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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밝힌 표정으로 살아가기

산뜻함: 기분이나 느낌이 깨끗하고 시원하다.

by 위드꼼



지난주엔 창고에서 자고 있는 선풍기를 깨워 먼지를 닦아냈다.


매년 해오던 일이라 기계적으로 헤드를 분리하고 날개를 꺼내 흐르는 물에 씻고 있는데

등 뒤로 수상한 그림자가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분해된 선풍기를 조심스레 살펴보고 있음이 느껴졌다.


호기심 대마왕이 이런 일에 빠질 리야 없지.


꼼, 90도로 인사해. 너의 여름을 책임져 줄 고마운 존재셔.


/


꼼은 더워지면 긴 잠을 못 이룬다.


앞발로 파헤쳐놓은 이불 위에 자리를 잡았다가 더위가 몰려오면 그것도 뒤로하고 발밑으로 내려가고는

침대 모서리에 아슬아슬하게 걸터누워 바닥에서 올라오는 찬기를 느껴보려고 용을 쓰다 이내 아주 아래로 내려가 버린다.


문지방에 턱을 괴고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꼼의 아련한 눈동자는 이런 말을 담고 있는 듯하다.


나 지금 더운데 침대 위에서 자고 싶어. 어떻게 좀 해 봐.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선풍기다.

선풍기를 발 쪽에 세워두고 미풍으로 2시간, 회전으로 설정해 두면 꼼의 밤은 깊어질 일만 남았다.


아직은 선풍기를 틀만큼 덥지는 않아도 찾을 때 지체 없이 틀어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 두려고 벌인 현장을 뒤로하고

꼼은 그새 자취를 감추었다.


이러쿵저러쿵 길어지는 나의 수다를 산뜻하게 무시해 버리기로 마음먹었나 보다.

너만 보면 말을 걸고 싶은 걸 어떡해.


홀로 외로이 남겨진 신세를 한탄하면서 몸통에 뒤판을 끼우고 고정 나사를 조이고, 날개를 끼우고 이제 날개가 날아다니지 않도록 고정할 차례인데 뭐야, 이거 어디 갔어?


아무리 들춰봐도 날개 고정 나사가 보이질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 내 눈에 안 보이는 게, 나사이란 말이지…


꼼!! 안 갖고 와?


//


꼼의 정체를 밝힐 때가 된 것 같다.

사실 꼼은 괴도다.


의미 그대로 괴怪이한 도盜둑인 꼼은 별로 탐내하지도 않으면서 일단 훔치고 본다.


가장 자주 가져가는 건 머리끈.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부터 머리에 잘 묶여있는 것까지 어느 하나 가리지 않는다.


꼼의 목적은 빼앗아 감추거나 차지하는 게 아니라 그저 “빼앗는 것”에 있다.

따라서 무작정 기를 쓰고 가져가 놓고서는 뒤돌자마자 바닥에 내팽개친다는 특징을 가진다.

(그걸 내가 눈앞에서 주워도 가만히 놔둔다. 그럴 거면 애초에 왜 훔쳐 가는 건지.)


나사는 거실 한복판에 버려진 채로 발견되었다.

언제 노렸던 건지 모를 도어스토퍼도 함께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꼬리가 밝힌 세상



꼼이 훔쳐 간 것 중에 가장 값진 건 두말할 것도 없이 <마음>이다.

사랑 무서운 줄도 모르고 겁도 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 달아나곤 한다.


가장 최근에 피해를 본 사람은 횡단보도를 기다리며 만난 어떤 여성분이었다.

신호가 얼마 남지 않아 다음에 건널 요량으로 구석에 서 있는데 어디선가 따사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가로등보다 빛나는 초롱초롱한 눈이 꼼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먼저 다가오지는 않으시고 한 다섯 발자국쯤 옆에서 꼼이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무심한 꼼이 그럴 리가 없어서 이를 어쩌나 고민을 하다가 먼저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꼼을 향한 칭찬이 와다다 쏟아져 내렸다.

어떻게 참으셨나 의문이 들 정도로 아찔한 빛의 향연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말로도 빛을 낼 수 있구나 감탄하느라 잠시 넋이 나갔었던 것 같다.


초록 불을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에 가만히 서 있었을 뿐인데 예쁨을 잔뜩 받고 있는 꼼이 어이없도록 귀여울 찰나,

강력한 눈웃음 한 방을 날리는 녀석에 우리는 동시에 뒤로 넘어가고야 말았다.


너, 이 타이밍에 그런 웃음 짓는 거 반칙이야.


소리 없는 아우성 가운데 정직한 신호는 틈을 주지 않고, 미련 없이 자리를 뜨는 발걸음을 쫓으며 애가 타는 건 한순간에 심장을 빼앗기고 만 인간 둘뿐이었다.


꼼은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


개가 꼬리를 살랑이면 내 마음엔 구멍이 생긴다.

호호 불면은 구멍이 뚫리는 커다란 솜사탕처럼 내 마음에도 다디단 바람이 훅 불어와 입안을 헤집어놓는다.


입이 다니까 마음이 절로 넓어졌다.

쓴 약을 삼킨 하루 끝에 개가 입에 물려준 사탕 한 알이 모든 걸 잊게 만들었다.


자신을 만지라며 머리를 가져다 대는 개가, 자신을 보라며 눈앞에 말없이 앉아 있는 개가

생채기가 난 하루도, 흉터로 남은 지난날도 몽땅 녹이고서 시간 나는 대로 한 뼘씩 부지런히 자기 땅으로 만들어버렸으니까.


개가 넓힌 마음에서 정작 이득을 보는 건 나였다.

마음이 넓어진 내가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


이걸 보답하기 위해 개에게만큼은 질 좋은 말들만 고르고 골라 꺼내고 싶은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좋아해, 사랑해, 마음껏 해, 잘했어, 최고야’ 대신에 ‘안 돼, 쓰읍, 하지 마, 그만, 혼나’ 같은 말들만 돌려쓰는 현실이니.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내가 널 이렇게나 좋아한다고, 네가 좋아하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거였는데.


한동안 SNS에서는 통화를 하는 척 연기를 하면서 개가 좋아하는 말들을 내뱉어 반응을 살피는 영상이 유행했었다.


꼼이 좋아하는 단어로는 <엄마, 갈까?, 간식, 우유, 밥, 띠로리(밥 나오는 소리를 우리끼리 띠로리라 부른다), 탈래?>가 있다.

문장을 자연스레 조합해 보면 “엄마, 나 간식 사러 나갈까 하는데은 먹기 싫고 우유랑 먹을 만한 게 없나, 띠로리 하네. 탈래? 아, 속을 달래 보라고.”가 된다.


대본은 이만하면 됐고 이제는 실전이다.

가만, 휴대전화가 어디에 있더라.


찾으러 돌아다니는 사이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꼼이 깰지도 모르니까 급한 대로 리모컨으로,

띠디디디딕- “따르릉, 여보세요? --”


쿠션 위에 누워 코를 골던 꼼은 “엄마” 소리에 눈을 떠 꼬리를 흔들기 시작하더니 “띠로리”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의심의 흰자를 보이면서 꼬리는 그에 맞지 않게 격렬히 흔들고 있는 모습이 몹시 귀여워

나는 또 심장을 부여잡아야 했지만 모처럼 꼼이 좋아하는 말들만 쏙쏙 내뱉을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평소에는 자칫 나도 모르게 꼼이 반응하는 단어를 발설해 버릴까 봐 주의해야 하는데

한꺼번에 마구 말하고 나니 잠시나마 <단어 주의, 개가 흥분할 수 있음> 표지판에서 해방이 된 느낌이었다.


무심코 개가 남몰래 가슴속에 품고 있던 단어를 내뱉으면 그걸 놓치지 않는 희망찬 눈동자가 지구 끝까지 쫓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꼼이 밥을 기다리며 자고 있는 줄도 모르고 “밥은 뭐 먹지.” 중얼거리다 하마터면 눈 뜨고 코 베일 뻔했다.


너는 좀 전에 밥을 먹었잖아. 배불러서 자던 거잖아.


인정 없이 몰아치는 꼬리 공격에 이번에도 좋은 말 하기는 글렀다.


쓰읍- 그만.

많이 먹으면 소화도 못하면서.


삐친 꼼이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자 공허한 바람이 내 마음을 스쳐 지나갔다.

이번엔 입이 쓰다.






삐친 개보다 두려운 건 기력 없는 개다.

가만히 엎드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별 반응이 없는 개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그대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


컨디션이 안 좋나, 어디가 아픈가, 날씨를 타나, 지금쯤 물 달라고 소리쳐야 하는데 왜 가만히 있지.


한없이 늘어지는 데엔 콧바람만큼 좋은 해결책이 없으니까 일단 나가보기로 했다.


꼼아, 산책 갈까?

꼼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린다.


몸을 일으키기도 귀찮은지 누운 자세 그대로 꼬리로만 대답하는 꼼에 신발을 신고 혼자 나가려는 척 연기를 했더니

누가 봐도 방금 일어난 행색의 꼼이 부랴부랴 현관에 도착했다.


꼼도 같이 나갈 거야?

(살랑살랑)

그래, 가자!

(살랑살랑 살랑살랑)



파스텔톤 웃음



꼼은 전형적인 집 좋아 개다.

산책은 하루에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사이.


밖에 나온 지 두 시간이 지나가면 집에 가자는 소리만 바라고 있다.

간헐적으로 폭발하는 우다다 타임을 제외하고는 집에선 대체로 가만히 엎드려 체력을 보충하는 편이다.


활동량이 그리 많지도 않아서 삑삑이 장난감으로 흥을 끌어올려줘 봤자 10분 남짓 뛰어노는 게 다다.


그리 어린 나이가 아닌지라 잠이 보약이란 믿음으로 꼼의 수면 생활을 응원하고 있지만

그래도 하루 종일 늘어지는 것 같은 날에는 괜히 걱정이 되어 한 번씩 주위를 얼쩡거리며 꼼에게 말을 걸게 된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등 뒤에서 엄마의 벼락같은 불호령이 떨어지지만.


너, 꼼 괴롭히지 마.


아무 때나 계속 만지면 스트레스받을까 봐 꼼이 먼저 다가오지 않는 이상 손을 뻗는 일을 자제하는 엄마의 눈에는

나의 애정 표현들이 다소 지나쳐 보인다고 우려하시곤 한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눈이 마주쳤다고 배를 내보이는 개를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애초에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어떻게 안 만지고 그냥 지나가. 나는 못 해.


오늘도 나의 처절한 절규가 집안을 가득 메웠다.


귀가 뒤로 넘어가도록 쓰다듬을 기다리고 있는 개를 외면하는 일은 절대로 못할 짓이다.

이미 귀가 넘어갔는데, 거기에 내 손만 올리면 되는데 그걸 보고도 그냥 지나치라니.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온종일 껴안고 싶은 것도 겨우 참고 있는 중인데 그것만큼은 안 된다.


/


꼼의 비밀스러운 정체를 하나 더 밝혀보자면,

사실 꼼은 지킬 앤 하이드다.


집에서는 세상을 호령할 것처럼 나를 부리면서 밖에만 나가면 청학동 예절학교 수석 졸업한 개 행세를 한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지만 꼼은 어찌저찌 꼼꼼하게 잘 막아두었는지 결단코 새는 법이 없다.

머리끈을 가져가겠다며 내 머리카락을 죄다 뜯어 놓는 개가 밖에서는 백이면 백 순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나 원 참.


신기한 건 집 밖을 나서면 짖지도 않는다.

밥 줘! 물 줘! 장난감 내려줘! 소파 밑으로 굴러간 거 꺼내줘! 간식도 줘! 얼른 줘! 빨리 자! 같이 자! 일찍 일어나!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졸졸 쫓아다니면서 잔소리하는 게 일상인 개가 밖에 나가서는 어쩜 그렇게나 한마디도 안 하는지.


냄새를 맡느라 말하는 걸 잊어버렸나.


그래서 그런지 꼼은 되도록이면 집에 있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집에 단둘이 있으면 혼자 남겨지는 게 싫어 내가 엉덩이만 들썩거려도 따라나서겠다며 난리가 나지만

다른 가족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이야기는 180도로 달라진다.


남겨진 가족과의 의리를 지키려는 건지, 집에 남아 세상을 마저 호령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유혹에도 꿈쩍도 안 하고 집에 있겠다고 하는 탓에 가끔은 그리 좋아하는 산책을 건너뛸 때도 있을 정도다.


함께 있어 줄 누군가가 있는 날엔 집순이력이 상승하는 꼼에, 데리고 나가는 게 옳은 지 놔두는 게 옳은 지 매일이 씨름판이지만,

근데 또 억지로 하네스를 채워 밖으로 데려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녀 이중 생활자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흘러내리는 슬라임 모양으로 널브러져 있다가도 밖에만 나가면 생기를 되찾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돌아다니는데

한 번도 못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본 사람은 계속해서 그 웃음을 보려고 뭐라도 할 게 분명하다.


산책 안 한다고 버티던 개가 이 개가 맞아?


돌아오는 미소에 무슨 상관인가 싶고.


/


개와 함께하는 산책은 기분 전환에 명약이다.


생각이 많아질 때나 기분이 안 좋을 때 앞서가는 개를 뒤따라가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샌가 모든 고민이 부질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뭐면 어때. 이렇게 하루 중 개랑 걷는 시간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나도 모르게 나를 갉아먹던 날이었다.


뭐 하나 제대로 정해진 것도 없는데 앞서서 걱정하느라고 입에서는 쉴 새 없이 한숨이 새어 나오고

이대로 책상 앞에 앉아 있는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아서 산책이나 갔다 와야겠다는 생각에 집 밖을 나섰다.


몇 해 전,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던 것 같다.

해는 저물어 가고 선선한 바람에 내 머리카락과 꼼의 털이 산뜻하게 흩날리던 저녁이었다.


곧 있으면 벌레들의 세상이 찾아오겠다 싶어 이참에 집에서 가까운 산이나 오르기로 했다.

집에서 산 입구까지 걸어서 40분, 산 입구에서 전망대까지도 40분 정도 걸리니까 서두르면 깜깜해지기 전에 집에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만히 서 있어도 기분 좋은 날씨에 바람을 맞으며 걷기까지 하니 꼼의 기분은 날아갈 듯 들떠 있었다.

갈 길이 멀어 나무 냄새를 오래 맡지 못하게 했는데도 통통거리는 발걸음으로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힘차게 나아갔다.


마라톤 선수처럼 나무마다 코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뛰는 꼼이 꽤나 프로다워 보였는데,

이미 산책 분야에서 프로의 타이틀을 따냈는지 조금의 지체도 없이 정확하게 40분 만에 입구에 다다르는 데 성공했다.


꼼, 준비됐어?

(살랑살랑)


산에서 꼼은 거의 날다람쥐다.

돌이든 나무뿌리든 상관하지 않고 오직 오르는 데만 집중한다.


한 발을 떼기 전에 이미 십 리를 내다본 것처럼 걸음걸음마다 망설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런 꼼을 뒤쫓아 올라가다 보면 덩달아 마음이 가벼워지고, 산을 오르는 내내 신이 난 꼼의 뒤통수를 보고 있노라면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던 고민들이 우리의 뒤를 쫓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올라 꼼을 품에 안고 우리 집은 어디쯤 있나 찾기 놀이를 하고

내려가는 길에 속도가 붙은 꼼에게 제발 천천히 가달라고 애원을 하다가 ‘가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화가 난 꼼의 표정에 한바탕 웃기도 하면서 나는 나를 되찾았다.


재빠르게 하산을 하고 입구에 쪼그려 앉아 꼼의 밥을 챙겨주는데 꼼이 어느 때보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냥 개랑 이렇게 걷고, 마주 보며 웃고, 집에 무사히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한 하루인 거라고.


꼼의 웃음 한 방으로 원색이던 세상이 파스텔톤으로 바뀌었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내 눈에 씌워진 꼼이란 안경이 부드러운 색감의 필터를 끼웠는지도 모른다.


내일이 막막하다가도 눈앞에 있는 개가 엉뚱한 행동을 하고 있으면 피식 웃음부터 새어 나오니까.


지금도 꼼은 한국 개답게 소파를 놔두고 맨바닥에 누워 두 팔로 소파를 밀어내면서 자고 있다.


열이 많은 발바닥을 소파에 가져다 대면 시원하다는 걸 어쩌다 깨닫게 된 모양이다.

반대 방향으로 자고 있다가도 몸을 돌려 딱 발바닥만 소파에 가져다 대는 꼼을 보고 있으면 신통방통하다.


어제는 물 마시러 부엌에 갔다가 냉장고 앞에 기다란 기린 장난감이 우뚝 서 있는 걸 발견하기도 했다.

뜬금없이 길목에 서 있는 기린에 방어할 새도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기 키만 한 걸 어떻게 똑바로 세워 놓은 거야. 재주네 재주야.


//


꼼과 나는 다행히도 온도가 딱 맞다.

내가 더우면 꼼도 덥고, 꼼이 추우면 나도 춥다.


자다가 더워서 뒤척이면 꼼도 똑같이 뒤척이고 있다거나 추워서 몸을 웅크리면 꼼도 똑같이 웅크리면서 자고 있어 이불을 나눠 덮곤 한다.


개는 사람보다 대략 2도 정도 체온이 높다는데, 나 역시나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이라 기본적으로 37도는 거뜬히 넘어서 얼결에 운명의 상대가 된 것 같다.


따라서 우리는 선풍기를 두고 싸울 일이 없다.

보일러나 에어컨 온도로도 싸울 일이 없고, 이불 두께로도 싸울 일이 눈곱만큼도 없다.


꼼이 춥고, 덥고는 내가 제일 잘 안다.

지금 날씨에 어떤 이불을 덮어야 하는지 그저 몸으로 느끼기만 하면 되니까.


잠든 꼼과 이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어딘가에 홀로 덩그러니 누워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자고 있으면 그것만큼 못마땅해 보이는 게 없어서

눈에 보이는 대로 손수건이나 담요, 이불을 집어 꽁꽁 싸매줬는데 그게 어느 순간 익숙해진 꼼은 자는 몸 위에 내가 무언가를 둘러주면 고개를 들어 맞이할 준비를 한다.


옷이든, 수건이든, 보자기든 두를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만사 오케이.


요즘 날씨엔 시원한 거즈 담요가 제격이다.

담요를 두른 꼼이 한층 더 괴도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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