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우 풍문으로만 듣고 싶소
뜨거운 아스팔트의 열기를 피해 도망 다니듯 산책을 강행하던 8월의 어느 날, 느닷없이 쐐기벌레 주의보가 내려졌다. 7월 무렵부터 그의 존재를 알리는 목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더니 얼마 안 가 이곳저곳에서 피해 소식이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이름조차 무시무시한 <<쐐기벌레>>는 몸에 가시 모양의 독침을 가지고 있어 살짝 스치기만 해도 심한 가려움증과 통증을 유발한다고 전해진다. 다행히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종에는 심한 독성이 없어 국소 증상에 그친다지만, 완치가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고통을 준다고 하니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주 서식지는 당연하게도 풀이 가득한 풀숲. 풀잎 뒤에 몸을 숨겨 육안으로 구별해 내기 어렵다는 절망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풀숲 주변의 아스팔트나 벤치 아래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니 산책길 어디에서나 주의가 필요하다. 분명 작년만 하더라도 이런 이름을 가진 벌레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었는데. 알고리즘의 영향인 건지 아니면 개체수가 늘어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존재를 알게 된 이상 모르쇠로 살아갈 수도 없고 난처하기만 하다. 이러나저러나 풀숲에 머리를 넣어 냄새 맡는 걸 좋아하는 꼼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아닐 리 없다. 안 그래도 그놈의 진드기 때문에 풀 곁에 오래 머물지도 못하는데 스치기만 해도 고통을 주는 녀석이 나타나다니. 산책 한 번 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운 한낮의 더위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은 즉슨, 그나마 살기 위해선 빛 대신 어둠이 깔린 길 위를 걸어야 한단 소리다. 어둠을 비추는 가로등의 불빛이 바닥까지 닿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개와 함께 걸으며 처음 알게 되었다. 무엇도 신경 쓰지 않고 앞만 보고 곧장 걸을 때는 몰랐던 사실이다. 그땐 길에 무엇이 굴러다니든 내 발목만 붙잡지 않으면 됐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전방 100미터 앞에 나뒹구는 저것이 나뭇잎인지 죽은 매미인지, 나뭇가지인지 지렁이인지 알아야겠는데 코앞에까지 다가가지 않는 이상 제대로 구별해 내기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풀잎에 붙은 쐐기벌레까지 찾아내야 한다니, 정말이지 참. 내가 일일이 손으로 쓸어볼 수도 없고.
게다가 나를 더욱 좌절케 하는 건, 어스름한 달빛을 머금은 풀숲은 모든 걸 빨아들일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이다. 괴생명체가 그 안에서 먹잇감을 노리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으스스함을, 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주 큰 문제다. 굴하지 않는 자세는 박수를 받아 마땅하지만, 쓰읍 그래도 거기까지는 들어가지 마라 꼼아! 정글숲을 코로 헤치고 미지의 세계로 고개를 들이미는 꼼을 보고 있으면 단전에서부터 뜨거운 한숨이 올라온다. 저 녀석 저거, 내 마음도 모르고. 아주 들어가서 살겠네 살겠어.
그러던 날이었다. 꼼의 등에 올라 탄 개미를 떼어주고, 털에 박힌 이름 모를 날벌레들을 털어주면서 산책을 이어나가던 지극히도 평범한 날. (세상 먼지를 다 쓸고 다닌 것만 같은 몰골을 제외하자면) 아무런 탈 없이 집으로 돌아와 꼼의 발을 씻기고, 내 몸도 씻고 나와 머리를 말리며 거울 너머로 잠든 꼼을 찬찬히 구경하고 있는데 어, 저게 뭐야? 다급히 드라이기를 끄고 꼼에게 가까이 다가가보니 오른쪽 뒷발이 살짝 부어올라 있었다. 발을 씻길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털에 덮여 있어야 할 분홍색 속살이 겉으로 드러나 한눈에 봐도 ‘나 부었어요’를 만천하에 선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슬쩍 건드려보니 꼼이 귀를 축 내리며 내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아프다는 건가? 만져달라는 건가?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다른 한 손으로 발을 가리켜 이거 왜 이러는 거냐고 물었더니 다시 귀를 축 내리며 배를 보여 누웠다. 아프다는 건가? 만져달라는 건가? 다른 때 같았으면 작은 몸짓에도 무슨 말을 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렸을 텐데 이상하게도 꼼이 아픈 기색을 보이면 개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던 어리숙한 때로 휘리릭 되돌아가고 만다.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모든 걸 망쳐버릴까 봐 두려움에 벌벌 떨던 때로 휘리릭. 쐐기벌레에 쏘이면 극심한 통증에 시달린다고 했는데 산책 내내 잘 걸었던 것과, 발을 씻길 때만 하더라도 멀쩡했던 걸로 미루어 보아 그건 아닌 듯했다. 부어오른 부위 주위를 손가락으로 콕콕 눌러도 꼼은 내 팔에 기대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놓쳤을까. 소란인 쐐기벌레에 신경이 쏠려 내가 지나쳐버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밤 9시가 지나 곧바로 병원에 데려가기는 글렀고, 24시 동물병원을 찾아갈 만큼의 응급상황은 아닌 것 같아 하룻밤 동안 지켜보기로 했다. 핥으면 덧날까 꼼을 감시하면서 인터넷에 증상을 검색해 보니, 세 가지가 가장 유력해 보였다. 감염, 알레르기, 외상. 그리고 쏟아지는 사진들. 붓고 찢어지고 꿰맨 발들을 보면서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염증 반응이 올라오는 것 같지는 않고, 다른 데는 전부 멀쩡하니 알레르기 같지도 않고, 어디 부딪혔나? 내가 씻는 사이에 집중적으로 핥았나? 벌레에 물렸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각종 원인들을 비교분석하면서 스크롤을 내리던 중 심상치 않은 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제목: 산책 시 풀씨주의] 하단에는 이런 내용이 꼼꼼히 작성되어 있었다.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발을 심하게 핥아 확인해 보니 부어있었고 (엇?) 조금 지나 절뚝거렸다. 다음 날 병원에 데려갔더니 발가락 사이 작은 구멍을 발견해 풀씨로 추측, 수술을 해 성공적으로 제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올라온 사진. 아니 저건?! 낯익은 모습의 범인은 꼼이 맨날 달고 다니던 것과 꼭 닮아있었다. 이맘때쯤이면 발을 씻길 때마다 1-2개씩 꼭 붙어있어 기념으로 챙겨 온 거냐고 귀여워했었는데… 저게 개의 발을 파고들어 염증을 유발하는 악덕한 놈이었다니. 심지어 또 다른 글에서는 풀씨가 몸속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오래도록 괴롭히기까지 한다고 적혀있었다. 망했다.
꼼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는 시간이 천년 같았다. 그대로 쭉 아침까지 잘 잤으면 하는 바람과 발을 잘 딛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끊임없이 교차했다. 그러던 중 화장실에 가려 꼼이 몸을 일으켰고, 다행히 절뚝임 없이 잘 걸었다.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 틈을 붙잡아 발 곳곳을 살펴보니 풀씨가 들어갔을 법한 구멍도 없었다. 부어오른 부위에 살짝 열감이 느껴지기도 했으나 겁에 질린 내가 과장되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접어두고, 마침 핥으려 하기에 못 핥게 막았더니 순순히 발을 가지런히 내려두는 것으로 짐작하건대 그리 통증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방심할 수는 없는 일. 꼼이 누구던가. 췌장염 수치가 하늘을 찌르던 날에도 밥을 싹 비우고 산책을 가겠다 조르지 않았던가. 마음 놓게 하고선 또다시 나를 경악하게 만들지 모른다.
애가 타던 날들은 건너뛰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꼼의 발은 5일 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사이 잘 걷고, 잘 먹고, 잘 잤다. 결전의 밤이 지나고 날이 밝자마자 날아다니는 꼼을 보면서 나는 왜 밤을 지새웠던가 생각이 들 만큼 발갛게 달아오른 발로 잘도 걸어 다녔다. 마침 병원 휴무날이기도 하고 꼼도 아파하지 않아서 며칠 두고 보자는 사이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쏙 모습을 감추었다. 처음 추측한 대로 어디에 부딪혔거나, 벌레에 물렸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풀씨에 살짝 찔렸던 게 아니었을까. 이 세 가지가 가장 유력한 가운데 어쨌거나 앞으로 더욱 조심하기로 하고 사건을 잠정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내게 남겨진 숙제.
풀씨는 대체 어떻게 조심해야 하지?