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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면 Oct 13. 2018

여행의 이유

아니, 도망자의 변명 @Buenos aires 20180515

 사실 나는 여행자 체질이 아니다. 게으름에 소심함까지 장착한 완벽한 집순이다. 한 때 나도 내가 여행을 좋아하나 의심(?)해본 적이 있었으나, 그때도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얼마 전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지금 일년이 넘도록 집에도 안 들어가고 여행하고 있는가?' 머리 속에서 가치충돌 같은 것이 일어났고, 며칠간 좀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며칠동안 부에노스아이레스 한인민박에 누워 '나는 왜,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여행 시작부터 끄적끄적 써 온 일종의 일기장 같은 기록들이 있다. 근데 이게 일기장은 아니고, 여행을 다니면서 문득문득 생각나는 과거의 기억들을 적어놓는 일종의 기록문 같은건데 거기에 이런 말이 적혀있었다.



 "이게 아니면 숨 쉴 방법이 없었다. 여행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해야만 했었다. 나는 그냥 도망친 것이다."



 언제의 기억인지도 모르겠지만, 여행 초 필리핀 세부 불꺼진 방안에서 울면서 끄적끄적 적어 놓은 기억이었다. 거기서 나는 내 여행의 이유를 다시 찾았다. 아니, 도망의 이유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시작한 여행. 남들은 정말 열심히 모으고, 계획해서 떠나는 여행을 그 어떤 준비도 없이 편도 비행기표 한장만 달랑 끊어서 나왔다. 지금도 이게 맞나싶기도 하지만, 맞고 틀리고를 판단할 근거는 1도 없었다. 왜냐면 나처럼 살아본 건 나밖에 없으니까. 심지어 나도 내 삶을 다 살아본건 아니니까.



 다행스럽게도 나는(현재까지는) 후회하지 않고 꽤 만족하며 여행하고 있다. 그냥 눈 뜨면 오늘 뭐 먹지? 고민하고 남북정상회담 뉴스를 보며 나도 시원한 냉면이나 한 그릇 때리고 싶다.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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