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일기, 2월 1일
[사진설명] 고양이 발톱 깎다가 남은 영광의(?) 상처.
우리 집 고양이는 싫을 때 도망가는 법이 없다. 나를 만나기 전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보통의 고양이들이 싫어하는 것 (발톱 깎기, 양치질 하기, 목욕하기, 약 먹이기 등)을 하면 도망가기는커녕 오히려 반항하는 편이다. 그 과정에서 물거나 할퀴는 건 기본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얌전히 집사 무릎 위에 앉아 손발을 맡기고 발톱 깎는 고양이들을 보면 유니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뭔가 가상의 고양이 같기도 하고...
나의 육묘 라이프를 얘기하면 주변 사람들이 아기 키우는 거랑 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양치질해야 하는데 도망가는 아이, 씻고 자야 하는데 계속 놀자고 하는 아이, 밥 먹어야 할 때는 안 먹고 간식만 찾는 아이라든지... 몇 가지 고민을 늘어놓고 보면 부모들이 하는 고민이나 내가 하는 고민이나 결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집 고양이는 흔히 말하는 '캣초딩' 시기를 이미 지난 다음에 우리 집에 와서 스케일 크게 사고를 치지는 않는다. 가끔 얘기를 들어보면 아무 데나 올라가서 물건 떨어뜨리거나, 전선 뜯는 일들도 많던데 의젓한 성묘 도미는 물건을 깨부수는 편은 아니다. 대신 의사표현을 들어줄 만한 상대에게만 한다는 게 문제다. 보통 밥을 남편이 주니까 배고플 때는 남편한테 반항하듯이 '야옹!!' 하고 나는 보통 싫어하는 짓(...)을 자주 하니까 뒷발로 밀거나 물거나 할퀴거나 등등. 쓰고 보니까 우리 집 고양이가 버릇이 없어진 건 원래 멘탈이 강한 것도 있지만 어쨌든 집사 때문인 것 같다. 오냐오냐해서 키우니까 점점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더 반항하는 것일지도.
부모와 마찬가지로 나도 좌충우돌하면서 육묘를 하고 있다. 우리 엄마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집사가 처음이니까. 같이 산다는 건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맞춰가는 거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제발 발톱 좀 얌전히 깎으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