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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여행의 끝, 이탈리아 로마

정신없었던 바티칸과 로마 시내 투어

by 앨리스

한참 남아있던 것 같았던 서유럽 패키지여행도 어느덧 막바지에 다다랐다. 전날 피렌체에서 하루를 보냈던 우리는 그다음 날 오전 로마로 이동하고 바티칸을 구경한 다음 마지막 날은 공항에 가기 직전까지 로마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스케줄이었다. 패키지여행의 장점이 이럴 때 또 빛을 발하는구나 싶었다. 여행을 끝내는 마지막 날까지 큰 어려움 없이 여행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 내가 따로 시간을 조율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하지만 이렇게 편한 줄만 알았던 로마 여행은 생각보다 정신없이 흘러갔다.




보통 바티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천지창조'일 것이다. 나도 그것을 기대했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인 만큼 엄숙한 분위기에서 감상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여행사에서 미리 투어 예약을 다 해 두었음에도, 우리는 입구 앞에서 2-30분가량을 기다려야만 했다. (바티칸 투어를 위해서는 현지 가이드 외에도 바티칸에 들어갈 자격이 되는 인솔자와 함께 동행해야 한다.)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시점은 11월이지만 당시 로마는 6월 마지막 날, 폭염까지는 아니지만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였다. (...)


바티칸 시국을 둘러싼 높은 담벼락 옆에 서서 입장을 기다리다가 드디어 시원한 실내로 들어가나 싶었는데, 바티칸 시국의 인구밀도는 정말 엄청났다.

20170630_150012.jpg 이 곳이 크리스마스 이브 명동인가, 바티칸인가

우리는 저 형광 노란색 깃발을 따라가라는 가이드를 받았는데, 사진 속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작품을 볼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걸음을 늦출 수도, 빨리 앞서 갈 수도 없는 상황. 그나마 기술이 발전해서 수신기가 있으니 가이드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 하나는 다행이었다. 실내에 에어컨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인구밀도가 너무 높다 보니 그냥 더웠다.


많은 사람들 속에 휩쓸려가다가 전 세계 사람들이 기대해 마지않는 '천지창조'를 앞두고 나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가이드 말로는 시스티나 성당 안에서는 사진은 안되고, 말을 해서도 안된다고 했다. 엄청나게 높은 곳에 그려져 있는 천장화인데 사진을 못 찍는다니... 그리고 말은 왜 못 하게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당 안이니 엄숙해야 하는 건 알지만.


이 곳의 규칙이니 어쩔 수 없이 따라야지 하면서 천지창조를 보는데 너무 높이 있어서 그림의 디테일은 볼 수가 없는 정도였다. 찬찬히 그림을 보고 싶다면 그냥 인터넷으로 보는 게 낫다. 두리번 두리번하면서 사진을 보고 있던 순간, 성당 안에 있던 가드가 갑자기 한 사람을 불러다 놓고 사진 찍지 않았냐며 카메라를 확인했다. 그다음 인솔한 가이드가 누구냐고 하더니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봤다. 나중에 물어보니 관광객이 사진을 찍으면 그 사람을 인솔한 가이드 라이센스를 박탈한다고 했다. 우리 그룹에서도 한 분이 사진을 찍다가 가드한테 걸렸는데 영어를 못하셔서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 가이드가 누구냐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고 눈치를 챈 가이드가 우리 그룹 멤버들을 조용히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안내했다. 다들 눈 앞에서 사진 촬영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고 난 순간, 모두 카메라를 내려놓고 시스티나 성당을 빠져나왔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관광지다 보니 가이드가 엄격해지는 것 같은데, 그 가이드가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불미스러운 일에 엮이지 않으려면 최대한 가이드에 따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20170630_142759.jpg 드디어 탈출...했는데도 사람이 많다

시스티나 성당 뒤에 몇 군데를 더 보고 나서 드디어 뻥 뚫린 공간으로 빠져나왔다. 사실 그 안에서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도 힘들고, 멈출 수가 없으니 사진 찍을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작품에 대한 공부는 따로 시간을 내서 찬찬히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20170630_154939.jpg 피에타
20170630_155047.jpg 상대적으로 시원시원해 보였던 베드로 대성당

바로 옆에 베드로 대성당이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피에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좁고 사람 많은 곳에 있다가 베드로 대성당 안에 들어서니 시원시원한 구조에 답답했던 마음이 좀 해소되는 듯했다. 이전에 다른 도시들에서 봤던 성당보다는 규모가 확실히 더 압도적이다. 과연 바티칸의 성당답다.


20170630_160456.jpg 바티칸 광장

바티칸 광장은 위에서 보면 열쇠 모양이라고 한다. 그리고 광장을 둘러싼 큰 기둥들이 있는데, 어느 지점에 서면 4겹의 기둥이 완벽하게 가려져서 1개로 보이는 게 정말 신기했다. 크레인이 없던 시절인데 과연 저 기둥들을 어떻게 세웠을까, 컴퓨터가 없었는데 어떻게 완벽한 원을 그리고 계산했을까.


그리고 특별한 날에는 저 바티칸 광장이 신도들로 꽉 찬다는 얘기를 들었다. (바티칸 하면 TV에 종종 나오기도...) 나는 아무 종교도 믿지 않아서 그런지, 무엇이 사람들을 이 곳으로 이끄는지 궁금해졌다.


분명 가장 발이 편한 운동화를 신고 왔는데, 이상하게 발이 예전보다 더 아픈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저녁이 되기 전인데도 엄청 피곤했다. 알고 보니 딱딱한 대리석 바닥만 계속 걷다 보니 쿠션감이 없어서 발이 더 피곤해진 것이다. 이 날은 바티칸에서의 일정을 끝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이지만 비행기 시간이 늦은 저녁이라 우리에게는 또 로마 시내를 관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자유여행이었다면 스케줄을 효율적으로 짜느라 (짐, 동선...) 머리가 아팠을 테지만, 우리에게는 큰 버스와 능수능란한 가이드가 있다.


20170701_084001.jpg 콜로세움 티켓
20170701_090508.jpg 콜로세움 내부, 생각보다 정말 크다

아침 일찍 향한 곳은 콜로세움이었다. 로마 자체에 관광객이 워낙 많기 때문에, 효율적인 이동을 위해서는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콜로세움 티켓 오피스가 열기 전부터 그곳으로 향했다. (....) 오피스가 열리자마자 티켓팅을 하고 콜로세움으로 입장!


잘 알다시피 콜로세움은 한쪽이 무너져있는데, 오히려 이 불완전함이 더 인상적이었다. 완전한 원 모양이었다면 그렇게 기억에 남지 않았을 듯한 모습. 내 예상보다 콜로세움은 훨씬 컸고, 그래서 한 바퀴를 다 도는 게 쉽지는 않았다.


또 콜로세움 하니 어릴 때 봤던 영화 '글래디에이터'가 떠올랐다. 물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검투 씬보다는 (잔인해서 제대로 두 눈 뜨고 보지를 못했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청보리밭을 훑으며 걷는 장면. 이 곳에 서 있으니 용기를 내서(!) 글래디에이터를 다시 보고 싶어 졌다.


20170701_095226.jpg 나에게 이득인 남편 선물

콜로세움에서 산 기념품은 이탈리아에서만 살 수 있을 것 같은 150가지 파스타 레시피 책! 요리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딱 맞는 선물이다. (그나저나 지금 11월인데 저 중 딱 1개 했다. 나머지 149개는 언제...)


20170701_104043.jpg 끼룩끼룩, 뭘 봐

콜로세움에서 나와 매우 낮은 언덕을 지나면 수천 년 전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는 '포로 로마노'가 나온다. 지금의 도시처럼 각자의 역할을 하는 기관 건물들이 모여있는 게 신기했다. 그때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았을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그다음부터는 벤츠를 타고 시내 투어를 한다고 했다. 벤츠라고 해서 승용차인 줄 알았더니 6명 정도 탈 수 있는 밴이었다. 복잡하고 길이 좁은 로마 시내를 큰 버스로 다니기도 힘드니, 구석구석 벤츠가 주요 명소에 데려다주고 잠깐 구경한 다음 다시 차에 타는 투어였다. 워낙 명소가 많은 로마라서 이런 관광상품도 생기는구나.


20170701_130732.jpg 빛이 내리쬐는 판테온

벤츠를 타고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판테온이었다. 판테온은 기둥이 없는(!) 건물인데 돔 지붕 위에 구멍이 뚫려있는 신기한 모양을 하고 있다. 저 커다란 돔을 지탱하기 위에 벽이 곧 기둥이 된, 그런 건물이었다. 핀 조명이 내리 꽂히는 것처럼 햇빛이 자연스레 판테온 구멍 안으로 들어오는데, 이 자체로 시계 역할을 한다고도 했다. 우리가 갔던 때는 하지 지난 직후, 한낮이라 거의 정중앙에 들어오는 빛을 볼 수 있었다.


20170701_134229(0).jpg 아름답게 빛나는 트레비 분수

그다음 향한 곳은 로마 하면 떠오르는 트레비 분수였다. 이 분수는 하얀 대리석과 푸른 물빛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정말 엄청나게 많은 관광객들이 분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거의 발 디딜 틈 없을 정도인 데다가, 소매치기가 극성이라는 말에 맘 편히 사진을 찍을만한 공간은 아니었다. 다시 로마에 오게 해달라는 마음을 담아 동전을 던지고, 우리는 빠르게 이 곳을 빠져나왔다. (포앵 제로의 효험처럼, 트레비 분수도 효험이 있기를!)


20170701_154309.jpg 진실의 입아, 알려줘!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와서 유명한 진실의 입. 여기는 사람이 너무 붐벼서 손을 집어넣어 보지는 못하고 사진만 찍었다. 이럴 때 참 스토리텔링이 대단하다는 걸 느낀다. 그냥 바닥에 있던 맨홀 뚜껑(....)인데 거짓말을 하면 손가락이 잘린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덧붙이니 사람들이 너도나도 시험해보려고 줄을 서다니. 정작 나도 사람들이 없었다면 한 번 손을 집어넣어 봤을 것 같다.


20170701_160523.jpg 앙증맞은 피아트 네 대

열쇠 구멍으로 정원을 볼 수 있다는 어떤 언덕에 갔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기다리는 사이 앙증맞은 피아트 자동차 네 대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성인들이 앉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작은 자동차였는데 용케도 저 안에서 두어 명씩 나오더라는 (....) 강렬한 색감에 귀여운 모습까지. 덕분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이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벤츠 투어는 짧은 시간에 여러 곳을 갔던 거라 제대로 된 사진은 남기지 못했지만 스페인 광장, 캄파돌리오 언덕, 베네치아 광장, 대전차 경기장 등 다양한 곳을 들렀다. 우리 모녀가 사랑해 마지않는 자유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서 힘들긴 했어도, 자유여행이면 2-3일 걸려서 봐야 할 곳들을 한 번에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우리는 오늘 한국으로 가는 날인데!



대전차 경기장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로마를 떠나 공항으로 향했다. 보통 여행의 끝은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순간 까지지만, 앞서 파리 공항에 합류했던 것처럼 나는 엄마와 다른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엄마가 타는 비행기와 내가 탈 비행기의 출발 시간이 거의 비슷해서 공항까지는 함께 갈 수 있었다는 점! 그래서 버스를 타고 편하게 공항에 가고, 복잡한 택스 리펀 신청도 가이드를 따라 하기만 하면 됐다.


짐까지 다 부치고 가벼운 몸으로 공항 터미널 들어가는 길. 아쉽지만 우리 모녀의 비행기는 각자 다른 터미널에서 출발하다 보니 터미널이 갈라지는 길에서 작별을 해야 했다. (물론 출발하는 시간이 비슷하니 도착하는 시간도 비슷해서 인천공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이제 걱정할 일이 없는데도 엄마만 다른 터미널로 보내자니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꼭 저 화살표만 따라가라고 신신당부했던 게 떠오른다. 가이드도 있고 카톡 메신저도 다 되는데!


이렇게 우리 모녀의 첫 유럽여행은 별 탈 없이 잘 끝났다. 이 여행이 우리 모녀에게 준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나는 패키지여행을 찬양하는 사람이 됐고, 엄마는 기회만 되면 여행을 꿈꾸는 자유 영혼이 되어있었다. 근 8년 간의 노하우를 담아 엄마에게 '자유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보내줬는데 엄마는 그중에서도 '셀카봉'을 가장 마음에 들어했다.


엄마의 다음 유럽은 어디가 될지 나도 기대된다. 여행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에필로그가 아직 남아있다! (정말 올해 내에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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