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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뒤에 더욱 아름다웠던 베네치아의 풍경

왜 이렇게 관광객이 많이 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by 앨리스

유럽 여행 중 가장 인상깊었던 곳 하나를 꼽자면 베네치아를 빼놓을 수 없다. 워낙 유명한 곳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갔던 그 날 변화무쌍한 날씨를 모두 경험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비가 많이 내려서 곤돌라를 못 타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날씨가 다시 맑아져서 아름다운 베네치아의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20170628_140441.jpg 내가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 물의 도시 베네치아
20170628_141637.jpg 다리 이름을 들었는데 뭐였더라...? -> 탄식의 다리!
20170628_142500.jpg (수정) 화려한 산마르코 대성당, 안을 보고 싶었지만....


베네치아하면 어릴 때 컴퓨터에 깔려있던 타자게임이 떠오른다. 위에서 단어가 떨어지면 빨리 타이핑을 해서 없애야하는데, 내가 없애지 못한채로 바닥에 떨어지면 물이 점점 차오르는 그런 게임이었다. 그 게임 컨셉처럼, 이 도시는 찰랑거리는 물 위에 있었다. 그리고 차로 다닐 수 없기 때문에 걸어다녀야 하는데, 이름도 다 기억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다리들이 있다. 차 대신에 수상택시나 좁고 긴 모양의 곤돌라를 타고 골목길(?)을 누빌 수 있다.


또 베네치아는 그 도시 이름 자체로 '물의 도시' 대명사가 되었는데, XXX의 베네치아라는 별명을 지닌 도시들을 꽤 많이 봐왔다. (북유럽의 베네치아 스톡홀름, 동양의 베네치아 쑤저우...) 처음에는 왜 여기가 이렇게 유명한 지 의문이었으나 정작 이 곳에 와 보니, 베네치아가 이런 대접을 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알록달록한 건물들에는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고, 푸른 물빛은 강렬한 햇빛을 받아 더욱 반짝거린다. 거기다 지나가다보면 곤돌라 위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노래들이기도 하고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마치 음원을 틀어놓은 것 같기도 했다.


20170628_155125.jpg 비 내리고 나니 침수...

낭만에 젖어서 베네치아를 걷다가, 우리 팀은 곤돌라 탑승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비가 한두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금방 그치겠지 싶었는데 나중에는 우산으로도 막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그래서 황급히 비닐 우비를 샀는데 가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꽤 비싼 돈을 주고 샀던 것 같다. 캐리어 안에 비닐 우비가 있었건만... 갑자기 몰아친 비바람에 곤돌라는 운행이 잠시 중단됐고, 그 사이 우리 팀은 어쩔 수 없이(?) 자유시간을 가졌다.


우리 모녀는 자유시간 1분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며, 비도 피할 겸 광장 주변의 가게에서 신나게 쇼핑을 했다. 베네치아 풍경이 그려진 실크 스카프들이 저렴한 가격에 우리를 유혹하길래 나는 엄마를 부추겨서 선물용으로도 좋겠다며 득템을 종용했다. 스카프는 원래 다다익선이니까!


사진에서도 보이는 것처럼 갑자기 내린 비에 이 도시는 속수무책이었다. 배수시설이 아예 안 되어 있는 건가 싶을 정도였는데, 순식간에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다. 우리는 다행히 샌들을 신고 있어서 그냥 물 위를 걸어다녔는데 양말에 운동화 신고 온 사람들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중에 사진을 찾아보니 겨울의 베네치아에는 비가 엄청나게 많이 내려서 아예 긴 장화를 신고다닌다고 한다. 이번에는 그나마 금방 비가 그쳐서 다행이었다.


20170628_155319.jpg (수정)물 위에 떠있는 것 같은 산마르코대성당
20170628_161759.jpg 비 그치고 나니 새파란 하늘
20170628_163513.jpg 곤돌라 타러 가세

드디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곤돌라를 타는 순간이었다. 자유여행 중이었다면 베네치아에 더 머무르면서 내일이나 모레나 곤돌라를 타면 되겠지만 패키지 여행객들에게는 베네치아는 지금 이 순간에만 즐길 수 있다. 그래서인지 맑게 갠 하늘이 더욱 고마웠고, 베네치아의 풍경이 더 인상깊게 남았다.


비가 그친 직후의 베네치아는 더욱 아름다웠다. 도시를 둘러싼 색채는 흐린 날보다 훨씬 강렬해졌고, 비에 젖은 건물들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20170628_164536.jpg 곤돌라 교통체증

곤돌라 타고 있던 동안 좋았던 건 베네치아의 풍경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는 것도 있었지만, 바로 옆 배에서 노래를 불러주는 게 포인트였다. 그 순간에는 현실을 잊고 있던 것 같다. 찰랑거리는 물 위에서, 따뜻한 햇빛 아래 감미로운 노래까지. 우리 엄마는 이 날 찍은 동영상을 여러 번 돌려보며 베네치아의 추억을 되새겼다.


곤돌라에서 내리고 나서, 그 다음에는 수상택시를 타고서 베네치아를 빠져나왔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베네치아 안에서는 차를 타고 다닐 수 없는 대신 수상택시나 수상버스(!)가 있다고 했다. 그 설명을 듣고서 자세히 살펴보니 버스정류장이 곳곳에 있었다.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니 배를 대중교통으로 타고 다니는 기분은 어떤걸까 궁금해졌다.


20170628_171624.jpg 수상택시타고 베네치아에서 나오는 길
20170628_171840.jpg 어딘가에 있던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그리고 베네치아는 물 위에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1층은 쓰지 않는다고 했다. 물이 차오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상업시설이나 거주시설 전부 2층부터 있다는 점. 그럼 물이 찼다가 빠지다가 할 텐데 건물에 습기가 엄청나지 않으려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베네치아에서 여유가 있으면 운하가 보이는 숙소에 묵거나, 다른 섬을 다녀올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이 순간만 주어졌으니... 현재에 충실하기로 했다.



베네치아 여행의 하이라이트, 곤돌라

이번 베네치아 여행은 많은 인생샷을 남겼다. 중간에 날씨가 별로이긴 했지만, 비 온 뒤 베네치아가 준 행복감이 엄청났던 듯. 영상을 다시 보니 그 때의 기분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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