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처럼 꽃 같았던 도시
이탈리아에서 세 번째로 만날 도시는 피렌체였다. 이 도시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배경이 된 이후 더욱 유명해졌다는 얘기는 들었다. 우리 엄마는 영화를 떠올리며 피렌체 여행에 대한 큰 기대감을 보였다. 나는 소설도, 영화도 보지 않아 공감은 할 수 없었지만...
피렌체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피렌체 대성당이었다. 피렌체 하면 떠오르는 두오모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피렌체 대성당의 정식 이름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로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이라고 한다. 과연 이름만큼이나 화려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밀라노에서 봤던 두오모는 절제된 느낌이었는데, 피렌체의 대성당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장식을 넣은 듯한 느낌. 이 날 날씨가 매우 맑았는데, 맨눈으로는 성당을 올려다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부셨다.
두오모를 가까이서 보려면 저 종탑을 올라가면 된다고 했는데, 뱅글뱅글 계단을 걸어 올라갈 생각을 하니 생각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 그룹에 있던 다른 모녀는 자유시간에 저 종탑을 올라갔다 왔다고! 우리 모녀와는 사뭇 다른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피렌체의 상징인 두오모는 성당 뒤쪽으로 가면 더 잘 볼 수 있다. 가이드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성당을 짓고 두오모는 나중에 올렸다고 한다. 이렇게 큰 두오모를 건물 위에다 올리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푸른 하늘과 붉은 벽돌의 색감이 참 잘 어울렸다.
피렌체에서는 자유시간이 1시간 넘게 있었다. 늘 그랬듯, 짧은 자유시간이지만 우리 모녀에게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자유여행객들처럼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겨보자고 했다. 마침 두오모가 잘 보이는 자리에 카페가 있었고, 커다란 성당 벽이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었다. 오래간만에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한동안 두오모를 올려다보았다. 소매치기만 아니었다면 더 편안한 느낌이었을 텐데, 현실은 둘 다 가방을 꼭 끌어안고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커피로 더위를 식히고 이번 유럽 여행 중 가장 길고 부지런한 쇼핑 시간이 시작됐다. 피렌체는 가죽 공예가 유명해서 좋은 질의 가죽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보이는 곳마다 가죽 제품들이 있었고 지갑 같은 작은 소품부터 가방까지, 예쁜 것들이 참 많았다. 엄마는 가방을 하나 사고 싶어 했는데 쇼핑 거리에 있는 모든 가죽 가방 가게를 다 들어갔다 나왔던 것 같다. 마침내! 자유시간이 거의 끝나갈 때 즈음 마음에 쏙 드는 가방을 발견했는데, 부드러운 가죽 재질에 수납공간도 많고 가격도 착한 가방이었다. 시간이 더 많았다면 우리의 지갑은 텅텅 비었을 것이다. (아, 나도 하나 살 걸 그랬나.)
이탈리아는 관광대국인만큼 지나는 곳마다 기념품 가게들이 있었는데, 피렌체의 기념품 가게들이 유독 화려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딱히 쓸 데도 없고 집에 두면 예쁜 쓰레기(!)가 될 걸 뻔히 알지만 화려한 가면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한동안 장식품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참 눈이 즐거웠다.
피렌체에서의 자유시간과 패키지 여행객들이 들러야만 하는 쇼핑 스팟을 지나 우리는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향했다. 시내와 꽤 떨어져 있는 곳이었는데, 우리는 편안하게 버스를 타고 언덕으로 향했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갈 무렵이라 그랬는지 강렬한 햇살을 받은 피렌체는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스틸컷만 봤던 나지만 그 영화가 절로 떠오르는 풍경이었다.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지만 하루가 저물어갈 무렵이라 시원한 바람이 불고 상쾌한 공기가 가득 차는 느낌. 이 언덕은 꽃과 같은 도시 피렌체를 느끼기 위해 꼭 들러야만 하는 곳이었다.
이 곳에서 찍은 내 사진들을 다시 보니 표정이 참 자연스럽고 행복해 보인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