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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면 Oct 12. 2018

일장춘몽

나도 외국에서 일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가 이 일에 대해서 잘한 건지, 좋은 기회를 내 스스로 날려버린건지 판단이 안 선다. 사실 한 달 전 즈음- 외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선배를 통해 외국회사 한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JD를 자세히 읽어보니 내가 한국에서 하던 일이었고 한국어 구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거다!' 싶었지만 내 영어실력으로는 외국에서 일하는 건 불가능 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어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않을 것이라는 선배의 말에 '한번 해 봐?'하고 그 날 바로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쓰기 시작했다.

 그 좋은 날, 스페인에서- 그것도 그 예쁘다는 그라나다에서, 하루종일 호스텔에 앉아 나가지도 않고 노트북을 끼고 뭔가 하는 내가 이상해보였는지- 지나가는 독일애가 "너 대체 뭐해?" 하며 내 노트북을 들여다봤다. 이력서와 커버레터로는 부족하다싶어서 그간 내가 해왔던 프로젝트 레퍼런스를 PPT로 정리하던 중이였다. 대학교에서 마케팅을 전공한다던 그 친구의 입에서 "awesome"이라는 말을 듣기 전까진 그냥 떨어질 생각으로 재미삼아 한번 해보는거지 했었다. 그 친구의 어썸을 듣기전까지는... 그랬다...

 사람심리가 정말 희안하다. 칭찬을 들으니 희망같은게 생기는거다. 난 분명 떨어져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지원했는데 말이다. 사전 컨펌 차 보낸 내 레퍼런스를 본 선배는 이걸 언제 다 준비했냐고 칭찬을 해주셨고, 이메일을 보내자마자 답장이 온 인사담당자는 바로 인터뷰 날짜를 잡자며 스카이프 계정을 알려달라고 했다.


뭐지? ... 진짜 이거 뭐지?

 좋았던 것도 잠시. 그날 밤 샤워를 하면서 혼자서 내가 한 프로젝트에 대해 영어로 중얼중얼 거려봣는데 도저히 안되겠는거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걸 영어로 풀어내는데 '엄-'을 한 100번 정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망했다... 샤워를 끝내고 나오자마자 다시 노트북을 켜고 예상질문과 답변을 쓰기시작했다.

 한국인 면접관도 아니고 외국인 면접관을 상대로 그것도 화상으로 치르는 첫 면접. 거의 1년만에 스트레스다운 스트레스를 받는 느낌이었다.

 언제 인터뷰 시간되냐는 인사담당자의 말에 '언제든 시간이 된다-'라고 답변한지 5일이 지났다. 언제 보자라는 답장이 없다... 사실 난 언제 볼 지 모르는 면접 때문에 항상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숙소를 골라 대기하고 있었다. 심지어 모로코행 비행기 날짜가 다가와 똥줄이 타는 상황. 결국 모로코 가기 전날까지 메일이 오지 않는 바람에 나의 여행에 대해 양해를 구해놓고 모로코 사막엘 다녀왔다. 그렇게 1차 접선 실패...

 사막에서 나오자마자 '나 돌아왔어, 그러니 면접 볼수 있어-'하고 다시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또 답장이 없다. 그로부터 다시 2주가 흘렀고, 인사담당자는 바빠서 답장이 늦었다는 메일과 함께 다시 인터뷰 날짜를 잡자고 했다. 사실 난 그 2주 동안 혹시라도 나는 내 메일이 누락됐나싶어서 보낸메시지함을 몇 번씩이나 확인했었는데... 힘이 좀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별 수 있나- 내가 을인데... 맞춰야지.

 '나는 당신이 가능한 시간을 알려주면 언제든 인터뷰가 가능하다.' 라고 말한것이 잘못이었을까? 두번째 인터뷰 시간을 잡자는 메일이 오가고도 다시 2주가 흘렀다. 어떤 날짜도 받지 못한 채. 2차 접선도 실패...


 근데 나도 마냥 기다릴 순 없었다. 다른 나라로 이동해야했었고 언제까지 여기에만 메여있을 수 만은 없었기때문이다. 아쉬웠지만 또 그렇게 미친듯이 아쉽진 않았다. 또 그렇게 간절하진 않았나보다. 그냥 다른 사람 뽑았나보다-하고 마음을 접고 내 여행을 계속해나갔다.

 그런데 엊그제 그 회사 대표로부터 직접 메일이 왔다. 이번주에 면접이 있을 거라고. 첫 이력서를 넣은 날로부터 한 달이 넘은 시점이었다. 근데 마음이 이상한거다. 설레지가 않았다. 다시 잘 해보고싶은 마음이 안 생기는거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걸까? 모르겠다. 또 대기하는 시간 동안 마음 한 켠엔 '내가 질문도 못 알아들으면 어떻하지?','어버버 거리면 어떻하지?' 하는 불필요한 두려움을 상당부분 키웠던 것도 한 몫했다.


 그래도 한 달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차에서, 배에서, 침대에서 시간 날 때마다 달달 외운 스크립트가 아까운 마음에 '그래, 쪽팔리더라도 한번 보기는 보자'라는 심정으로 답장을 했다. 이번 주 10,11,12일 모두 인터뷰가 가능하다고. 이번엔 날짜까지 정확하게 표시해서 메일을 보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나는 면접을 보지 않았다. 보지 않겠다고 그 회사에 통보를 했다. 이번주에 면접을 보자고 한 회사에서는 이번 주 목요일이 될 때까지 답장을 주지 않았다. 적어도 목요일까지는 답장을 줘야 금요일엔 할 수 있을 텐데 목요일인 오늘까지 답장이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이 면접이 나에게 기분 좋은 긴장이나 설렘이 아닌 스트레스가 되어버렸다는거다. 돌이켜보니 면접 관련 메일을 받을 때면 그 때부터 좋은데를 가도- 맛있는 걸 먹어도- 면접 생각에 그 것들을 100% 즐기질 못하고 있었다.

 결국 잠까지 제대로 못잤다. 미간에 주름이 잡힌채로 잠에서 깼다. 그제서야 확신이 섰다. 이건 아니라고.  영어도 못하는 내가 외국회사에 붙는다는 건 욕심이었다고. 그냥 여행중에 일어난 일종의 이벤트 같은거야. 그러니까 너무 실망하지말자. 라고 나를 다독여주고 더이상 나를 괴롭히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인사담당자와 대표님 모두에게 답장했다.

나에게 면접의 기회를 줘서 고마운데, 나는 더 이상 이 면접을 볼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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