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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매거진은 영국에서의 임신, 출산, 육아 관련 내용들을 담을 예정이다. 실제 타임라인과 맞추면 좋겠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출산을 25일 정도 앞둔 만삭 임산부이고, 더 정신없어지기 전에 최대한 지난 9-10개월의 여정을 기록해 볼까 한다.
너희 부부는 딩크 아니었어?
우리 부부는 결혼을 꽤(?) 일찍 한 편이다. 8년 전 내가 만 나이 (한국나이 폐지됐으니 이제 만 나이로 표기) 28살, 남편이 29살 일 때 했으니 그 당시에도 일찍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정도. 연애 기간 2년 남짓, 결혼 후에는 둘 다 직장 생활하면서 연애와는 또 다른 신혼 생활을 즐겼다. 서로에게 새로운 여행 파트너가 생겨서인지 정말 신나게 여행을 다녔고 (일 년에 한 번 장거리 여행은 꼭 갔고 국내 여행 포함한 단거리 여행은 셀 수 없음, 얼마나 여행을 많이 다녔으면 결혼 2년 만에 모닝캄 진입...), 전셋집이었지만 집 꾸미기도 하고, 남들처럼 가끔은 투닥대기도 하면서 지냈다.
참, 그 사이 오랜 시간 고민하던 반려고양이도 들이고!
아주 평범했던 우리의 삶에 큰 변화가 온 건 베트남으로의 이주. 이게 결혼 3년 차에 있었던 일인데, 100% 우리의 의지가 아닌 상태에서 갑자기 해외 이주와 나의 퇴사를 결정하면서 한동안 가족계획은 꿈도 꾸지 못했다. 아니, 사치라고 느껴졌던 것 같다. 급변하는 상황 속에 문제가 생기면 뭘 처리하느라 정신없었고 앞날은 도저히 예측이 되지 않았다. 다들 '베트남에 언제까지 있을 거야?'라고 물었지만 나조차도 가늠이 안 되는 상황. 특히 내가 대학 졸업 후 쉬지 않고 해 왔던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는 과정에서 마음을 다잡는 게 꽤 힘들었다.
그렇다고 한국에 돌아갈 기회가 있다면 아기를 낳을 계획이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을 돌이켜 봤을 때 아기를 낳는 것 그 자체로도 우리는 결심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아기 낳을 계획이 있냐'라고 물었을 때 '아이를 아예 낳지 않는 걸 0, 한 아이를 낳는 걸 1이라고 봤을 때 내 마음은 지금 0.3에서 0.5 정도다'라고 말할 정도로 확신 없이 우리는 베트남에서 2년 반을 보냈고, 그러다 또다시 해외 이주 - 영국으로 오게 됐다.
핸디캡으로 느껴지던 임신, 출산, 육아
내가 한국에서 다녔던 회사는 국내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육아 지원 제도가 잘 돼 있는 곳이었다. 일단 직장 어린이집이 있고 연차 사용이 자유로웠으며,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는 게 어렵지 않고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도 일을 할 시스템이 뒷받침 돼 있었다. (당시 코로나 전이라 '재택근무'로 명시된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사무실 밖에서 모바일이나 랩탑으로 일하는 게 자연스러웠음) 그리고 남편이 다녔던 회사도 직장 어린이집만 제외하면 마찬가지.
그럼에도 나는 두려웠다. 그때는 뭐라 설명할 수 없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임신, 출산, 육아가 핸디캡으로 느껴졌다는 말이 정확하다. 우리 부부가 특별히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거나, 야근을 엄청 심하게 하는 직종이라 워라밸이 무너진 것도 아니고, 육아휴직 후 복직이 안 되는 직종도 아니었는데 아기가 생기면 지금 누리는 걸 다 포기하고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특히 나는 내가 하던 일에 애정을 쏟는 편이었는데 아기를 낳는다면 출산 전과 똑같은 퍼포먼스를 낼 수 없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거기다 온라인상에서 끝없이 재생산되는 '맘충' 에피소드나 현실에서 아이가 환영받지 못하는 장면 - 카페에서 아이가 울거나, 사람 많은 지하철에 유아차 들어올 때 사람들이 보내는 시선 - 을 볼 때마다 (부끄럽게도) 나는 외면했고, 본능적으로 나는 그 불편한 상황을 맞닥뜨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기 낳는 데 생각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롤백도 안되고 인생이 통째로 뒤바뀌는 빅 이벤트인데 우리는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둘 다 극 현실주의자...) 그만큼 확고하게 아이를 낳는 것도, 낳지 않는 것도 당연한 게 아니었고 우리 부부는 무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많은 대화를 했다.
내가 한국을 떠난 게 2018년인데 그때부터 이미 출생률이 1.0 미만이었던 걸 보면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나 보다. 실제로 내 지인들 중 아이 없는 부부의 비율은 매우 높은 편이니...
새로운 파티원을 영입하려고요
그러던 중, 영국에 와서 우리는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두 번째 해외이주라 베트남에서보다는 좀 여유가 있었고, 어딜 가나 유아차와 아이들은 환영받았다. 특히 대중교통 탈 때 유아차가 들어오면 다들 도와주고 기다려주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건 휠체어도 마찬가지) 영국에서 여전히 나는 무소속이었지만 베트남에서의 프리랜서 경험, 코로나 이후 자연스러워진 재택/원격근무 환경과 영국 내에서 '나이'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내게 용기를 줬다.
가장 큰 이유는 이제까지 사람 둘, 고양이 하나가 지내면서 보낸 즐거운 시간을 새로운 파티원과 즐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 돈 많이 벌어서 집 사고 차 사고 하는 것보다 같이 여행다니고 고양이랑 빈둥거리고, 맛있는 거 나눠먹고 그런 게 행복 아닐까 하는 생각. 그리고 이제까지의 경험을 돌이켜보며 우리 둘이 '못할 것도 없지'라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지난날 나의 두려움과 비교하면 돈이나 편의성보다 데이터로 한 번에 설명하기는 힘든 주변 환경, 그리고 우리의 마음가짐이 파티원 영입을 결심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우리의 나이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그건 큰 고려사항은 아니었음.)
그렇게 우리 가족에게 새 파티원이 생겼고,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여정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