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생각하는 기적은 무엇인가요
현대 의학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기적을 믿어야만 했다.
재활 대신, 기적과 민간 치료법을 찾아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한의학 쪽이었다. 보통 침술로 큰 병들이 낫는다는 얘기들이 구전처럼 전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다친 시기가 코로나19와 겹치는 바람에 우리가 원했던 침술 치료는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도 받지 못한 침술 치료를 지인의 소개로, 침을 용하게 잘 놓는다는 분을 소개받아 우리는 덜컥 마드리드행을 결정했다.
사실 지금이야 배도 기차도 버스도 전철도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하지만, 그때만 해도 앰뷸런스나 장애인 전용 택시 말고는 이용해 본 적이 없었다. 이곳에서 마드리드까지는 몇 시간 걸리지 않지만 우리에게는 큰 도전이나 모험이었다.
기적을 바라는 실낱 같은 마음과 함께 당일 마드리드행 기차에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행을 다니던 본능이 살아나 우리는 조금 설레기도 했다.
다치기 전 출장으로 자주 가던 마드리드에 도착하자 남편은 여러 감상에 젖어 보였다. 여러 감정을 뒤로하고 우리는 곧바로 침을 놓으신다는 분께 찾아갔다.
예상은 했지만 정식 한의원은 아니었다. 하지만 맞아주신 어머니 같은 분은 좋은 인상과 선한 마음, 그리고 우리에게 잘해주려는 마음이 모두 잘 느껴졌다.
아마 그분은 일평생 살아오면서 남편과 같은 사지마비 환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사실 외과의사나 재활의학과 의사를 통틀어서도 남편과 같은 환자를 한 번도 치료해 본 적 없는 의사가 대부분이기도 했다.
그래서 가끔 의사들을 만나도 남편 몸에 관련된
기본 이해도는 나보다도 못한 의사가 대다수이기도 하다. 가끔 의료계에 종사한다는 명분으로 우리에게 여러 조언을 건네는 분들에게 날이 설 때도 있는데, 오로지 일반인의 기준에서 생각하고 말해주기 때문에 우리의 상황과는 아예 동떨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분도 자신이 알고 있는 여러 상황들을 예시로 들면서 우리에게 뭔가를 이야기해 줬지만, 공허하게 들릴 뿐이었다. 우선 몸이 마비가 되는 이유가 여러 가지일뿐더러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의 차이조차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마치 곰이 동굴에서 마늘만 먹고 사람이 됐다는 이야기처럼 누워만 있던 사람이 어느 날 번개처럼 일어나 걸었다거나, 아침마당에 나와 자신이 산에서 몇 년간 말도 못 하고 걷지도 못했는데 무얼 먹고 다시 움직이게 됐다거나…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 당시에는 너무 지쳤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만약 남편이 갑자기 걷게 되면 아홉 시 뉴스에 헤드라인으로 나올 거예요” 하고 웃어넘기지만, 그때는 사람들의 그런 말들이 내겐 가차 없는 폭력으로 다가왔다.
역시나 그분도 여기저기에서 들은 구전 같은 이야기를 해주시더니 갑자기 살을 빼라, 운동을 해라 이런 말씀을 하시곤 여기저기 남편 몸에 침을 놔주셨다.
우리는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기대가 반으로 준 것을 서로 눈치챘지만, 한편으로는 “아니야, 숨어있는 허준 같은 고수일 수 있어” 하는 마지막 희망을 안고 침을 맞았다. 남편은 두꺼운 침을 맞아도 크게 고통을 느끼지는 못했다. 감각이 아직 살아있긴 하지만.
뭔가 몸에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기차역에 가기 전에 마드리드에서 유명한 프라도 미술관에 갔다.
보통 유럽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남편과 같이 가면 티켓도 무료이고 줄도 서지 않는다. 남편은 미술관에 오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지도, 관심도 갖지 않고 모두 그림을 보고 있어서 그게 좋다고.
여러 그림들 중에 남편은 광녀 후아나라는 작품 앞에 한동안 서 있었다. 한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은 크기에도 압도적이었다.
남편의 죽음을 거부하는 여왕의 광기와 비극을 보여주는 그 그림 속 주인공의 표정이 너무 공감이 된다고, 왜 이렇게 빠져드는지 모르겠다며 한참을 감상했다.
프라도 미술관 안에는 유독 종교와 관련된 그림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그곳에서는 수많은 기적들이 그림 속에서 보이고 있었고, 그런 그림들을 보며 물어보고 싶었다.
수태고지 속의 기적이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을까?
루벤스, 벨라스케스, 당신들은 기적을 믿나요?
후일담을 적어보자면, 우여곡절 끝에 다시 기차를 타고 집에 도착해 잘 준비를 하는데 남편 몸에
열 대가 넘는 침들이 박혀 있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기적은 다른 게 아니라, 이 침들을 몸에 꽂고도 살아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다행히 몸속 깊이 박히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고, 감각이 완전하지 않은 남편이 느낄 사이 없이 몸속에 박혀버렸다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다.
그 인상 좋으셨던 어머니는 본인이 남편 몸에 몇 대의 침을 꽂았는지 기억을 못 하셨나 보다.
기적과 완치에 목매달던 시기가 지나고, 과연 우리에게 해피엔딩과 기적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우리의 해피엔딩은 완치가 아닐 것이라고 얘기한다면,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 당신들은 뭐라고 이야기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