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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부커 Apr 30. 2024

그래요. 나는 교육행정직 공무원입니다.

비는 마른 가슴을 적시는 축배이다.

새벽 창문 너머 빗소리를 머금은 새소리가 들려온다.

비는 나에게 축복이다. 어제의 씻김이자 변화의 떨림이다.

비는 세상이라는 차의 얼룩을 지워준다.


어젯밤 사소한 일로 다툰 부부의 마음

동생하고 다투다 눈이 부은 채 곤히 잠든 아이의 입술에

할 일 더미에 짓눌려 쉬이 잠들지 못하는 이의 이마도,


비는 판단하지 않고 그저 공평하게 씻겨준다.

반대편으로 돌아서지 않아도 조용히 씻겨준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조용하게 다가온다.


세상 모든 이가 빗소리에 귀 기울이게 한다.

저마다의 아픔 마음껏 품어주려고 한다.

저마다의 눈물,  함께 소리 내어 울어주려고 한다.


메마른 나무에게는 단비다.

외로운 사람에게는 눈물이다.

방구석에 갇혀있던 자에게는 해방의 소리이다.


비 오는 날은 모든  생명체가 침잠한다.

꽃들은 땅속으로 파고든다.

사람은 제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비 오는 날은 뜻밖의 약속이다.

친구의 마음을 읽으며, 나누며, 사랑하며

동네 고깃집에서 삼겹살 굽기 좋은 날이다.


비 오는 날은 기쁨이다.

등원길 딸아이가 살며시 아빠 품 안에 안겨온다.

아직 햇빛 쨍쨍한 날 좋은 줄 아는 생명이다.


하늘나라 세차장이 붐비었으면 좋겠다.

세상 모든 이가 오늘처럼만 졌으면 좋겠다.


친구와 기쁜 마음으로

함께 비를 맞으며, 으며, 축이며

순간의 생각을 여기 남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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