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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개의 발걸음은 든든해진다

당당함: 남 앞에 내세울 만큼 모습이나 태도가 떳떳하다.

by 위드꼼



신기하게도 반려동물과 반려인은 닮는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산책을 하다 보면 어라? 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따로 떨어져 있어도 누가 누구의 개인지 다 알겠다.


이게 아주 근거 없는 소리가 아닌 게, 한 연구에 따르면 애초에 본인과 닮은 동물을 선택해 기른다고 한다.

본능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동물에게 호감을 느껴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에 더해 가장 가까이에서 생활을 공유하기 때문에 성격이나 습관 같은 것들도 비슷해지는 것 같다.

개별로 가지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나 느낌까지 서로에게 전달이 되어 원래도 닮았던 것이 점점 똑같아져 간다.


그러하다면 서로 비슷해져 간다는 건 상호작용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결과이지 않을까.

내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순간에도 반려동물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물론 영향은 반대로도 이루어진다.

내가 꼼 때문에 (다른 방도가 없이) 부지런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다.


닮는다는 건 막는다고 막아지는 영역이 아닌 것 같다.

뒤돌아보면 이미 그렇게 되어 있다.


/


자신과 비슷한 동물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대목을 보고 나는 다소 떨떠름해질 수밖에 없었다.

꼼을 처음 보았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한 생각은 “왜 저렇게 쭈구리야.” 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첫 만남 순간에, 꼼은 자신의 동배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었다.

크기는 대략 1.5배 정도 차이가 났는데 그 때문인지 반격 한 번 못 하고 구석으로 몰려 눌림을 당했다.


흡사 어두운 뒷골목의 현장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엎치락뒤치락 노는 게 아무리 개들의 놀이래도 아래에 깔린 꼼은 그리 즐거워 보이지가 않았다.

한없이 엎어지기만 했다.


꼼이 겨우 몸을 피해 반대쪽으로 도망가면 동배는 쫓아가 다시 앞발로 누르기를 반복했다.

아무런 소리도 안 내고 필사적으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모습을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이리 와.


꼼을 들어 올려 품에 안는 순간 알았던 것 같다.

네가 나의 꼼이구나.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집에 꼼이 와 있었다.

그날부로 꼼은 우리의 막둥이가 되었다.


//


얻어맞던 개는 어디로 갔는지 집에서 대장 노릇을 하고 있는 꼼을 보고 있으면 헛웃음이 나온다.


목소리도 쩌렁쩌렁한 게 그동안 특훈을 한 모양이다.

다른 개들을 만나면 피하기 바쁜 건 여전하지만.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



동배의 영향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성격을 타고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꼼은 다른 개들을 만나면 우선 물러서고 본다.

개의 종이나 크기, 성별, 나이도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적이다.


예전에는 정도가 더욱 심각했었다.

멀리서 개가 보이면 몸이 굳고,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기라도 하면 로켓이 발사되듯 파바박 도망가 버렸다.


앞으로 산책을 다니려면 어쩔 수 없이 수많은 개들과 마주칠 텐데 계속해서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반려견 운동장에도 데려가고 산책 중 마주친 개들과 서로 인사를 시켜보기도 해 봤지만, 꼼이 극도로 불안해하는 바람에 얼마 가지 않아 그만두었다.


대신 같이 피해 주었다.


개가 마주 오는데 길이 좁으면 안아 주고, 길이 넓으면 꼼이 마음 놓고 지나갈 수 있도록 내가 가운데에 섰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니 꼼이 차츰 나아지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다른 개가 기척 없이 다가와도 발사되지 않고 내 다리 뒤로 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그래도 누군지 궁금하기는 해서 다리 사이로 고개를 쭉 내밀고 까만 코를 벌렁거리기 바쁘다.


이런 걸 보면 다시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나 싶지만 그것도 다 내 욕심일까 싶어 그만두기로 했다.

꼼은 원하지 않는데 내가 원해서 억지로 친구를 만들어 줄 수는 없는 일이니까.


산책하다 가끔 기질이 맞는 개를 만나 짧은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꼼에겐 충분한 것 같다.

그런 날엔 꼼의 발걸음이 사뭇 씩씩해져 있다.


꼼, 친구랑 인사했어?


나의 참견은 딱 거기까지.

나머지는 꼼이 정할 일이다.


/


넓고 푸른 잔디에서 개들이 뒤엉켜 뛰노는 모습은 나의 오랜 로망이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술래잡기도 하고 데굴데굴 굴러가는 공을 향해 돌진하다 서로 부딪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한바탕 달리고.


나는 모든 개가 그렇게 노는 줄 알았다.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면서 안아달라는 개가 세상에 있는지도 몰랐었는데 그 개가 나의 개일 거라고는 무슨 수로 예측했겠는가.


꼼은 개들이 많은 장소에 가면 내 무릎에 앉아 남 일인 듯 개들이 해맑게 어울려 노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는다.

내려갈 생각은 안 하고 마음씨 좋은 멋진 개가 같이 놀자고 다가와도 모르는 척하면서 온종일 구경꾼 행세를 한다.


마치 예전의 나처럼.


어렸을 때 나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데 어려움을 겪었었다.

학교에 진학하면서 한 공간에 오래 머무르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법을 체득해 나갔지만, 학교에 다니기 전만 해도 익숙한 동네 친구들과는 놀아도 낯선 곳에서 새로 만난 친구들과는 쉽게 어울리지 못했었다.


그러니까 나는 정체를 파악하기 전까지는 마음을 열지 않는 아이였다.

누군지도 모르는 애랑 술래잡기를 할 수는 없었다.


이제 와 돌아보면, 또래보다 작았던 탓에 짝수가 안 맞을 때엔 자동으로 깍두기를 맡았었는데 그 자격지심일지도 모르겠다.

겨우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가 깍두기만 시켜줄까 봐 곁을 주지 않았던 것 같다.


꼼도 나와 같은 마음인 걸까.

속에 남은 두려움 때문에 먼저 다가가지 않는 쪽을 택한 걸까.


/


다행히 학교라는 사회에 진입하면서부터 나는 달라졌다.

누군지도 모르는 애랑 팀이 되어서 제 몫을 해야 하는 게 사회니까 마음을 마냥 닫아둘 수만은 없었다.


부딪히고 깨지고 넘어지고 일어서면서 관계를 배웠다.


그렇지만 개의 사회는 인간의 사회와는 다르다.

강제로 팀이 될 일도, 마음이 안 맞는 친구와 힘을 합쳐 제 몫을 해야 할 일도 없다.


생각해 보면 처음 마주친 개와 인사를 나눌 이유도, 명분도 개에게는 없다.


이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어떤 이가 종이 같단 이유로 길에서 만난 모든 타인에게 말을 걸며 아는 체를 한단 말인가.


아마 그런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오면 나는 기를 쓰고 피해 다닐 게 분명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그런데도 나는 왜 한동안 정식으로 친구를 만들어 주겠다는 핑계를 대며 꼼에게 억지를 부렸을까.

모르는 개와 한 번 인사를 나눈다고 친구가 되는 것도 아닌데.


내 개가 원하지 않는데, 혹은 상대편의 개가 원하지 않는데 인사를 시켜야 할 이유는 단 한 개도 없다.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끌면서 모르는 사람과 자꾸 인사를 시키려 한다면 나는 그 누군가를 영원히 신뢰하지 못할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꼼에게 그런 몹쓸 누군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같이 있으면 든든한 가족이고 싶다.






개의 사회는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개가 산책길에서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존재는 누가 뭐래도 자신의 줄을 잡고 있는 보호자일 것이다.

그밖에는 전부 기타 등등, 보호자와 주변 것들이지 않을까.



조금도 망설일 것 없죠



꼼은 나와 단 둘이 산책을 나서면 모든 걸 등에 업은 듯 군다.

그리고 가족이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꼼의 발걸음은 더욱 기세등등해지곤 한다.


제일 앞장서서 걸으며 세상 사람 모두 모여 자기만 보라는 듯이 엉덩이를 좌우로 힘차게 흔들면서 걷는다.

우리 집 공식 막둥이이자 대장의 특권이다.


믿기 싫지만, 나는 우리 집 공식 꼼 담당 하인을 맡고 있다.

모든 걸 통틀어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몽땅 한다고 보면 된다.

(근데 꼼은 내가 아닌 엄마를 자신만의 대장으로 삼았다. 도대체 왜?)


따라서 나 없이 꼼이 산책을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족들의 말에 의하면 내가 없을 때 꼼을 데리고 밖에 나가는 경우, 나가는 것까지는 꼬리를 흔들며 좋아하는데 막상 나가서는 잘 걸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딱 버티고 서서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이게 무슨 일인 건가 경계를 한다고.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와 이런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가도 마음이 무겁다.

나 없으면 얘 어떡하지 싶어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간다는 말을 믿는 사람으로서 내가 없어도 시간이 지나면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만

되도록이면 꼼의 “튼튼한 이”인 채로 나의 역할을 끝까지 빼놓지 않고 해내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기를 간절히 바란다.


꼼이 내 곁을 떠나는 일도 견디기 힘들겠지만, 내가 꼼의 곁을 떠나는 일 역시 못지않게 마음이 아플 것 같다.

자다가 말고 내가 있나 없나 찾아보는 녀석을 두고는 아무 데도 못 간다.


천만금을 준대도 암만.


/


꼼은 자신을 두고 어디든 못 가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정말 몸 어딘가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가족 모두 하나 되어 같은 마음일 수 있었을까.


꼼이 오고부터 우리 가족은 꼼을 두고는 가족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당연하게 가족 여행을 짤 때는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지부터 살핀다.


지금은 동반이 가능한 곳들이 정말 많아졌지만 전에는 검색하느라 진이 다 빠질 정도로 드물었었다.

그런데도 눈을 켜고 필사적으로 찾아내 한 해도 빠짐없이 성공했다.


우리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멀미를 하지 않는 꼼 때문이 크다.

서울에서 남해까지 가는 동안 지쳐버린 사람들과 달리 멀쩡한 꼼에 두 손 두 발 들 수밖에.


얼마나 차를 잘 타는지 우리끼리 하는 장난이 있을 정도다.

시동을 걸기 전 룸미러로 뒤에 탄 꼼을 보면서 “꼼 탔어? 안 탄 것 같은데?” 하고 찾으면 꼼이 눈동자만 도르르 굴리며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곤 한다.


장난은 출발을 해서도 계속된다.

기척 없는 개가 눈만 도르르 굴리는 게 귀여워서 멈출 수가 없다.


그나저나 꼼 탔어? 안 탄 것 같은데?


얼마나 멀든 상관없이 목적지에 들어설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꼼이 아직까지도 신기할 따름이다.

어쩌다 이런 개가 내게로 왔는지.


그렇지만 아직 우리가 정복하지 못한 곳이 있다.

그건 바로 해외여행.


국내여행은 어디든 문제없지만, 해외여행은 차마 꼼을 데리고 가지 못하겠다.

예상치 못한 변수에 내가 잘 대응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그래도 로망을 쉽게 버리지는 못해서 틈날 때마다 개와 함께 해외여행을 떠난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보며 재차 숙고해 봐도 내 그릇이 안 된다는 사실만 자각하는 중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올봄에 떠난 제주 여행에서 꼼이 처음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 몇 년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점차 긴 비행은 무리가 되겠지.


아무래도 가족 여행으로 해외를 가는 건 포기해야 할 듯싶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한 사람은 꼼과 함께 집에 남을 수밖에.


이번에는 내가 떠날 차례이지만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꼼과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어찌 된 일인지 고민만 는다.

아직도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


내가 아직 다가오지 않는 미래를 고민하는 동안 꼼은 열심히 오늘을 살아가는 중이다.

미쳐버린 날씨 때문에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산책 패턴에도 굴하지 않고.


작은 움직임에도, 조그만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꼼은 겁쟁이라고 (주로 내게) 놀림을 받는다.

근데 실은 아주 용감무쌍한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집에서는 바스락 소리에도 놀라 나자빠지면서 밖에서는 어쩜 그리도 용감한지.


으스스한 골목도 성큼성큼 걸어가고, 한눈에 봐도 지저분해 보이는 풀숲도 마다치 않는다.

하나에 꽂히면 그 외의 요소는 보지 않는 아찔한 담대함도 지니고 있다.


그런 꼼을 따라다니면서 도망가고 싶은 건 오히려 나다.

커다란 움직임이나 쩌렁쩌렁한 소리에도 눈 하나 깜빡하는 법이 없지만 될 수 있으면 최선을 다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간에 들어가는 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은 게 나의 입장이다.


그것도 자기가 밟은 나뭇가지에 화들짝 놀라는 녀석과 함께는 더더욱.


나를 지켜줄 것도 아니면서 그런 곳만 골라 비집고 들어가려는 꼼을 겨우 뜯어말리는 동안 나도 모르게 끙끙 앓는 소리를 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도대체 아무것도 안 보이는 곳이 뭐가 궁금하단 건지.


한 번은 천변에 무성하게 자란 정체를 알 수 없는 풀들 사이를 헤집겠다고 우기길래 한참 실랑이를 하다 못 이겨 그러라고 내버려뒀더니 바닥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는 꼼 옆에 잔뜩 화가 난 고양이가 등을 세우고 있는 걸 뒤늦게 발견하고 놀란 마음을 진정할 새 없이 눈치 없는 녀석을 번쩍 안아 들고는 잰걸음으로 도망친 적이 있었다.


꼼은 이상하게 개를 제외한 다른 동물은 절대로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 믿음직스럽지 않은 믿음이 당최 어디서 나온 건지는 모르겠다.


정말 왜 그러는 걸까?


저 까마득히 먼 곳에 가만히 앉아 있는 개는 신경 쓰면서 바로 옆을 스치듯 지나가는 비둘기는 쳐다도 안 본다.

사슴을 봐도, 토끼를 봐도, 공작새를 봐도, 왜가리를 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눈에 보이기는 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침착한 모습이다.


나도 모르는 꼼만의 사회가 있는가 보다.

알고 싶기도 하고, 평생 모르고 싶기도 하다.

(그래도 굳이 알려주고 싶으면 슬쩍 말해줘도 돼, 꼼아. 비밀로 할게.)


//


올여름은 꼼이 태어나 8번째 맞는 여름이다.

해가 바뀔 때마다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이더니 올해는 급기야 기상관측 이래 7월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고 한다.


기온이 상승하면서 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벌레들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몇 주 동안 러브버그가 휩쓸고 가더니 곧 있으면 미국흰불나방이라는 해충이 확산할 것이라는 뉴스가 연일 뜨겁다.


나방은 뭐 러브버그에 비하면 괜찮지 하고 우습게 여기고 있었는데 재작년 하늘에서 비 내리듯 쏟아지던 송충이의 정체가 미국흰불나방이었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눈앞이 캄캄하다.


(그리고 오늘 또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쐐기벌레에 쏘인 개들이 병원에 찾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몸에 독침이 있어 엄청난 통증을 유발한다고 하니 산책 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할 것 같다. 부디 조심하시기를.)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에, 사방에서 날아드는 벌레 공격까지.


푸릇함으로 버티기에는 갈수록 혹독해져만 간다.


계절 상관없이 날아다니던 꼼도 연 이틀 30도가 넘는 바깥공기에 지쳤는지 오늘은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있다.

당분간은 해가 졌대도 산책을 충분히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저러나 당장 다가올 내일이 걱정이다.

체력보충을 마친 꼼이 당당하게 산책을 요구할 텐데 어쩌지.


꼼 몰래 특훈이라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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