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불편, 낯선 감사

당연하지 않은 일상이 당연해지는 이야기

by 브리사


낯설어진 일상이 조금씩 익숙해졌다.
이제는 그 순간들을 하나씩 꺼내보려 한다




사고 이후, 우리는 점점 작아졌다.
타인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어디를 가거나 누구를 만날 때마다 우리가 불편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움츠러들곤 했다.
아직 타인의 호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던 그즈음, 마음을 풀어준 여러 계기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의외로 ‘이동수단’이었다.


남편이 오랜 병원 생활을 마친 후 우리와 함께 지내려면, 휠체어가 잘 다닐 수 있는 집이 필요했다.
유럽의 엘리베이터는 워낙 작아 휠체어와 함께 타려면 조건이 까다롭다.
어른 두세 명이 겨우 들어가는 작은 엘리베이터에 발판까지 분리해야만 겨우 가능한 크기였지만, 초록이 잘 보이는 베란다가 마음에 들어 결국 이 집을 선택했다.
불편함은 익숙한 일상이 되었지만, 다른 것들에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파트 내부의 경사로 공사가 시작됐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작업이 시작됐다.


우리가 요청한 것도 아니고, 돈을 낸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우리가 그 높은 경사로를 지날 때 힘들어 보였다는 이유로 그들은 ‘당연한 일’을 해준 것이었다.
한국이었다면 떡이라도 돌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곳에선 우리 역시 입주민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일 뿐이었다.

볕이 잘 드는 공사후의 경사로


비단 아파트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니었다.

남편이 가고 싶어 하던 식당에 턱이 있어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더니, 바로 다음번엔 휴대용 경사판(lampa)을 제작해 놓아주었다.
유럽에서는 식당이 영업 허가를 받으려면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어야 한다.
법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에겐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처음엔 이런 배려가 낯설고 어색했다.
감사보다 먼저, 이렇게까지 받아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한국에는 유모차로도 버스를 타기 쉽지 않았던 기억도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사고 이후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또 남편의 휠체어는 크고 굉장히 무거웠다.

그런데 여기서는 버스가 정차해서 남편의 휠체어를 보게 되면 자동으로 경사로가 내려오고,
승객들은 오래 기다리더라도 불평하지 않는다.


기차를 타고 파리에 간 적도 있다.
도전과 모험의 시절이었고(지금도 여전히)

새롭고 뜻깊기도 했다.

유럽의 항공편은 좁은 기내로 인해

휠체어 이용자들에게 쉽지 않지만, 기차는 달랐다.
장애인 티켓을 구매하면 역에서 보조 인력을 배정해 주고, 탑승부터 가족들의 짐 운반까지 도와준다.
우리가 특별히 비싼 표를 구입한 것도 아니었는데...

기차에 부착된 경사로는 버스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훨씬 와이드 하고 작은 무대가 천천히 오르고 내리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기차 경사로가 내려올 때 신기해서 영상을 오래 찍기도 했다.

이곳 엘리베이터에는
"장애인이 먼저 탑승해야 합니다. (Absolutely)"**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양보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배려의 차원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종종 병원에서조차 휠체어를 양보받지 못했던 기억이 선명히 떠올라, 그때마다 힘들었던 감정이 왈칵 복기되기도 했다.

고백하건대, 남편이 휠체어 생활을 하기 전까지, 나는 본래 약자에게 특별히 민감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동안 나는 나와 다른 조건에서 사는 사람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던 걸까
우리의 입장이 되고 나서야 더 많이 보이고 배우게 되었다. 남의 나라에서의 삶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위축될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금이 가장 자유롭기도 하다.

이동의 감각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실감하면서.

한국은 여러 면에서 빠르게 발전했지만,
장애인을 위한 인프라는 여전히 개선될 부분이 아주 많다.
배려는 선택이 아니라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은 우리가 현지 친구에게 물었다.
“왜 당신들은 이렇게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친절해요?”

그는 질문이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나도 내일 그렇게 다칠 수 있잖아요.”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