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위로를 받아본 적 있나요?
자본주의는 돈 냄새에 민감하다.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상품이 된다.
책방과 SNS, 유튜브와 TV에는
위로 콘텐츠가 범람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위로에 목말라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인스턴트 위로다.
하루에도 수백 개씩 쏟아지는 가벼운 메시지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원하는 위로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누구에게서
진정한 위로를 받았던가.
언제 마음 깊은 곳까지
따뜻해지는 위로를 경험했던가.
위로에도 올바른 형태가 있을까.
혹시 잘못된 위로는 오히려 독이 되지는 않을까.
정답은 없다.
각자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위로는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기법이나 방법론은 중요하지 않다.
그냥 같은 방향을 조용히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가끔 동네 술집에서 안주를 나누며 담소하는 것.
독립적으로 사고하면서도
서로 만날 지점을 찾아가는 것.
"오늘은 위로받으러 왔어"라고
선언할 필요도 없다.
그저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모습,
힘겨운 순간, 눈물을 보이는 모습을 함께 나누는 것.
그런 솔직한 순간들이
바로 위로이자 치유이자 정화다.
나는 숭고한 삶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감동받고,
진심을 담아 노래하는 가수의 목소리에서 울림을 얻는다.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에서
가장 깊은 위로를 느낀다.
위로는 타인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내면을 돌아보는 명상도 위로다.
생각을 글로 옮기는 순간,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정직한 위로를 건넨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뛰는 발걸음에서
몸이 마음을 어루만지는 경험을 한다.
책 속 한 구절에서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을 얻는다.
명상과 글쓰기, 달리기와 독서.
이것들이 내가 매일 찾아가는 작은 피난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