 얼마 남지 않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