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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Mar 05. 2023

우당탕탕, 아직 결말은 몰라요.

겨울의 숨소리가 많이 옅어진 듯한 어느 날이다. 심한 감기를 앓는 것처럼 기복이 심했던 추위에 이번 봄은 늦게 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만히 자리한 곳에 따듯한 온기를 가져와 비집고 자리하는 햇볕을 보며 그런 생각은 기우라는 것을 느꼈다. 또, 한번 사무칠 봄이 온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했다.


작년의 봄은 너무 소란스러워 떨어지는 잎에도 마음이 떨렸는데 올해는 조금 다를 것 같다.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면서도 더 이상 곰팡이가 잔뜩 피어버린 나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게 되어서일까. 창피함을 모르는 아이처럼 안겨 울었던 기억은 감사함으로, 넘어져 생긴 상처에는 붉은 흉으로 번졌지만 눈물은 나지 않는 것도, 내 이름 석자를 종이 위에 올리겠다고 노력해 못 생긴 손톱에 슬픔을 넣지 않는 것이 변화라면 변화 일지도 모르겠다.


새해가 되고 나서 단 하루도 심심할 틈이 없었다. 구멍이 많이 나는 가계부를 바라보며 작은 빡빡함을 느끼거나 자괴감은 느끼는 일은 빈번 해졌다.  가끔은 억지를 부려 비상금으로 남겨두었던 돈으로 메꾸기도 했다.


새 보금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알면 알 수록 수렁에 빠지는 자신을 몇 번이나 구해내는 것은 이제 일도 아니게 되었다. 키 큰 친구가 말하기를, 걱정을 하면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기에 적당한 걱정은 필요하다며 잘 될 일만 남았다는 말을 위안 삼으며 때론 버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행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작은 계기가 있다면, 내 세계에서 ‘판매왕’을 찍으러 가던 2월의 어느 주말이었다. 주말이지만 출근을 해야 했고, 우연히 자리가 난 지하철 의자에 앉아 가만히 생각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인생을 영화로 만들 수 있다면, 만화로 그릴 수 있다면 지금의 이 모습은 어떤 과정으로 남겨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호평을 받았던 작가도 많은 기대에 부흥을 안고 돌아온 신작이 때론 너무 과해서 혹평을 받곤 하는 것처럼. 때론 결말이 좋지 않은 에피소드를 쓸 수도 있고, 행복이 가득한 에피소드를 쓸 수도 있고, 끝없는 절망을 달릴 수도 있을 거라고. 조금은 흔들려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다다르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림을 그려 본다면, 이 순간도 언젠가 상영될 모습이었다.

괜찮지 않은 날이 있어도 되는 이유, 괜찮은 날도 있는 이유가 이제야 완성되는 듯 했다.


동시에 열심히 장면을 그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지치지 않게, 내 마음이 가는 정도로만.

의무감으로 적었던 다이어리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고, 작은 추억이 생기는 것에도 기분이 좋았다. 어떤 모습이든, 살아왔다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이 나를 사랑하는 하나의 방법에 해당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기분 좋은 변화다.


돌고 돌아온 3월.

이번 봄은 적당히 눈부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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