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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꼬리를 흔들면 하릴없이 마음이 녹는다

뿌듯함: 채우는 것이 한도보다 더하여 불룩하다/감격이 가득 차서 벅차다.

by 위드꼼



꼼은 편안한 자세로 누워있다가도 나의 움직임이 느껴지면 어정쩡하게 고개를 들어 올려 시선을 맞추곤 한다.

나의 동선을 파악하려는 최소한의 움직임이다.


꼼에게로 갈 생각이 없었을 때조차 그런 꼼의 모습을 보면 괜스레 다가가 마구잡이로 쓰다듬고만 싶다.

(짐작한 대로 기어이 그렇게 되고 만다.)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가까워질수록 빨라지는 꼬리에 이끌려 꼼 앞에 쭈그리고 앉아버리게 되기 십상이다.


난 너 말고 저거 가져오려고 했던 거란 말이야.


내가 뭐라 하든 상관하지 않고 뒷다리를 파닥거리며 더 만지라고 하는 통에 저것과 꼼을 모두 챙겨 자리로 돌아왔다.


제자리를 찾은 양 내 다리를 깔고 베고 누운 꼼은 다시 눈을 껌뻑이며 서서히 잠에 빠져드는 중이다.

그리고 이젠 나의 자세가 더없이 어정쩡해졌다.


이를 어쩐담.


//


개가 꼬리를 흔들면 하릴없이 마음이 녹는다.

내 기분이 어땠었는지에 상관없이 사르르 녹아 없다.


정신을 못 차리게 하는 고장 난 와이퍼처럼 눈앞을 흩트려 놓아 얼룩진 나의 마음을 싹 닦아내 버리곤 한다.

그만한 얼룩은 얼룩도 아니란 듯이.


개의 꼬리 처방 한 방에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너로 가득 찬



꼼은 주로 소파 위에 누워있는 걸 좋아한다.

소파에 올라갈 땐 도움닫기도 없이 한 번에 폴짝 뛰어 올라가고, 내려올 때는 착실히 계단을 이용하는 편이다.


소파에서, 침대에서, 의자에서 떨어지는 일이 허다했던 멋모를 때를 지나 마침내 멋을 알게 된 꼼은 높은 곳에선 신중을 기하는 의젓한 개로 거듭났다.

아주 바람직한 변화다.


자기가 지금 어디에 올라가 있는지도 모르고 우다다 뛰어다닐 때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막막하기만 했었는데

힘들여 가르칠 것도 없이 몇 번 떨어지더니 알아서 몸으로 배웠다.


떨어지는 경험이 제법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우다다는 포기할 수가 없어 발동을 걸기 전에 아래를 내려다보며 어디까지 뛰어야 안전한지 가늠해 보곤 한다.

그러고 나면 기가 막히게 낭떠러지 앞에서 딱 제동을 거는 날렵한 꼼을 구경할 수 있다.


꼼아 멋진 건 알겠는데, 이왕이면 바닥에서 뛰는 건 어때?


내가 겨우 이 말을 꺼냈을 땐 이미 우다다가 끝나버린 후다.

한 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야 지쳐버린 꼼에게 말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혀를 끝까지 내밀고 숨 고르기 바쁜 꼼에게 내 잔소리가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


꼼이 처음으로 침대에서 떨어지던 날, 엄마는 고민도 하지 않고 저상형 프레임으로 침대를 바꿨다.

꼼의 동선에 따라 미끄럼방지 매트를 깔고, 현관에는 안전문을 설치해 두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빠르게 우리 집은 꼼 맞춤 집으로 변해갔다.


집안 어디에서나 별 어려움 없이 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게 때로는 새삼스러운 느낌이 든다.

이제는 꼼이 없는 우리 집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곳곳에 꼼의 장난감들이 굴러다니고 있고, 거실에는 꼼의 배변판과 자동 급식기가 끝과 끝에 자리 잡아 누가 봐도 여기에 개가 살고 있음이 증명된다.


화장실에는 꼼의 샴푸가, 내 방에는 꼼의 이동 가방과 하네스와 치약·칫솔이, 행거 한쪽에는 꼼의 옷들이 나란히 걸려 있고, 서랍장에는 계절이 안 맞는 꼼의 옷들이 차곡차곡 개어져 있다.


어디를 열어봐도 온통 꼼인 건 마찬가지다.

부엌 선반엔 꼼의 그릇과 물병이, 이불장엔 꼼의 담요가, 수건장엔 꼼의 수건이, 신발장엔 꼼의 배변 봉투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심지어는 자동차조차 움직이는 꼼 맞춤 집이 되었다.

카시트부터 유모차, 배변 패드, 배변 봉투, 리드줄, 담요, 인형까지.


눈을 씻고 봐도 여기도 꼼, 저기도 꼼.

온 사방이 꼼 천지다.


제일 작으면서 살림살이는 왜 이렇게 많은지.

마음에 차오르는 만큼 물건도 느나 보다.






저상형 침대로 바꾸고 나서도 꼼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높이를 가늠하는 습관을 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다고 해서 일이 벌어지지 않는 건 아니다.


근 몇 년 동안 떨어지는 일이 없더니 지지난 달에는 계단을 빠르게 올라가다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오랜만에 벌어진 급박한 상황에 놀란 꼼은 유례없는 순발력으로 매트리스 끝을 양손으로 붙잡더니 대롱대롱 매달렸다.


정말 낭떠러지에 매달린 것처럼 위로 올라오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점점 힘이 빠지더니 바닥으로 발이 툭- 닿았다.

(그렇다. 앞서 밝혔듯이, 우리 집 침대는 높이가 내 무릎도 채 안 되는 저상형이다.)


지켜보는 나도, 생사를 오간 꼼도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뭐 한 거야?


민망한 꼼은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황당해하는 나만 남겨놓고서.



가히 셈할 수 없는



겁쟁이 꼼은 병원 근처에 가는 것도 무서워하면서 요즘 들어 발을 자주 핥아 나를 속 썩이고 있다.

발바닥은 물론이고 며느리발톱 부위까지 핥아 그러지 못하도록 틈틈이 주의를 주는 중이다.


그런데 문제는, 8살이 된 능청꾸러기 꼼은 쓰읍-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눈 하나 깜짝 않고 천진한 태도로 지금껏 발을 핥은 게 아니라 바닥을 핥은 거라며 태세 전환을 하는 탓에 직접 다가가 발을 짚으며 하지 말라고 해야 한다.


누굴 닮아 그런 것만 느는 건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어디서 배워 온 걸까.

등을 돌리면 발을 핥고, 쳐다보면 멈추는 꼼에 하루에도 열두 번씩 시리즈 속 영희처럼 사나운 눈이 되고 만다.


꼼, 하지 마.


나의 으름장에도 뻔뻔이 꼼은 기죽는 법이 없다.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돌려낼 뿐이다.


안 한다 안 해.


핥는 걸 포기하고 자려고 누운 꼼을 보면 분명 내가 이긴 게 맞는데, 이상하게 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상당히 찝찝하다.


/


겁쟁이, 능청꾸러기, 뻔뻔이처럼 꼼에겐 수천 가지의 별명이 존재한다.

개에게 이름은 정말 필요할 때만 불러야 효과적이라고 해서 <꼼>이라 부르는 일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글에서는 헷갈리지 않도록 어쩔 수 없이 <꼼>이라 적지만, 실생활에서 꼼이라고 부르는 일은 극히 드문 편이다.

저 멀리 있는 꼼을 부를 때나 외친다고나 할까.


아, 그리고 혼낼 때도.

혼낼 때 이름을 정확히 부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저절로 그렇게 되고 만다.


그러나 다행히도 꼼이 내게서 멀리 떨어질 일도, 혼날 일도 그리 많지 않아 꼼은 내가 지은 다양한 별명으로 불리는 중이다.

딱히 고민하지 않고 입에 붙는 대로 불러서 전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불어날 것만큼은 장담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몇 개만 소개해 보자면, 제일 자주 부르는 별명은 꼬맹(작아서)이다.

씻길 때가 다가오면 꼬질이, 털이 찌면 둥실이, 말을 안 들으면 꼼쟁이, 말을 잘 들으면 꼼둥, 졸졸 쫓아다니면 동고맹, 몹시 귀여워 보이면 꼬르댕, 유난히 고집을 부리면 쪼꼼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어제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도 반납해야 해서 해가 넘어가는 저녁 여덟 시쯤 유모차를 끌고 꼼과 길을 나선 참이었다.

책을 담아 무거워진 탓에 한 손으로 운전할 수가 없어 도서관까지 가는 동안에는 꼼을 꼼짝없이 유모차에 태워 가야만 했다.


그게 무척 억울했었는지 돌아오는 길에 제멋대로 구는 꼼 때문에 <쪼꼼!>을 얼마나 외쳤는지 모른다.


(어두워선지, 분해선지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려는 꼼에게) 쪼꼼! 거기는 길이 아니잖아.

(횡단보도 신호가 3번 바뀌는 동안 화단에 코를 박고 있는 꼼에게) 쪼꼼! 이제는 좀 건너자.

(집에 가는 지름길을 놔두고 멀리 돌아가겠다며 버티고 있는 꼼에게) 쪼꼼! 곧 있으면 열 시야.


그냥 나 혼자 갔다 올 걸 이런 꼼쟁이를 왜 데리고 나왔는지 후회가 됐다.


(꼼 앞에 주저앉아 엄한 목소리를 흉내 내며) 꼼, 깜깜해지기 전에 가야 해. 안 그럼 유모차에 태운다.


그제야 깜깜한 게 눈에 들어오기라도 했는지 꼼은 헤헤 웃으면서 집 방향으로 곧장 뛰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면 유모차에 타는 게 어지간히 싫었나 보다.


꼼둥, 같이 가!


//


자기가 잘못한 건 알아서 눈을 게슴츠레 뜨고 눈치를 보는 꼼을 보고 있으면 못 당하겠다.

귀는 뒤로 젖히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데 그 누가 이기랴.


그래도 발을 핥고 있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어서 몇 번 큰 소리를 내면 기죽은 꼼이 등을 돌리고 눕는다.

그럼 그게 또 보기가 싫어 무릎에 눕혀놓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사지를 해주곤 한다.


꼬맹, 아플까 봐 걱정돼서 그래.


한참을 주물러주고 나면 기분이 나아진 꼼이 이제 내려가겠다며 몸을 뒤척인다.

마사지는 내가 했는데 요금은 간식으로 받겠다며 간식 바구니 앞에서 요지부동이다.


뻔뻔이가 돌아왔다.

나의 노력이 통했나 보다.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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