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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Aug 27. 2021

기후변화가 아니라 위기

런던 시내의 시위대를 보며

지난 월요일, 나는 런던 시내에 나갔다가 엄청난 시위대를 만났다. 런던 한복판의 레스터 스퀘어 길이 꽉 막혀있었고, 역에서 코벤트가든까지 걸어서 5분이면 충분한데 막히지 않은 길을 찾아 한참을 돌아가야만 했다. 무슨 메시지를 말하는 건가 하고 찾아봤더니 그들은 지금의 기후 위기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런던의 시위대, 그들이 나눠 준 리플렛

코로나 이후 이렇게 대규모의 시위대를 길에서 보는 풍경 자체가 생소했고, 평일 대낮에 유동인구 가장 많은 길을 다 막은 것도 신기했다. 그리고 독특한 건 마치 축제처럼 음악에 맞춰 춤추는 시위대를 볼 수 있었다는 점. 적어도 내가 이 날 본 광경은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https://www.bbc.co.uk/news/uk-48607989


나도 코로나19 이후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사실이다. 2010년대 중반만 해도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미세먼지에 불평불만했었는데, 내가 한국을 떠날 때쯤에 여름 날씨는 베트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어떤 날은 베트남보다 더웠고 비의 양도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작년과 올해 그 변화는 훨씬 심해졌고 지구 곳곳이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로 난리였다. 최근 몇 달만 해도 독일에는 홍수가, 그리스와 터키에는 산불이, 미주 서부에는 엄청난 폭염이 있었다. 


3주 전쯤에는 베트남에서 볼 법한 폭우를 영국에서 목격했다. 이 날 나는 운전 연수 중이었는데 차 앞 유리가 아예 안 보일 정도로 비가 2시간 동안 세차게 와서 와이퍼를 최대한 빠르게 해도 앞을 보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배수가 잘 안되는지 차도와 인도의 경계 부근에는 금방 물이 차올랐다. 이 날 소셜미디어에는 물에 잠긴 지하철역, 도로 등이 잔뜩 올라왔다. 베트남에서는 이 풍경이 익숙했는데 영국에서까지...? 원래 이렇게 강한 비가 오나 싶어서 찾아보니 최근 이런 기습 폭우에 물난리가 나는 게 기후 변화 영향이 없지는 않다고. (그 외에는 도시화로 인한 인구 집중, 낡은 배수 시스템 등) 


https://www.bbc.co.uk/news/science-environment-57969877


그리고 얼마 전, IPCC에서 내놓은 리포트에 대한 기사가 BBC에 매우 자세하게 실렸다. 결론은 인구 증가가 확실히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미친다는 점. 


지금 거의 마지막 기회고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로 만들어야 그나마 사람 살 곳이 된다고 했는데 날짜를 보니 2050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최대한 할 수 있는 건 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https://www.bbc.co.uk/news/science-environment-58130705


영국 와서 생긴 습관 몇 가지
1) 채식

살면서 베지테리언/비건을 거의 본 적이 없어서 (아마 한국에 산다면 대부분) 생소했는데,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에 채식이 도움이 된다는 건 아주 잘 알려진 사실이다. 베지테리언, 비건으로 살 수는 없어도 적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채식을 지향한다. 양고기는 원래 잘 안 먹으니까 점차 소고기를 줄이고, 가능하면 닭이나 생선으로, 또 어떤 날은 두부로 단백질을 섭취하기도. 라떼는 보통 오트 밀크로 먹는다. 평소에 우유를 아주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이건 쉽게 대체 가능했음.


나의 두부요리들

그리고 영국에 와서 좋은 건 베지테리언을 위한 식재료를 아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트에만 가도 non-dairy, meatfree 제품이 한가득. 또 코로나 이후 유행하는 밀키트 구독 서비스 중에 '비건 밀 키트'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출처: allplants

나도 요리하기 귀찮을 때를 대비해 구매해 봤는데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돼서 아주 간편. 의외로 맛도 괜찮았다! 또 밀키트 보낼 때 썼던 보냉재랑 박스는 업체로 다시 리턴 가능. 어디서 본 글인데 1명의 극단적인 채식주의자보다 10명, 100명이 온건하게 채식 지향을 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고. 채식이 힘들다면 고기 섭취를 이전보다 10-20%만 줄여보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건강 챙긴다 생각하고 하면 어렵지 않다. 또 여기는 베지테리언 메뉴가 식당마다 항상 있기 때문에 외식도 문제없는 걸로. 의외로 한식으로 채식 요리하면 정말 맛있는 게, 간장 양념이 들어가면 뭔들... 비건까지는 아니지만 닭/생선/계란 정도까지 먹는 베지테리언은 한식만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2) 플라스틱 빨대 못 본 지 한참

마트에서 놀랐던 게, 보통 편의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피 음료들 보면 항상 빨대가 붙어이었는데 여긴 그게 없다. 처음에는 불량인가 했는데 영국 정부에서 플라스틱 빨대 퇴출 정책을 실시해서 그렇다고. 그래서인지 카페에서도 종이 빨대가 대부분. (베트남에서도 의외로 빨대는 공심채, 쌀 빨대 등을 많이 써서 이건 익숙했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27085492&memberNo=33159364

--> 내가 작성한 베트남 노 플라스틱 운동 관련 포스트


빨대, 없거나 종이거나


3) 실리콘 지퍼백 & 클립, 그 외 주방도구


부끄럽게도 코로나 이후 집밥 비중이 높아지면서 일회용 지퍼백을 많이 썼었는데, 여기 와서는 실리콘 지퍼백 몇 개 사서 씻어 쓰고 있다. 특히 빵이나 대파같이 비닐 오염이 거의 되지 않는 물건들도 일회용을 썼던 게 죄책감이... 그리고 냉동식품이나 과자 같은 거 한 번 뜯고 다 소비하지 못했을 때 비닐백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케아에서 봉지 클립 사서 딱 싸매니까 비닐 낭비도 없고 좋다. 여기 와서 하늘하늘한 비닐백은 거의 안 쓴 듯. 


실리콘 지퍼백, 클립


그 외에도 음식 데울 때 쓰던 랩은 전자레인지용 뚜껑으로 대체했고, 비닐장갑은 진짜 불가피한 거 아니면 그냥 맨손으로 요리한다. 베트남에서는 생수 박스로 샀었는데 여긴 물이 깨끗하니까 브리타로, 물티슈 대신 행주로... 뭐 완벽하지는 않지만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려고 노력 중이다. 


4) 소비 줄이기

이건 좀 슬픈 이야기인데 영국에 와서 물가가 워낙 비싸다 보니 자연스레 쓸데없는 소비가 줄었다. (ㅠㅠ) 베트남에서는 거짓말 안 보태고 거의 매일 외식 아니면 배달을 했는데 여기서는 그렇게 하면 버는 돈 다 쓰게 될 수도... (심지어 그렇게 한 외식이나 배달이 그만큼 맛있지도 않....ㅠㅠ) 또 코로나 이후 외출이 줄어서 옷, 화장품 소비는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 여기서 산 옷이나 신발도 방수 재질 필수템 밖에 없네... 



출처: grind

요즘 여기서 받는 택배나 밀키트 보면 거의 생분해 가능한(biodegradable) 재질로 돼 있다. 또 네스프레소 호환 가능한 캡슐 중에도 퇴비화 가능한(compostable) 것들도 나오는 중. (* 네스프레소 캡슐은 재활용 프로그램 통해서 돌려보낼 수 있음) 사실 안 쓰고 덜 쓰는 게 제일 효과적이긴 한데.. 하루아침에 생활 습관 바꾸는 게 참 쉽지 않다.


프랑스에서는 비행시간이 너무 짧은 단거리 국내선 비행기는 금지시킬 수도 있다고 하던데 영국에서는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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