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창, 새로운 전쟁

불운과 낭만은 같은 공간에

by 브리사



인간은 이리도 슬픈데, 주여 바다는 너무 푸릅니다. — 엔도 슈샤쿠





이곳에 살다 보면 택시를 타고 언덕을 지나갈 때도, 고층 건물에 올라갈 때도, 아이들 친구네 집에 갈 때도 늘 지평선과 푸른 바다가 보인다. 그럴 때마다 엔도 슈샤쿠의 저 구절이 떠오른다. 나는 비종교인이지만 아이러니와 절망, 고독을 느끼게 해주는 이 문장이 좋았다. 그저 푸른 바다처럼, 신은 어떤 인과관계도 인간에게 부여하지 않는다는 생각과 함께.

물론 사고 후 5년이 지난 지금은 그 감정이 많이 옅어져서, 짙고 푸른 바다, 볕에 반짝이는 바다, 그냥 아름다운 바다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사고 직후 우리의 고통과 슬픔과 함께 상징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다였다. 하필 코로나로 온 세상을 뒤덮은 시기라 남편을 혼자 병원에 두고 매일 병원을 드나들 때, 늘 바다가 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기차에서 내려서도, 버스를 타고 내려서도, 병원에 도착해서도 매일같이 바다는 내 속도 모르고 푸르게 그 자리에 있었다. 한순간 쏟아지는 봄볕과 함께 뒹구는 푸른 바다에 마음을 빼앗기는 내 모습을 보며,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방금 전까지도 슬펐는데, 내가 이렇게 일관성 없는 사람이었던가. 아직도 나에게 어느 정도의 낭만이 남아 있던가.

내 낭만의 잔류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 도시와 바다가 주는 부분이 클 거라 생각된다. 그것과 더불어 아이들의 밝음, 남편의 견딤과 여전함, 제철 과일과 맥주의 달고 시원함. 이런 것들이 모두 불행 중 다행이었다.

많은 일을 겪으면서 산전수전, 공중전이 아닌 또 무슨 전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요즘 근 5개월간 남편과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은 또 하나의 전쟁이었다.

언제 왜 생겼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엉덩이 쪽에 조금 벌어진 듯한 상처로 시작됐다. 이게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정말 순식간에 커다란 동전만큼 커졌다. 시큼한 냄새도 올라오고, 이것이 말로만 듣던 욕창이었고, 여기서는 울쎄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심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가장 심각했을 때는 얄궂게도 생애 첫 우리 가족이 도전한 크루즈에서였다.


늘 인생은 이렇게 뒤에서 왈칵 놀라게 하고, 우리는 뒤돌아볼 새도 없이 앞을 보고 나아가야 했다.

상처는 동전보다 더 크게 벌어졌고, 중심엔 기름기처럼 하얗고 단단한 덩어리가 끼기 시작했다. 고깃기름이 굳은 것처럼, 피처럼 얼어붙고, 보기에는 물컹해 보이지만 실제로 만져보면 돌처럼 단단한 부분이 생겼다. 그 주위로 죽은 살점 같은 것들이 달라붙어 있고, 그 부분을 제거하지 않으면 시큼하고 썩은 냄새가 나는 것이다. 마치 수술실에서 의사들이 피부를 가르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꺼낼 수 있을 정도로 깊게 파여 있었다.

욕창이 심각해진 이후에는 간호사가 집으로 와 거의 매일 방문치료를 해주었다. 간호와 간병을 나라에서 도와주는 게 역시 우리나라와는 다른 점이기도 하다. 간호사는 치료 도중 나에게 상처를 직접 볼 수 있겠냐고 물어봐 주었다.

그 말이 참 어색하고도 고마웠다.
사고 이후 우리의 삶엔 늘 불운과 함께, 이렇게 다정한 행운이 예상치 않게 찾아오곤 했다.
그런 부분들에 우리는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크루즈 바다 위에서는 그 감사하던 간호사는 없었고, 내가 오로지 그의 상처를 돌봐야 했다. 나는 제법 잘 해냈고, 이후로도 남편은 5개월째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지만 매일 사진 기록으로 남기는 상처의 크기는 많이 줄어든 상태다.


올겨울, 어쩌면 남편은 다시 휠체어를 타고 볕이 부서지는 바닷가 근처 도로를 달릴 수도 있겠다.

힘들고 슬픈 처지에 있을 때도 있지만, 그게 우리의 대부분의 정서가 되지는 못했다. 삶 자체는 불운과 행운의 양면성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욕창이라는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그곳에서 어떤 행운을 발견하고 또 작은 낭만이라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지.

그럼에도 이 전쟁이 어서 끝나기를 바라고 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