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매물 탐색을 시작하다
우리가 집을 사야겠다 마음먹은 건 작년 말에서 올해 초, 본격적으로 뷰잉에 나선 건 7월 말부터. 올해 상반기에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시세와 매물 특징을 매일 뉴스 보듯이 살폈다. 9월 중순인 지금은 약 10개 정도 뷰잉을 마치고 원하는 집에 오퍼를 넣어 구매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지역, 집 스타일(+ 크기), 예산
1) 지역 정하기
영국에 'Location, Location, Location'이라는 유명한 TV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만큼 부동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입지(위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 사는 것 다 똑같아서 투자용이 아니라 실거주 목적이라면 직장과의 거리, 인프라, 치안, 아이가 있다면 학군 등등 일단 정하면 거의 바뀌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남편은 주 1회 정도만 센트럴이 아닌 지역으로 출근하고, 나는 거의 재택근무 중이어서 센트럴과의 접근성은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런던 나가고 싶을 때 편히 나갈 수 있는 건 당연히 플러스 요소였기 때문에 초역세권까지는 아니어도 적당히 접근성이 있는 곳이 좋겠다 생각했다. 게다가 아직 우리는 영국에 얼마나 지낼지 모르는데 나중에 집을 잘 팔고 나갈 수 있는 출구 전략도 중요했다. 대박 상승률을 바라는 건 절대 아니지만 나가야 할 시점에 집이 팔리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매매든 렌트든 수요가 어느 정도는 보장되는 지역을 고르고 싶었다.
(뭐지 이 허무한 결론은?!)
거의 재택근무이긴 하지만 우리 둘 다 사무실까지 차로 3-40분 내외, 한인타운도 근처고 런던 센트럴까지 기차 타면 30분이면 도착. 너무 번잡하지도 않고 런던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전형적인 근교 동네다. 우리는 여기 살면서 이 동네의 분위기를 정말 좋아했고,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사는 곳 중심으로 매물을 살펴보기로 했다.
2) 집 스타일 (+ 크기)
한국과 가장 다른 점이 바로 이 것이다. 한국에서는 보통 집이라고 하면 아파트를 생각하지만, 여기는 다양한 종류의 집이 있고 각자 장단점이 확연하다. 영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집 유형은 단연 단독주택 (Detached House). 지금은 공동 주택에 살더라도 언젠가 은퇴하면 한적한 근교에 정원 딸린 단독주택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게 집 가격에 반영이 돼 있어서 공동주택(Flat)보다 하우스 가격이 같은 조건에 같은 면적이라고 해도 좀 더 비쌌다.
영국의 대표적인 집 종류는 다음과 같다.
* Flat: 주 출입구를 공유하는 공동주택 형태. 한국에서 흔히 '빌라', '아파트'라고 부르는 유형.
* Terraced House: 양 벽을 다른 집과 공유하는 주택
* Semi-Detached: 한쪽 벽을 이웃과 공유하는 주택
* Detached: 벽을 이웃과 공유하지 않는 단독 주택
뷰잉 하다가 보니 Flat과 House의 특징을 적절하게 섞은 Masionette (메조넷)이라는 집 유형도 발견. 이건 입구는 따로 쓰는데 한 건물을 반으로 나눠서 쓰는 걸 말한다. 하우스보다는 저렴한 가격에 정원을 쓰는 등 하우스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장점.
보통 주택이라고 하면 나를 포함한 한국 사람들은 '집 관리를 어떻게 하냐', '쥐나 벌레 들어오지 않을까', '치안은 괜찮은지 걱정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영국 사람들은 뚝딱뚝딱 집 고쳐가며 살거나 정원에서 가드닝 하는 재미를 느끼고 싶어 한다. 오히려 남이 관리해주는 플랏에서 자유를 느끼지 못해 답답해하는 게 신기한 포인트. 물론 요즘 젊은 세대에서는 컨시어지 있고 공용 시설 빵빵하게 잘 돼 있는 신식 플랏을 살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지만 몇 개월 레딧에서 눈팅한 결과 궁극적으로는 하우스를 가고 싶어 하는 게 대세.
집 종류와 함께 고려해야 할 건 집 크기다. 한국과 또 다른 점은 여기서는 면적이 아니라 침실 개수로 이야기한다. 물론 침실 개수가 3개여도 엄청 좁은 집 있고 2개 여도 큰 집 있다 보니 알아서 평면도를 잘 봐야 하는데 한국에서 25평, 33평에 익숙한 나는 처음에 이게 엄청 귀찮게 느껴졌다. 다행히 부동산 매물 보는 사이트에 평면도에 전용면적이 나와있어서 가늠하는 게 크게 어렵지는 않았던 걸로.
하우스는 보통 2층집에 정원이 있어서 실내 면적이 넓지 않아도 쓸 수 있는 공간이 이래저래 나올 수 있고, 플랏은 splited floor라고 언급하지 않는 이상 실내 공간은 대부분 계단 없이 한 층만 쓴다. 한국은 계단식 아파트가 대부분이라 한 층에 2집만 쓰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한 층에 집이 2개 있을 수도 있고, 3개 있을 수도 있고, 복도식처럼 많을 수도 있고, 엘리베이터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그야말로 천차만별. 대신 신식 플랏이 아닌 이상 일반적인 동네에서 아주 높은 건물은 찾기 힘들다. 3층 이내의 건물은 엘리베이터가 없을 가능성이 높음.
참, 그리고 한국과 또 다른 점은 플랏인 경우 계약기간이 아주 긴 Leasehold인 경우가 많고, 관리비(Service charge)와 Ground rent가 있어서 이게 매년 오를 수 있다는 게 함정. 심지어 어떤 플랏은 렌트가 아니라 매매인데도 반려동물 입주가 안 되는 경우도 있었음. 하우스는 보통 Freehold라서 모든 게 주인이 하기 나름이다.
근 1년간 레딧과 페이스북 그룹을 눈팅해 본 결과, 하우스와 플랏을 선택하는 기준은 보통 다음과 같다. 보통 아이가 있는 가족인 경우 하우스를, 직장인 1인 혹은 2인 가구인 경우 플랏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하우스
* 가드닝, 집 꾸미기에 관심이 많다.
* Freehold로 집을 소유하고 싶다. (= 집 관리는 내가 알아서 하고 싶다, 이유 없이 오르는 관리비나 ground rent를 이해할 수 없다, 100% 자유롭게 집을 쓰고 싶다.)
* 남들과 입구를 공유하고 싶지 않다. 이웃은 옆집에 있는 걸로 충분하다.
* 층간소음을 최소화하고 싶다. (= 나도 내 집에서 층간소음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지내고 싶다.)
플랏
* 집 관리나 치안에 굳이 신경을 쓰고 싶지 않다. (= 돈을 내더라도 매니지먼트에서 알아서 해줬으면 좋겠다.)
* 보통 같은 조건이라고 하면 하우스보다 약간 저렴하다.
* 층간소음, 이웃은 어차피 복불복이다. (= 공동생활이 별로 어렵지 않다.)
당연히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하우스나 플랏도 있을 수 있지만, 대략 나누면 특징이 이렇다는 것. 그리고 나는 런던 근교에 있는 우리 동네만 본 거라 영국 내 다른 지역은 또 다른 특징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
3) 예산
일생일대의 지출이다 보니 이제 또 중요한 건 바로 예산. 보통 시세(호가)는 온라인 사이트 Rightmove나 Zoopla를 보면 대략 감이 온다. 역시 부동산 가격은 매우 정직해서 생각보다 저렴한데? 싶으면 반드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앞서 말한 지역과 집 크기에 맞물려서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마치 게임 캐릭터 능력치 보듯이 미묘한 차이를 잘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예산을 정할 때 지금 당장 들고 있는 현금도 중요하지만 대출 가능 금액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 평범한 사람이라면 전액 현금으로 집을 구매할 수는 없을 테니 대출(Mortgage)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경우 영국 거주한 지 1년 반 정도 지났고, 남편은 영국에 소득이 있는 직장인이기 때문에 대출 신청이 가능했다. 물론 급여와 신용도 등등 고려해서 대출 가능 금액은 또 달라지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Mortgage Advisor나 주거래 은행에 물어보는 것이 필수.
온라인 사이트에서 적당히 제공하는 Mortgage Caculator를 쓰면 대출 얼마 + 이율 얼마 + 상환기간 얼마 넣어서 한 달 Repayment 금액을 아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여러 변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본인이 얼마나 주거비로 쓸 수 있는지를 잘 생각해야 한다. 특히 요즘은 금리 인상 시기라 월 상환 금액이 올라갈 수 있다는 걸 잘 생각해야 함. (* 대출 신청할 때 고정이율 기간(fixed term)을 정할 수 있는데 이건 나중에 모기지 관련 내용 이야기할 때 다시...)
나는 코로나 이후 영국에 와서 이전에 어땠는지 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내 경험에 따르면 한국과 다르게 부동산에 찾아가서 (렌트든 매매든) 상담을 받지 않는다. 우선 Rightmove나 Zoopla에 올라온 매물을 보고 전화해서 비슷한 매물을 추천해 달라고 하는 게 일반적. 그리고 부동산에서는 이런 플랫폼에 매물을 올리기 전에 잠재 고객에게 먼저 연락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일단 기본 정보를 넘기고 그들의 DB에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부동산 몇 군데와 통화를 해 보니 지역, 집 종류, 예산을 가장 먼저 물어봤다. 그 후 뷰잉 스케줄을 잡고 집을 꼼꼼히 살펴보기만 하면 다 끝인 줄 알았는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