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그쪽으로 오줌도 안 눌 거다

우리 가족은 죄인이 아니에요

by 브리사


이제 그쪽으로는 오줌도 안 눌 거다.


아빠, 우리 요즘 어떻게 사는지 한번 보러 안 오실 래요?


부모님께 사는 모습도 보여드리고, 박서방도 잘 적응하며 살아가는 걸 보시라고 말씀드렸을 때 아빠가 하신 말씀이었다.


사실 사고 후에 한 번도 오시지 않았던 건 아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오로라를 보고 싶다 하셔서, 남편과 아이들 쉬는 날을 맞춰 한국에서 이곳으로 오는 비행기표를 끊으셨다. 그 표로 얄궂게도 오시게 된 것이다.


자식이 다치거나 아프면 부모는 죄인이 된다.

그 당시 나 역시 죄인이었고, 우리 모두가 졸지에 죄인이 되었다. 사고 직후 너무 걱정되어 며칠 오셨다가 돌아가신 후, 몇 년 동안은 다시 이곳에 오지 않으셨다.


그전에는 일 년에 한두 번씩 우리도 보고 여행도 할 겸 자주 오셨다. 내 또래 부모님들이 대부분 그렇듯, 평생 일만 하느라 ‘쉼’을 위한 여행이나 문화적 향유를 누리지 못하셨다.

부모님도 그러셨다.


그런데 우리와 함께 유럽을 다니실 땐 참 즐거워하셨다. 낯설고 이국적인 밤거리를 걸으며 엄마는 내 손을 꼭 잡고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구나” 하셨다. 언제든 커피 마시고 싶을 때 마실 수 있고, 패키지여행처럼 가이드 눈치 볼 필요 없는 자유가 좋다고 하셨다. 현지인들이 찾는 맛있는 식당이나 여행프로그램에서 보시던 곳에 사위가 모시고 가면 아빠 얼굴에는 고생한 세월을 보상받는 듯한 만족이 묻어나곤 했다.


그런 두 분이 이제 발길을 끊으셨다. 사위를 보기 싫어서도, 미워서도 아니었다. 우리를 불행으로 몰아넣은 나라라고 생각해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는 항변이었다.


한동안은 본인들도 죄인처럼 느껴져서, 맛있는 걸 먹으려 하면 목구멍이 뜨거워져 삼키지도 못했고, 친구들과 모은 돈으로 여행을 가도 마음이 불편해 가지 않으셨다.


나는 일부러 빨간 매니큐어도 가끔 칠하고, 맛있는 것도 보란 듯이 먹으며 지냈지만 부모님은 오래도록 그 시간 속에 머물러 계셨다.

아빠는 “그 녀석이 조금이라도 못된 놈이었으면 내가 너를 데려왔지. 착하기만 하고 내 자식 같으니, 네가 그렇게 사는 걸 볼 수밖에 없다.” 하시며 자리에 누우면 오만가지 생각에 잠을 못 이룬다고 하셨다.


자랑스럽고 살가웠던 사위가 갑자기 장애인이 됐다는 걸 믿기 힘드셨다. 곧 벌떡 일어날 거라며 주술처럼 그 말씀을 되풀이하셨다. 그것은 어느 순간 치미는 분노가 되었다가, 나락 같은 슬픔이 되었다가... 세월이 흐른 지금은 괜찮아지신 건지, 그저 잊고 지내고 싶은 건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아직도 그날 가까웠던 시간은 글로 표현할 자신이 없어 언저리만 맴돌 뿐인 나이지만, 아빠께 꼭 얘기하고 싶다.


아빠. 장애인 가족은 죄인이 아니에요. 전생에 죄를 지어서도 아니고, 재수가 없어서도 아니고, 하필 그렇게 된 것뿐이에요. 아무 이유 없이요.


다친 사람도 사람답게 살고, 맛있는 걸 먹고, 계절을 느끼고, 꿈을 꾸며 살 수 있더라고요. 더군다나 아빠가 가시 하나하나 발려 숟가락 위에 놓아줘야만 생선을 먹던 딸은, 고단한 시간들을 지나며 스스로를 지킬 힘을 길렀어요.


변덕스러운 인생이 다른 방식으로 또다시 기쁨을 줄 수 있다고 믿어봐요.


그러니까 우리 같이,

아빠가 좋아하는 로마의 휴일 속 그레고리 펙이 쓰던 모자를 쓰고 로마에 가요. 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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