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의 달빛을 틀어주던 밤

되돌릴 수 없지만 되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아

by 브리사

시간을 좀 거슬러 올라가 본다.


남편은 사고 후 두 계절이 흐를 동안 병원에 있었고, 그 사이 코비드가 일상의 문을 닫아걸어 우리 가족은 송곳이 주머니 속에 들어와 살을 찌르는 듯한 아픔과 어리둥절함 속에서 지내야만 했다. 속된 말로 사고도 환장할 노릇인데 코비드까지 겪어내야 한다니, 나를 누군가 발로 걷어차는 기분이었다.


극심했던 코비드 상황이 좀 나아진 후 남편은 병원에서 퇴원해야 했고, 우리는 거처를 고민하게 되었다. 주재원 신분으로 살았던 집도 나와야 했고 남편도 계속 병원에서 지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을 때까지 몇 달은 낯선 곳에서 지내야만 했다. 살면서 겪은 솟아날 구멍 중 하나가 바로 이곳이었는데 한국과는 좀 다른 개념의 병원형 재활 레지던스였다.


의사가 늘 상주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간호사들이 24시간 있었고, 낮에는 재활치료사들이 시간표대로 환자들과 함께 운동을 했다.


보통 환자와 보호자가 살게끔 작은 평수여서 2인이 살 수 있는 레지던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문은 벽면의 큰 버튼으로 열리고, 커튼과 조명은 패널 하나로 조절됐다. 싱크대 하부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게 비워져 있었고, 주방 작업대는 높낮이 조절이 가능했다. 무엇보다 상부장 선반이 버튼 하나로 통째로 아래로 내려와 신기하기만 했다.

욕실은 턱이 없는 샤워 공간에 접이식 의자와 손잡이가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상체도 쓸 수 없는 상황이라 그 최첨단 시스템들은 우리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때만 해도 아직 아이들이 많이 어려서 우리는 2인실임에도 4인 가족이 살게 되었다.


아직 정수리에서 아기로션 냄새가 날 것 같은 우리 둘째는, 뭔지는 잘 모르지만 통창이 있고 볕이 드는 낯선 곳이 신이 나는지 소파와 침대로 뛰어다녔다. 낮에는 소파였고, 아이들이 자려면 그 소파를 펴서 재워야 했다. 남편이 자는 방에는 높낮이 조절이 되는 환자용 침대가 있고 나는 그 옆의 작은 사이드 침대에서 자야 했다.


고개를 돌리면, 낯선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땅에서 그나마 익숙해진 동네를 떠나와 다시 낯선 곳에 있자니 노랗고 하얀 달마저 차갑게 느껴졌다.


작은 2인실 레지던스였지만, 벽을 가득 채운 통창 밖으로는 서양화가들이 자주 그리던 오래된 성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 창 앞에 서서 정시마다 울리는 시계 소리를 들으니 옅어진 줄 알았던 회한과 상실감이 불쑥 찾아오기도 했다.


아이들은 오히려 이곳의 생활에 금방 적응했다. 거실 소파 테이블을 좌식 책상처럼 만들고, 가우디 그림이 그려진 두꺼운 책 몇 권과 장식품이 있던 곳을 치우고 자기들이 아끼는 장난감과 책으로 꾸미고, 로비층(0층)에 있는 공용 카페테리아에 빵이며 음료수를 사러 분주하기도 했다.


밤이 되면 가끔 레지던스 카페테리아에 내려가 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속도 없이 투명할 정도로 짙푸른 하늘을 보며 울기도 했다. 나중에 영업시간을 확인하고 알게 되었는데, 울고 있는 나에게 나가라고 할 수가 없어서 매번 늦게 문을 닫았던, 유난히 키가 크고 프랑스 억양의 스페인어를 쓰던 아저씨가 기억에 남는다.


나와 아이들이 이렇게 적응하는 동안 남편은 불편한 수동 휠체어에서 본인의 몸과 싸우면서 지냈다.


계기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언젠가부터 나와 남편은 아이들을 작고 낡은 소파침대에 눕히고 오늘 학교에서 기분 좋았던 일과 별로였던 시간, 그런 사소한 일들을 얘기하며 마지막엔

드뷔시의 ‘달빛’을 틀어주었다.

워낙 짧은 곡이라 몇 번을 연속해서 틀 때도 있었지만, 보통 아이들은 한두 번이 재생되는 동안 잠이 들었다.


아이들을 위해 그렇게 하게 되었지만 그 시간이 내겐 큰 위로였다.


연주가 시작되면 우리가 있는 이 공간과 시간도 제법 아득하고 따뜻해서,

그 시간만큼은 매번 크리스마스 전날 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튼이 있지만 늘 치지 않았던 것은, 통유리창 너머로 감도는 먹빛과 고요함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요즘도 가끔 그 연주를 들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자장가처럼 들려줬던 그 연주가, 그 밤의 밀도와 온기가 살아나곤 한다.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남편이 재활 수업을 받는 시간. 이른 아침 햇빛이 넓게 퍼져 나가는 방 안에서, 낙서한 종이와 색연필, 부서진 장난감이 여기저기 뒹구는 테이블 앞에 서서 혼자 성당을 바라보고 있자니,

지난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되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아질 수 있는 어떤 사랑과 온기의 힘을 느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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