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끈함: 관계가 매우 친밀하다.
꼼을 처음 만나기 전에도 내게는 꼼이 있었다.
언젠가 먼 훗날 내게 개가 생기면 ‘꼼’이라 부르겠노라고 미리 정해두었기 때문이다.
꼼이 꼼이 된 이유는 입버릇처럼 부르던 한 노래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나는 동요부터 가요까지 귀에 들리는 대로 족족 온종일 따라 부르며 시간을 보냈었다.
내가 지금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할 만큼 입에 붙은 노래들도 몇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조원경 작사·작곡의 <예쁜 아기곰>이다.
개의 이름을 지어두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예쁜 아기곰>의 가사를 떠올린 것도 당연했다.
내내 주변을 맴돌던 멜로디가 이름을 생각하느라 머리를 굴리고 있는 내게 냉큼 가사를 데려다 놓았다.
예쁜 아기곰
조원경 작사/작곡
동그란 눈에 까만 작은 코
하얀 털옷을 입은 예쁜 아기 곰
언제나 너를 바라보면서
작은 소망 얘기하지
너의 곁에 있으면 나는 행복해
어떤 비밀이라도 말할 수 있어
까만 작은 코에 입을 맞추면
수줍어 얼굴을 붉히는 예쁜 아기 곰
개의 곁에 있으면 나는 분명 행복할 테니 나의 개를 ‘곰’이라 불러야겠다고.
근데 개는 비교적 된소리를 잘 알아듣는다고 하니까 그렇다면 ‘꼼’이라고 해야지.
그렇게 꼼은 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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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이 정말로 눈앞에 나타나면서부터 나는 종종 꼼의 배를 쓰다듬으며 <예쁜 아기곰>을 부르곤 한다.
물론 곰을 꼼으로 바꿔서.
꼼이 듣기엔 느끼한 고백송 같으려나.
애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는 말이 있다.
우리 집엔 애는 없고 그 대신에 찬물도 못 마시게 하는 개가 있다.
낮이고 밤이고 상관없이 물을 마시려고 추출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추출된 꼼이 내 뒤에 와 있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소리 소문도 없이 잽싸게 등장한 꼼은 늠름한 모습으로 응당 물을 바라고 서 있다.
언제나 나를 바라보면서.
물을 내오너라! 느낌은 아니고, 이제 내 차례야! 느낌이어서 차마 모르는 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번호표를 뽑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하필이면 내 차례 앞에서 끝이 나버린 허망함을 꼼에게 알려주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나저나 너 방금 물 마시지 않았어?
꼼은 물 마시는 걸 좋아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물에 타 주는 동결건조 간식을 먹기 위한 물 마시기를 좋아한다.
가끔씩 꼼을 골려주려고 정수기에서 갓 내린 신선한 물을 곧장 건네면 새초롬한 얼굴로 쓱 내려다보고 휙 고개를 돌려낸다.
물 달라며. 이거 물이잖아.
뭘 빼먹었잖아.
동그란 눈으로 나에게 맞서는 꼼이 귀여워서 틈만 나면 실없는 장난을 치게 되는 것 같다.
아이참, 무슨 말하는지 모르겠네.
꼼의 눈을 피해 딴청을 피우며 냉장고 문을 열어 동결건조 간식이 든 통을 꺼내면 꼼은 바로 그거라며 발을 동동 굴린다.
물을 술술 넘어가게 하는 마법의 가루를 솔솔 뿌려주고서야 꼼은 챱챱챱챱 경쾌한 소리를 내며 물을 마시기 시작한다.
다음으로는 달그락달그락.
바닥에 구멍을 낼 태세다.
다 마셨어?
얼핏 보아도 반짝반짝 새 그릇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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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에 기름 돌 듯 우리도 한때 서먹함에 어쩔 줄 모르던 시기가 있었다.
기왕이면 누구보다 재미있게 놀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멀뚱멀뚱 서로만 쳐다보던 날을 떠올리면 조금 민망하다.
장난감을 잡고 같이 흔들어줘야 한다는 걸 모르고 보기 좋으라고 일렬로 세워두기만 했으니.
꼼과 마주 보고 앉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장난감들을 내려다보면서 이상하다, 왜 안 놀지? 생각했었다.
나름 신중하게 고른 것들인데 마음에 안 드나?
밖에 나가 다른 종류로 더 사 와야 하나 고민할 때쯤 꼼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듯이 고무 재질의 하트 모양 장난감을 물고 유유히 자기 집으로 사라졌다.
얼마 안 가 장난감은 저 바닥에 버려두고 잠들어 버린 꼼을 지켜보면서 서먹함을 넘어 막막했던 것도 사실이다.
진짜 진짜 재미있게 놀아주고 싶은데 어떡해야 하는 건지 감도 잘 안 잡혀서 머리만 벅벅 긁어댔다.
눈앞에 개를 두고도 인터넷 속 개들을 붙잡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니.
등 돌린 개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그럴듯한 비책이 필요했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고 다른 개들이 어떻게 노는지 찾아본 결과, 개와 놀 수 있는 방법은 한 백 가지쯤 되어 보였다.
공놀이, 터그놀이, 산책, 숨바꼭질, 야바위, 술래잡기 등등.
개와 천진하게 어울려 노는 모습들에 뭐 하나 빠짐없이 나의 흥미를 끌어당기기에 충분했지만
나의 마음을 일순간 사로잡은 건 ‘터그놀이’였다.
터그놀이는 개가 물고 있는 장난감을 좌우로 흔들어주면서 노는 줄다리기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고 아무 장난감으로나 하면 안 되고, 개가 물고 당겨도 다치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재질로 된 것이어야 한다.
내가 잡을 곳과 개가 물 곳이 정해져 있는 장난감이면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많이 하다 보면 요령이 생겨서
대충 봐도 이걸로 터그놀이가 되겠다, 안 되겠다의 감이 오니 일단 종류별로 사놓고 시험해 보는 것도 추천하는 바이다.
참고로 꼼이 좋아하는 터그놀이 장난감은 두 종류다.
치석 제거용으로 나오는 딱딱한 공이거나 안에 솜이 들어가 있는 말랑말랑한 천 인형.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는 인형과 달리 딱딱한 공은 당기거나 던져줄 수가 없어서 손에 쥐고 가만히 있어야 하지만
그러고만 있어도 꼼이 알아서 잘 가지고 논다.
우리의 첫 터그놀이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공을 하도 씹어댄 탓에 삐쭉 튀어나온 실을 꼼이 먹고 있길래 뺏으려고 잡았다가 얼결에 놀이로 연결되어 버린 것이다.
장난감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풀었다 하면서 서로 밀고 당기는 맛이 쏠쏠했다.
으르르르 소리를 내며 적극적으로 덤비는 꼼이 반가워 이제 됐다!는 마음으로 한숨 돌릴 수 있었던 건 덤이고.
알고 보니 꼼은 놀 때 장난감이 없으면 안 되는 유형이었다.
장난감을 여기저기에 배치해 두었다가 적재적소에 딱 그 장난감이 있어야만 하는 계획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고작 다섯 개로 시작되었던 꼼의 장난감 살림이 물이 불어나듯 급증해 장난감 박스를 하나 가득 채우고도 바구니까지 한가득 흘러넘치게 된 까닭은 꼼에게 있다고 봐야 타당하다.
(절대로 내 욕심이 아니다. 물론 조금은 들어있지만.)
새 장난감을 유독 좋아하는 꼼에게 여기저기 엉기성기 꿰매져 있는 헌 장난감만을 흔들어 줄 수만은 없는 일이니까.
장난감이 백 개라도 부족한 꼼의 일과는 바구니에 담긴 장난감들 중 <오늘의 장난감>을 고르면서 본격적으로 출발한다.
일단은 웡! 소리부터.
꺼내기 좋게 바구니를 내려달라는 외침이다.
장난감 바구니도 혼자 못 내리는 쪼끄마한 꼼이 자기 몸만 한 바구니에 몸을 반쯤 넣고서 신중하게 개중 하나를 골라낸다.
오늘의 장난감은 <보라색 가지인형>이었다.
개가 터그놀이를 할 때 내는 으르르르 소리는 사람으로 따지면 영차영차 같은 거라고 한다.
소리만 들으면 위협적으로 받아들이기 딱 좋은데 뜻을 알고 들으면 귀엽기만 하다.
얼굴만 한 장난감을 입에 물고 빼앗기지 않겠다고 영차영차 하는 꼴이니.
나도 오늘은 으르르르 살아야겠다.
개와 유대감을 쌓기 위해서는 일관된 태도로 아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소중하게 여겨 보살피거나 위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꼼과 내가 다를 것도 없다고 여기고 있지만, 내가 꼼을 보살펴야 하는 위치에 있다는 건 결코 변하지 않는 진리다.
그러므로 나는 꼼에게 안정감을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극단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내게 개가 생겨버렸으니 그건 걱정할 문제도 아닌데
문제는 굉장하게 극단적으로 꼼에게 치우친 생활에 있었다.
나도 내가 이 정도로까지 꼼을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누군가는 처음 만난 그날에 사랑하게 될 줄 알았다며 노래까지 부르던데 나는 정말 몰랐었다.
시간이 났다 하면 동분서주 꼼을 데리고 돌아다니기 바쁠 거라는 걸.
그러니 주변에서 꼼과 나를 1+1이라 간주하는 것도 마땅한 일이다.
여기서 재밌는 건 꼼도 내심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꼼은 내가 짐을 싸고 있으면 열어둔 캐리어에 제일 먼저 들어가 앉아 있는다.
장난스레 꼼의 몸 위로 짐을 차곡차곡 올려두어도 상관하지 않고 한술 더 떠 그 안에서 잠이 들기도 한다.
일어나. 오늘 안 갈 거야.
요지부동인 꼼을 두고 실랑이를 할 필요가 없다는 건 진즉에 깨달은 바다.
꼼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아무 말 없이 침대에 가 누우기만 하면 된다.
그럼 얼마 안 가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던 말썽꾸러기가 재빠르게 달려올 테니.
꼼의 곁에 있으면 하는 수 없이 웃음이 는다.
좀처럼 안 웃고는 하루를 넘기기가 힘들다.
하루가 뭐야 반나절도 힘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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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은 정말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나를 웃긴다.
자기가 뀐 방귀에 놀라 도망 다닌다든지 자기가 다 먹어 놓고 밥그릇에 아무것도 없다며 억울해한다든지 등.
자는 모습으로도 웃게 만드는 꼼이니까 심심하거나 외로울 틈이 없다.
꼼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는 <날 따라와요 이쪽으로>다.
쓰다듬어주는 걸 좋아하는 꼼에게 잘못 걸리면 꼼이 만족할 때까지 무한 굴레에 빠질 위험이 있어
되도록이면 시간이 많을 때 집중적으로 만져주려고 하는 편인데 그때 하는 놀이가 바로 <날 따라와요 이쪽으로>다.
놀이의 시작은 나의 마음가짐에서부터 촉발된다.
그래, 어디 한 번 손목 부서져라 만져보는 거야.
마음을 다잡고 거실에 앉아 본격적으로 자세를 잡자마자 만져질 준비를 마친 꼼 손님이 내 앞에 정갈한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부터는 되돌릴 수 없다.
머리서부터 차근차근 마사지를 하며 아래로 내려가면 스르르르르 녹아버린 꼼이 고개를 돌려 ‘멈추지 마’ 신호를 보낸다.
그럼 그냥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만지기만 하면 된다.
대신 계속해서 변화를 줘 가면서.
하나뿐인 손님이 무척 까다로우시다.
만지다 만지다 지쳐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 <날 따라와요 이쪽으로>의 하이라이트라고 말할 수 있다.
꼼의 눈치를 보며 손을 쓱 빼면 기가 막히게 꼼의 머리가 다시 내 손 위로 쓱 올라와 있다.
이쪽으로 뻗으면 이쪽으로, 저쪽으로 뻗으면 저쪽으로.
저 멀리로 가 허공을 만지는 척 손가락을 움직이면 나를 따라온 꼼이 손 위로 머리를 가져다 댄다.
그때부터는 꼼도 나도 맹탕 웃는다.
개는 어처구니없게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런 웃음이 삶에서 꼭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해 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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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이 꼼이 되면서 나는 행복을 얻었다.
무엇으로도 가를 수 없는 끈끈함이 우리를 엮어주고 있으니까.
꼼에게는 어떤 비밀도 말할 수 있다.
꼼이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개여서가 아니라, 꼼이 꼼이여서.
꼼이 꼼이여서, 꼼이 꼼이 되어주어서
나는 좋다.
다른 말은 다 가짜 같을 만큼 꼼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