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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부커 Dec 14. 2024

학교의 숨은 엔진-교육행정직

2장.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과 가치

“행정실은 왜 이렇게 바빠요? 겨울 방학 아닌가요?”

겨울방학 중 학교를 방문한 학부모가 행정실에 들어와 한 말이다.
텅 빈 교실과 복도를 보고 그는 학교도 쉬는 곳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서류를 정리하며 대답했다.
“겨울방학은 학생들에겐 휴식이지만, 저희에겐 전쟁 같은 시즌이에요.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는다.

“전쟁 같은 시즌이라뇨? 

내년 1년 치 학교 예산을 편성하고 동시에 올해 예산 집행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고 정리해야 하거든요.”

교육청에 각종 사업정산보고도 해야되고, 목적사업비 반납,  불용률 최소화를 위한 결산 추경작업, 재정 집행률 점검, 교직원 연말정산 등 정말 1년중 가장 바쁜 시기이죠. 

교육행정직으로 10년 이상을 일했는데도 아직도 겨울방학 시기는 적응이 안됩니다. 살이 쭉쭉 빠지죠.

또한 겨울방학에는 학교에서 직접하기 힘든 석면공사, 내진보강공사, 이중창교체공사, 옥상 방수공사 등 

큰 공사들을 교육청에서 발주해서 대부분의 학교가 개학하는 3월까지는 끝내야 학생들의 교육활동에 지장이 없게 되죠.  

나는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학교는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눈에 잘 보이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거예요.
학생들이 배우는 공간, 교사가 가르치는 환경은
그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하루를 만드는 손길들

그날 오후, 나는 시설 담당 직원과 함께 운동장을 돌고 있었다.
곧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학교 곳곳을 점검하는 중이었다.
“나무가 흔들리는 걸 보니 강풍에 쓰러질 수도 있겠어요.”
시설 담당자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넘어지기 전에 고정해 두죠. 학생들이 다시 학교로 올 땐 깨끗해야 하니까요.”

눈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한 뒤, 우리는 교실로 향했다.
교실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
난방기 점검이 필요했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아들같은 학생들이 무사히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우리의 노력이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예산과 씨름하는 밤

학교라는 공간은 단순히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예산과 계획이 들어 있다.
“이 돈이 어디로, 어떻게 쓰여야 가장 효율적일까?”
그 질문이 매일 내 머릿속을 떠돈다.

초과근무를 내고 밤늦게까지 본예산 초안을 작성하고 있었다.
“과학실 기자재 교체 비용을 줄일까? 아니면 도서관 환경 개선을 미룰까?”
학생들의 학습 환경을 위해 무엇이 더 우선인지 고민하고,
가장 적합한 선택을 하기 위해 수십 번의 수정과 회의를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종종 교사들과 의견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한 번은 한 교사가 물었다.
“왜 이렇게 예산을 아끼려고만 하세요? 그냥 더 쓰면 되는 거 아닌가요?”
나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우리가 쓰는 예산은 국민 세금입니다.
이 돈은 학생들에게 정말 필요한 곳에 쓰여야 하고,
그걸 계획하고 집행, 관리하는 게 제 일이에요.”

그 말을 들은 교사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학생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선 저도 제 사업을 더 구체적으로 준비해야겠네요.”


가치 있는 손길

교육행정직 공무원은 학생들의 하루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교실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운동장이 안전하게 유지되도록,
학생 교육활동을 위한 모든 물품, 장비, 시설이 잘 공급되고 작동할 수 있도록.

눈에 보이지 않는 손길로 학교를 지탱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그 손길이 없으면,
학교라는 공간은 학생들에게 온전한 배움의 장소가 될 수 없다.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그날 밤, 늦은 퇴근길에 학교 근처에 사시는 학부모를 우연히 만났다.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일하셨나봐요? 퇴근이 많이 늦으셨네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건, 우리 행정실 선생님들 덕분이죠. 감사합니다.”
그 순간 만큼은 하루의 고단함이 순식간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래 우리가 잘 보이지 않아도 괜찮아.
아이들이 걱정 없이 학교에 있을 수 있다면, 그게 우리의 가치니까.”

교육행정직 공무원은 보이지 않는 손이다.

그 손은 언제나 학교를 움직이고,
사랑하는 학생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성장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그 손길은,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가치를 드러낸다.

나의 직업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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