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함: 모양, 빛깔, 형태, 양식 따위가 여러 가지로 많다.
개는 내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행복을 가져다주었지만, 그 대가로 세 가지를 앗아갔다.
자리
잠
자유
이른바 자잠자.
적응할 시간도 주지 않고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나의 자잠자는 한때 내가 누릴 수 있는 전부였다.
내가 가장 아끼던 것들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제는 사양이다.
다시 돌려주지 않아도 괜찮으니, 지금처럼 오래오래 불편하고 싶다.
오래도록 꼼과 함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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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같아선 영원을 바라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겠지.
유한한 만남 속에서 뻗어나가는 무한한 사랑이 무섭다.
나는 한평생 막내로 살아왔었다.
막내라는 것은 곧, 태어났을 때 이미 모든 가족구성원이 완성된 상태였다는 뜻이다.
챙겨주는 것보다는 챙김을 받는 게 익숙했고, 안아주는 것보단 안기는 편이 속 편했다.
다 차려진 밥상에 내 숟가락만 제대로 올려놓으면 만사가 평탄하게 흘러가곤 했다.
엄마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던 코찔찔이가 자라서 제 몸 하나 건사하는 것만으로도 큰 일한다며 칭찬을 받았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뒤로 넘어져 코가 깨져도 막내라는 타이틀 하나로 먹혀들어가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넘어질 때마다 나를 일으켜 줄 손들이 차고 넘쳤다.
그러다가 개가 생겼다.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선택한 가족이었다.
긴 세월 동안 손에 쥐고 있던 막내의 특권을 넘겨줄 차례였다.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막둥이 수속을 밟은 꼼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딱히 인수인계할 필요도 없이 야무지게 막내의 자리를 꿰찼다.
막내라는 것은 곧, 어디를 가든 내가 앉을자리는 확보된 상태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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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의 등장만으로 나의 입지가 상당히 위태로워진 것이 사실이다.
낮에 앉을 자리는 그렇다 쳐도, 밤에 누울 자리는 남겨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꼼이 처음으로 우리 집에 발을 디뎠을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내게 개가 생겼다는 것에 감격해 한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 자는 개를 바라보았을 때만 하더라도 정말 몰랐었다.
개에게 침대를 빼앗겨 자다가 벌떡 일어나야 하는 나날들이 계속될 줄은.
꼼은 온 침대를 누비면서 자는 잠버릇을 가졌다.
발밑에서 자다가, 옆구리에서 자다가, 머리맡에서 자다가, 베개를 다 차지했다가, 왼쪽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왔다 갔다.
절대 떨어질 수 없다는 듯이 내게 몸을 붙여오는 날도 있고, 더 이상 붙지 말라며 발로 밀어버리는 날도 있다.
그러다 자리가 마음에 안 들면 잠든 내가 베고 있는 베개를 두들겨 패기도 한다.
누울 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건 알지만, 막상 당해보면 “내가 못 자고 있는데 네가 자?” 하고 화를 내는 것 같다.
결국엔 내가 나서서 누울 자리를 정리해 주고 나서야 꼼은 지친 몸을 누인다.
그마저도 얼마 안 있어 반대편으로 옮기곤 하지만.
그렇게 꼼과 밤새 뒤척이다 보면 아침이다.
…
…
웡! (일어나!)
내게 개가 있다는 사실을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았는데.
/
꼼의 등쌀에 못 이겨 동이 트기도 전에 잠이 다 달아난 날에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꼼과 나중에 갈 만한 곳들을 찾아둔다.
시간이 날 때마다 미리미리 찾아두어야 최신 정보를 늦지 않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면 전보다는 확연히 개와 산책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개와 함께 갈 수 있는 곳은 드물다.
그마저도 사라지거나, 동반 금지로 바뀌는 곳들도 있어 기회가 주어졌을 때 부지런히 찾아가 보자는 주의다.
한 번이라도 더 찾아가야 눈도장을 찍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카페에 가는 걸 꼼이 무척 좋아한다.
멍푸치노의 맛을 한 번 보더니 세상의 모든 카페에서 멍푸치노를 팔고 있는 줄 알고 있다.
여기엔 없다고 해도 하염없이 카운터만 쳐다보고 있는 게 안쓰러울 정도다.
기다리고 있다 보면 잃어버린 멍푸치노가 걸어 나오기라도 하는 듯이.
꼼이 오고 나서 나의 세상은 개의 출입이 가능한 곳과 가능하지 않은 곳으로 나뉘었다.
어디를 가든 자동으로 그것부터 살핀다.
더불어 멍푸치노가 메뉴에 있는지까지.
개랑 다니는 게 일상이 되면서 마음대로 드나들 자유를 잃었다.
쾌적한 실내에 앉아 마음껏 여유를 즐기는 일도 줄어들었다.
대신에 개가 있다.
길을 걷다 보면 도로를 가로질러 길게 난 배수구가 있는 곳이 있다.
폭은 어림잡아 한 뼘 정도 되어 보이는데, 꼼에게는 산책 중 만나는 어질리티 구간이나 마찬가지다.
처음 몇 번은 엉덩이를 뒤로 빼며 나는 못 한다 항복선언을 하던 꼼은 마주칠 때마다 안아달라고 하기도 번거로웠는지 힘껏 도움닫기를 하더니 멋지게 뛰어올랐다.
이제는 익숙해져 폭이 비교적 좁거나 구멍이 크지 않은 배수구는 뛰어넘는 것 같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넘어 다니고,
구멍이 크다 싶으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양옆으로 작게 난 샛길을 찾아내기도 한다.
꼼이 처음 샛길을 발견한 날에는 천재인 줄 알았다.
아니, 어떻게 돌아갈 생각을 하지?
나한테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고 알아서 문제를 해결한 꼼을 보면서 속으로 연신 감탄을 했었다.
맞아. 돌아가는 길도 있지.
그 후로 살아가다 앞을 가로막는 벽을 만날 때면 한발 물러서 주위를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작은 틈 하나는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꼼에게서 배웠다.
발 하나 디딜 틈 없으면 다른 길로 가는 게 더 현명하다는 것 역시 꼼이 알려 준 살길이다.
/
잠이 안 올 땐 벌떡 일어나 할 일을 찾기.
늘어지는 날에는 밖에 나가서 운동하기.
체력이 남아돈다고 무리하지 않기.
…
…
…
이 정도면 꼼이 나를 키웠다고 해도 무방하다.
웃음기 쫙 빼고 진지하게 앉아 내가 꼼에게 알려준 건 뭐가 있나 생각해 봤는데, 뭐 좀 적어보려 해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나마 생각나는 것이라곤 수박 흰 부분은 맛이 없다는 것?
그것 말고도 여름 한낮의 아스팔트는 뜨겁다는 것과 염화칼슘을 밟으면 안 된다는 것 등을 알려주긴 했으나
그러나 말거나 품에서 내린다는 것을 보아 내 말을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양으로 보나 질로 보나 내가 얻은 것이 훨씬 많다고 할 수 있다.
겨뤄보려 해도 상대가 안 될 만큼.
이를 어쩜 좋지.
-보답으로 열심히 긁어드려야지.
꼼은 만져주는 것보다 긁어주는 걸 선호한다.
이제 막 잠에서 깼을 때는 살살 쓰다듬어주는 걸 좋아하는데, 깨어있을 때는 박박 긁어주는 손길에 몸을 온전히 맡긴다.
그중 최강은 대신 긁어주기.
꼼이 뒷발을 이용해 몸을 긁기 시작했을 때, 그걸 가로채 내가 대신 양손으로 긁어주면 입꼬리가 씩- 올라가면서 만족의 표정을 보인다.
가려운 곳을 정확히 짚어 적절한 강도로 긁어주었을 때의 만족감은 개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귀에 닿을 것같이 올라가는 입꼬리를 보고 있으면 내가 다 시원하다.
어때 꼼아? 좀 비등비등해진 것 같아?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는 걸로 은근슬쩍 한데 묶어버리면 뭇매를 맞을까.
그럼 이건 어때 꼼아?
산책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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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말도 안 되는 사랑을 준다.
얼마나 말이 안 되냐면, 야반도주를 하려고 칠흑 같은 어둠에 짐가방을 꺼내면 아마 제일 먼저 들어가 있을 것이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짐을 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낮이든 밤이든, 천둥이 치는 새벽이든 상관하지 않고 나를 따라나설 게 분명하다.
산을 오르면 같이 오르고, 바다를 건너면 같이 건너면서.
그래도 내가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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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게 너무 무섭다.
나의 고통이 꼼에게로 옮겨갈까 봐 두렵다.
그러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사랑으로 덮는 중이다.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지만, 이 방법밖에는 모르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랑을 주기.
하루도 빠짐없이 개에게 배운 것이다.
안녕하세요.
이 글의 주인공인 “사랑하는 나의 개, 꼼”과 지내고 있는 위드꼼입니다.
첫 글만큼이나 마지막 글도 참 어렵네요.
(몇 번째 썼다 지웠다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편 한 편 써 내려가다 보니 어느덧 9월이 되었습니다.
시작할 때만 해도 눈이 내리던 겨울이었는데 시간이 참 빠른 것 같아요. 이제 가을이라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함께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완결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던 건 보내주신 마음 덕분이었어요.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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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엔 천변으로 산책을 나가 꼼과 오래 걸었습니다.
태연한 척하려 해도 발걸음에서 자꾸만 티가 나 하마터면 꼼도, 저도 날아가는 줄 알았습니다.
드디어 걷기 좋은 날씨가 돌아왔어!
웡!
언제 또 가버릴지 모르니, 부지런히 이 끝내주는 날씨를 만끽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이 말을 꼭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건강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추신. 옆에 있는 개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D
부디 건강하라는 말도 덧붙여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