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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Sep 25. 2023

더 거만하거나 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할게요

여름의 열기를 한 뼘 머금은 가을의 햇빛은 식을 길이 없는 것처럼 굴었다.


언제 가을이 오려나.


손을 뻗어 바람에 물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결이 조용히 속삭였다.


곧 머지않아 올 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깨비가 화가 나서 우는 것처럼 비가 내렸고, 그렇게 여름의 열기가 흩어졌다.


퇴사를 하고 나서 한 달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두 번의 글이 올라갈 동안, 초록잎은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었고, 외치고 싶었던 말들이 많았지만 이내 거둔 것이 벌써 세 번이나 되었다. 사랑하고 싶었지만 사랑할 수 없었던 이에게 부디 아픔을 돌아봐달라고 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무응답이었다. 그래서 빼곡하게 서려있던 내 안의 것들을 다시 비춰보았다. 날이 서있었고, 울음을 그칠 줄 모르는 모습이 있었다.  그는 도대체 어떤 모습을 보고 안정되어 있다고 말해준 걸까 의문이 들 때즈음 내가 나에게 말했다.


그만하면 되었다.

네가 흘리는 눈물이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도 있어.


내 안의 아이의 눈물은 내가 닦아줘야 했다. 스스로 울음을 멈추고 호흡할 수 있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발갛게 올라온 볼을 쓰다듬어주고 안아줬다. 이 한 번의 포옹으로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안아야 나도 안심할 수 있었다. 그 어색한 끌어안음을 마친 것이 어젯밤이었다.

사실 아이를 안게 된 것은 나도 여러 동기가 있었다. 하나는 좋아하는 그녀를 보러 갔었던 일, 그리고 대학교 동기들과 처음으로 여행을 떠났던 일에서 비롯되었었다.


진짜로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도 아닌데 꽃이 잔뜩 핀 원피스를 차려입고 영화관을 나섰다. 좋아하는 것에 좋아함으로 마주하고 싶어서였다. 비싸다고 생각했던 2만 4천원의 값어치는 사실 이젠 아무래도 좋을 지경이었다. 큰 스크린에 담긴 그녀는 여전히 예뻤고, 단단히 서 있었음을 보여줘서 울기보다는 웃을 수 있었다. 그녀가 무대에서 했던 이야기 중 하나가 떠올랐다.


팬들에게 약속할 수 있는 것은 더 거만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땐 그녀가 단단히 서 있는 것이 기뻤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보통의 사람들도 그렇게 약속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직도 한참 멀었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나 이 사람을 좋아해’라고 이야기 했을 때, ‘그 사람’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을 좋아하는 ‘나’ 자신에게 ‘정말 좋은 사람을 좋아하네’라는 말은 해준 다는 것은 다시 말해 굉장한 축복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 끝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이십대의 절반은 사실 부끄러운 삶의 연속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존재로 자리하고, 강요하지 않기란 쉽지 않기에. 또 차근차근 쫓아야 한다는 생각에 기쁜 부담이 생겼다.


그리고 빼먹으면 섭섭할 또 다른 귀여운 여인들의 이야기를 풀어보면, 거진 5년 정도만의 첫 여행이었다. 언제나 어릴 것만 같았던 똑단발의 소녀와, 바람처럼 여행하는 소녀, 조금은 유연함을 머금었으면 하는 소녀가 있다. 무지개를 그리듯 떠나는 첫 가평 여행은 순조로웠고 평화로웠다. 내가 좋아했던 시간은 함께 수목원을 걸었던 일, 테라스에 앉아 소박하게 고기를 구워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일, 느지막이 일어나 카페에서 커피를 먹었던 일이다. 특히 좋아했던 건, 저녁에 고기를 구워 먹으며 앉아있었던 것이 좋았다.


그때 생각했다. 그 아이들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려면 부단히 노력해야겠구나 하고.


그래서 집에 돌아가면 나를 안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울음을 머금는 말을 하는 것은 아마도 당분간은 없을 것이다. 사실 이 챕터를 넘어가면 이 다음 말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한 달이 넘도록 고민했다.

어쩌면 말을 하러 오는 것이 더 뜸해질 수도 있다. 다만, 누군가의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리하게 될 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누군가에게 타인을 설명할 때 사랑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연습하는 모습을 보여 주러 올 것이다.


그게 내가 선택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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